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우솔로스의 영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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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우솔로스의 영묘
터키의 영묘

할리카르나소스의 마오솔레움 유적
종목 영묘
(1494년 붕괴 해지)
면적 높이 45m
시대 기원전 351년
소유 아르타크세르크세스 3세
위치
마우솔로스의 영묘 (터키)
마우솔로스의 영묘
주소 터키 보드룸
좌표 북위 37° 02′ 16″ 동경 27° 25′ 27″ / 북위 37.03778° 동경 27.42417° / 37.03778; 27.42417좌표: 북위 37° 02′ 16″ 동경 27° 25′ 27″ / 북위 37.03778° 동경 27.42417° / 37.03778; 27.42417

마우솔로스의 영묘(~靈廟, 그리스어: Μαυσωλείο της Αλικαρνασσού, 터키어: Halikarnas Mozolesi)는 할리카르나소스(현재 터키의 남서쪽 해안 도시 보드룸)에 있는 고대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이다. 마우솔로스의 영묘에는 할리카르나소스의 사트라프(군사, 내정 양권을 장악한 태수)였던 마우솔로스와 그의 아내이자 누이인 아르테미시아 2세가 안치되었다. 기자의 대피라미드를 뺀다면 당대의 무덤건축물 중에서는 최대규모였다. 마우솔레움이라고도 하는데, 마우솔레움은 거대한 무덤건축물의 대명사가 되었다.

이스탄불 미니아튀르크에 있는 마우솔로스를 복원한 미니어처.

건설 배경[편집]

할리카르나소스의 마우솔리움 북쪽에서 발견된 마우솔로스로 추정되는 거상

마우솔로스기원전 377년부터 기원전 353년에 걸쳐 소아시아 서부의 카리아를 통치한 페르시아 제국 아케메네스 왕조사트라프(태수)였다. 기원전 377년 마우솔로스는 아버지의 뒤를 따라 카리아의 통치자가 되었다. 당시 카리아는 소아시아의 지중해 서부 연안에 있던 페르시아 제국 아케메네스 왕조의 한 주였지만, 수도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데다 당시 태수였던 마우솔로스의 아버지는 상당한 야심가로 인근 도시와 지역을 지배 하에 두고 있었기 때문에, 사실상 독립 국가였다. 그리고 아들 마우솔로스 또한 영토를 확장하고 궁극적으로는 소아시아의 남서부 전역을 손에 넣으려 했다. 마우솔로스와 그 누이이자 아내 아르테미시아(당시 카리아에서는 통치자가 자매와 결혼하는 것이 관습이었다. 가족의 힘과 부를 유지하기 위한 일종의 통치 방식이었다)는 수도가 건설된 주변 지역을 24년간 지배하게 된다.

마우솔로스는 그리스어를 말하고, 그리스의 삶과 정치를 동경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리스의 도시들이 해안에 건설되었고, 민주적 전통을 권장하는 것이 뛰어난 것임을 깨달았다. 따라서 마우솔로스는 이 도시에 못지않게 웅장하고 난공불락의 수도를 건설하려고 결심했다. 이 수도로 선정된 것이 할리카르나스이다.

마우솔로스는 할리카르나소스를 무인 통치자 답게 수도를 정비하기 시작했다. 적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 마을에 접해있는 바다를 깊게 하고, 파낸 흙으로 해협의 방어를 굳건히 했다. 또한 성벽과 망대도 설치되었다. 또한 시장에 인접한 곳에 큰 항구를 건설하고, 그 안쪽에 숨겨진 작은 항구도 건설했다. 이 항구는 적의 허를 찌르는 공격에 적합했다. 한편, 내륙에서는 일반 시민을 위한 광장과 도로, 주거시설 정비가 진행되어 4개의 문과 2개의 대로가 건설되었다. 그리고 그리스풍의 극장과 전쟁의 신 아레스를 모신 신전도 건설되었다. 만의 한 구역에는 마우솔로스의 거대한 요새형 궁전이 지어졌다. 이 궁전은 바다에서 적의 공격 목표가 될 수 있는 언덕까지 확실히 감시하는 것이 가능했다.

