오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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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권(베트남어: Ngô Quyền吳權, 897년 3월 12일 ~ 944년 1월 18일)은 오조의 제1대 왕(재위: 939년 ~ 944년)이다. 중국의 오랜 지배에서 벗어나 독립 국가를 세운 인물이다. 전오왕(前吳王)이라고 불리고 아들인 오창급오창문은 후오왕(後吳王)으로 불린다. 당림(唐林)의 주 목사였던 오민(吳旻, Ngô Mân)의 아들이다.

생애[편집]

오권은 큰 키에 탄탄한 체격으로, 눈빛이 날카롭고, 걸음이 마치 범같았다고 한다. 베트남의 전설에 의하면, 태어났을 때에 이상한 빛에 싸여 있었고, 등에는 큰 멍이 세 개 있었다고 한다. 장차 큰 인물이 되라고, 이름을 '권(權)'으로 붙였다. 힘은 혼자서 솥을 들어 올릴 수 있을 만큼 장사였다.

10세기 초 중국에서는 당나라가 멸망하고 오대 십국 시대가 전개되어 혼란스러웠다. 십국 중 남한은 베트남 지역이 독립할 기미가 보이자 군사를 파견하여 이를 제압하려고 했다. 이 전쟁에서 오권은 양정예의 아장(牙將)으로서 용감하게 싸워, 그에게 신뢰를 얻고 양정예의 사위가 된다. 남한을 격퇴한 후에 양정예로부터 자사의 자리를 얻어 애주(愛州, Ái Châu, 현 탄호아성)를 다스렸다. 양정예가 그의 다른 아장이었던 교공선에게 살해되자, 오권은 937년 12월에 애주에서 군사를 일으켜 교공선을 공격했다. 교공선이 남한에 구원을 요청하자, 남한은 군사를 보내 교공선을 구원하였다. 그 전에 오권은 교공선을 죽였고, 이어 남한의 수군을 백등강(白藤江, Sông Bạch Đằng) 전투에서 패배시켜 중국 세력을 몰아내었다.

939년에 오권이 왕으로 즉위하였고, 꼬로아(Cổ Loa)를 수도로 하였다. 절도사 제도를 폐지하고, 중앙집권적인 조정을 수립했다. 왕이 조정의 중심으로 자리잡고, 정치·외교·군사의 모두를 결정하기로 했던 것이다. 문무의 관료를 두어, 조정 내의 의례와 관리의 복장의 색을 계급에 따라 규정했다. 또 지방에는 공적이 있는 장군을 선택하고, 중요한 각 주를 통치하게 했다. 정공저(丁公著, Đinh Công Trứ)는 환주(驩州, Hoan Châu, 현 응에안성하띤성), 교공한(矯公罕, Kiều Công Hãn)은 현재의 푸토성 지역의 장관이 되었다.

944년에 오권이 사망하였다. 장남인 오창급에게 왕위가 돌아가야 했지만 양정예의 아들인 외척 양삼가가 오창급이 어리다는 이유로 그를 축출하고 즉위하였다.

같이 보기[편집]

전 임
(초대)
제1대 오조의 왕
939년 ~ 944년
후 임
양평왕 양삼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