기원전 353년, 마우솔로스가 아르테미시아 보다 먼저 죽자 아르테미시아는 남편에게 감사의 뜻을 나타내기 위해 당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무덤을 건설하기로 결심했다 (마우솔로스가 살아있을 때 이 무덤이 계획되었거나, 또는 건설이 이미 시작되고 있었을 가능성도 있었다.) 이것이 마우솔로스와 아르테미시아의 이름을 오래도록 남기게 되는 마우솔로스의 영묘, 마우솔리움이다.

슬픔에 빠져 와인을 마시는 아르테미시아 (1775년 작)

무덤 건설을 시작한 직후, 아르테미시아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위기를 알게 된다. 마우솔로스의 죽음을 알게 된 지중해의 정복지 로도스 섬이 반란을 일으켜 수도 할리카르나소스를 공략하기 위해 해군을 보내온 것이었다. 이것을 알아차린 아르테미시아는 큰 항구 안쪽에 있던 비밀 항구에 자신의 배를 숨겼다. 그리고 로도스 군이 상륙을 시작하자 아르테미시아가 이끄는 해군은 로도스 해군의 측면을 기습하여 훌륭하게 물리쳤다. 그 후, 아르테미시아는 재치를 발휘하여 자신의 군대를 적선에 실어 로도스 섬을 공략하러 출전했다. 로도스 섬 사람들은 자신들의 해군이 승리하고 돌아왔다고 착각했기 때문에 방어도 하지 못하고, 마을이 함락되고 반란은 진압되었다.

마우솔로스가 죽은 지 2년 후, 아르테미시아도 뒤를 쫒 따라갔다. 전설에 따르면 그녀는 남편 마우솔로스 유골을 와인에 섞어 마시고, 슬픔에 잠긴 가운데 숨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전설에서 아르테미시아는 헌신적인 아내의 상징이 되기도 한다. 마우솔로스와 아르테미시아의 유골을 넣은 항아리는 미완성된 영묘에 들어갔다. 그리고 제물로 수 많은 동물의 사체가 무덤으로 향하는 계단에 놓여 출입할 수 없도록 돌과 벽돌 계단은 매장되었다. 플리니우스에 따르면 무덤이 완성되기 전에 의뢰자가 사망했는데, 건축가들이 공사를 중단하지 않은 것은 이 무덤이 자신 개인의 영광과 수완의 기념비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영묘는 그녀가 죽은 뒤인 기원전 350년 후반쯤에 완공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건물은 고대 세계 7대 불가사의의 하나로 거론된다. 그 크기뿐만이 아니라 디자인의 아름다움과 조각상과 장식의 정교함 때문이기도 했다.[1]

영묘 건설[편집]

영묘 건설을 시찰하는 아르테미시아 (16세기 그림)

아르테미시아는 무덤 건설비용을 조금도 아끼지 않았다. 그녀는 당시 가장 뛰어난 건축가와 예술가를 데려 오기 위해 그리스에 사자를 보냈다. 이렇게 2명의 유명한 건축가 프리에네의 프티오스사티로스가 참여했으며[2][3], 4명의 저명한 조각가 스코파스, 브리악시스, 레오카레스, 티모테오스가 축조에 참여했다.[4] 그 중에서도 스코파스는 다른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 에베소아르테미스 신전 건축에도 참여했다.

무덤은 마을을 내려다보는 언덕 위에 지어졌다. 공사장 벽돌 벽으로 둘러싸인 건축가들은 그 속에서 작업을 했다. 우선, 그 중앙에 무덤 본체가 되는 석축이 놓여져 있고, 사자의 석조상을 옆에 배치한 계단이 석축을 향해 세워졌다. 그리고 이 외벽을 따라 신과 여신상이 놓여져 있으며, 모퉁이마다 말을 탄 전사의 조각상이 무덤을 지키도록 배치했다. 이것이 무덤의 1층이다. 또한 이곳의 상부에는 그리스 신화와 역사의 한 장면을 묘사한 조각이 새겨졌다. 스코파스가 동쪽을, 브리악시스가 북쪽을, 티모테오스가 남쪽을, 레오카레스가 서쪽의 조각을 맡았다. 스코파스는 그리스인과 아마조네스(호전적인 여성 부족)의 투쟁을 그렸고, 다른 3명은 라피타이켄타우로스의 투쟁 등을 그렸다.

1층에서 2층으로 공사가 옮겨진다. 1층에서 2층으로 36개의 기둥이 세워졌다. 2층은 외부로 노출된 원기둥이 모여 있다. 짧은 면에 9개씩, 긴 변에 11개씩 기둥이 배치된 것으로 간주한다. 기둥과 기둥 사이에 1장씩 조각상이 놓여져 기둥으로 둘러싸인 안쪽에는 거대한 지붕을 지탱하기 위한 돌 벽돌이 쌓였다.

3층은 24단의 피라미드 형의 지붕이었다. 이 꼭대기에는 거대한 콰드리가(4마리 마차) 조각상이 놓였다. 이 마차에는 마우솔로스와 아르테미시아의 조각상이 타고 있었다고 전해지고 있지만, 아무것도 타고 않았다는 설이 유력하다. 근거로는 그리스 세계에서 주인 없는 마차는 주인의 죽음을 의미했던 것으로, 마우솔로스와 아르테미시아의 조각상이 마차 조각상 근처에서 발견되었지만, 그들의 상이 마차를 타고 모습을 하고 있지 않았다는 것 등을 들 수 있다. 분명히, 그들의 상은 2층 또는 1층에 다른 조각상처럼 놓여 있던 것 같다.

중세[편집]

보드룸 성

영묘는 오랜 세월 동안 할리카르나소스 시가를 내려보았다. 기원전 334년 알렉산드로스 대왕에게 도시가 함락되었을 때에도 영묘는 무사했고, 기원전 62년기원전 58년 해적의 공격에서도 파괴되지 않았다. 영묘는 16세기라는 긴 시간 동안 할리카르나소스의 폐허 위에 서 있었다. 마우솔로스의 영묘는 12세기에서 15세기 사이에 있었던 여러 차례의 지진으로 구조물이 내려앉으면서 지붕 위에 올려져 있던 마차상은 땅에 떨어져 파괴되었다.[5][6] [7] 1404년이 되면서 영묘의 기단 부분만을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파괴가 진행되었다.

남동쪽에서 본 보드룸 성

로도스의 성 요한 기사단이 이 지방을 침공하여 보드룸 요새(성 베드로 성채)를 지었다. 1494년 요새 건설이 결정되면서, 그들은 영묘의 잔해 석재를 이용했다. 또한 1522년 오스만 군이 쳐들어온다는 소문이 흘러나오자 그들은 보드룸 성(구 건설된)의 요새를 강화하기 위해 남아 있던 파편도 모두 성벽에 사용했다. 오늘날에도 이 요새의 흔적이 남아 있는 성벽에서 무덤에 사용된 대리석을 볼 수 있다.

기록에 의하면 이 무렵 한 무리의 기사들이 영묘 유적의 토대로 출입하여, 관의 틈을 발견했다고 한다. 그곳을 발견한 날은 이미 돌아갈 시간이었으므로, 기사들은 관을 열지 않고 돌아갔는데, 다음날 그들이 관을 열면 있어야 하는 보물과 마우솔로스와 아르테미시아의 시신은 사라져 버렸다고 한다. 기사들은 주변의 주민이나 해적이 약탈했다고 주장했지만, 실제로 약탈한 것은 기사들 자신이었다고도 전한다.

기사들은 마우솔로스의 영묘에 남아 있던 조각들이 깨어져서, 성벽 자재가 되기 전에 몇 가지 뛰어난 작품을 보드룸 성으로 옮겨서 모아 놓았다. 십자군이 물러난 뒤에도 300년 동안 그것들은 그곳에 보관되어 있었다. 또한 이들 중 일부는 대영박물관에 소장되거나, 이후 무덤 유적의 발굴 자료로 영향을 주게 된다.

발굴[편집]

현재 영묘의 유적

1856년, ‘마우솔로스의 영묘’ 유적을 조사하기 위해 대영박물관은 고고학자 찰스 토머스 뉴턴을 파견했다. 뉴턴은 플리니우스 등 고대학자들이 쓴 책을 읽는 등, 대략적인 크기와 위치는 파악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이 직면한 곤란은 가장 유망한 곳과 지목한 장소가 주거 지역이었다는 것이었다. 꺼리는 소유자로부터 토지를 구입해야만 했지만, 뉴턴은 굴하지 않고 2개월 이상 끈기있게, 구입에 성공했다.

그곳을 파들어 가자 과연 벽, 계단 그리고 기초가 출토되었다. 또한 페르시아의 왕 크세르크세스의 이름이 새겨진 화려한 항아리도 찾게 되어 뉴턴의 신념은 증명되었다. 그 계단을 메우고 있는 잔해를 파고 들어 가는 사이에, 무덤 입구의 복도가 나왔고, 관 틈새를 찾아낼 수 있었다. 물론 그곳은 이미 약탈된 후여서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1960년에 열린 고고학자의 연구 조사에서는 성 요한 기사단이 들어오기 훨씬 이전에 도적이 관 사이의 아래에 터널을 파고 약탈했던 것들이 밝혀졌다. 또한, 마우솔로스와 아르테미시아의 시신은 화장되었기 때문에, 관 사이에 유골을 넣은 항아리 밖에 없었다고 한다.

현재도 무덤 유적은 보드룸 시내에 남아 있으며, 유적 옆에는 박물관이 세워져 있다. 이 박물관에서는 최근 조사에 근거한 견해와 과거 무덤에 있던 주춧돌이나 조각 등의 유물을 볼 수 있다. 또한 이스탄불에 터키의 역사 건조물 중 하나로 무덤의 모형이 놓여있다.

현재 대영박물관에는 뉴턴들이 찾아낸 유물뿐만 아니라 십자군이 입수한 후 영국의 수중에 들어간 마우솔로스의 영묘에서 나온 조각상이 전시되어 있다. 유명한 것을 들면, 지붕 위에 타고 있던 마차의 바퀴와 한 마리의 말의 동상, 77개 조각에서 복원된 마우솔로스 동상, 8마리의 사자상 조각 등이 있다.

각주[편집]

  1. “할리카르나소스의 마우솔리움은 최근에 발견된 유적에 따라서 복원되었다.” J. Murray, p5. 런던
  2. Kostof, Spiro (1985). 《A History of Architecture》. 옥스퍼드: 옥스퍼스 대학교 출판부. 9쪽. ISBN 0-19-503473-2. 
  3. Gloag, John (1969) [1958]. 《Guide to Western Architecture》 개정판. The Hamlyn Publishing Group. 362쪽. 
  4. Smith, William (1870). “Dictionary of Greek and Roman Antiquities, page 744”. 2006년 9월 21일에 확인함. 
  5. “Mausoleum of Halicarnassus”. 2014년 2월 5일에 확인함. 
  6. “The Mausoleum at Halicarnassus”. 2014년 2월 5일에 확인함. 
  7. “The Mausoleum of Halicarnassus”. 2014년 2월 5일에 확인함. 

참고 문헌[편집]

  • Kristian Jeppesen, et al. The Maussolleion at Halikarnassos, 6 vols.
  • Bodream, Jean-Pierre Thiollet, Anagramme Ed., 2010. ISBN 978-2-35035-279-4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