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 (수메르)

마리(Mari)는 텔 하리리에 위치한 시리아의 고대 도시이다. 유프라테스강 서쪽 제방의 현재의 아부 카말에서 북서로 11km 떨어져 있으며 시리아의 데이르-에즈조의 남동쪽 약 120km에 위치한다.

기원전 5000년부터 거주자가 있었다고 생각되나 기원전 2900년 무렵에 홍수에 잠겨 유물들이 소실되었다. 기원전 1800년경부터 아시리아의 식민지로 전락해 대부분이 파괴되었으며, 기원전 1759년 바빌로니아함무라비는 마리를 포함한 아시리아의 주요 식민지들을 약탈하였다.


두 번째 천년의 시리아 지도, 마리가 지도에 보인다.

지도[편집]

v  d  e  h메소포타미아의 고대 도시들
  : 수메르의 도시[1]
  : 엘람의 도시
  : 아카드 제국의 도시
  : 아모리인의 도시
  : 바빌로니아의 도시
  : 아시리아의 도시
  : 현대의 이라크 · 이란의 도시

고대 역사[편집]

마리는 기원전 다섯 번째 천년부터 거주자가 있었지만, 중요한 도시는 기원전 세 번째와 두 번째 천년의 기간 중에 건설되었다. 마리의 주민은 셈족이었으며 에블라이트아카드인 일부의 이동으로 생각된다.

첫 황금기[편집]

도시는 하부 메소포타미아와 북 시리아 도시간의 연결점으로 전략적으로 중요하게 되면서 번영하였다. 수메르는 북시리아에서 원목과 석재를 들여와 건설하였고 이들 재료들은 마리를 거쳐 수메르까지 가야 했다. 기원전 2900년부터 유명해지기 시작한 마리는 기원전 2550년경에 황금기를 맞이한다.

파괴[편집]

하지만 기원전 2350년경에 파괴되었다. 이 파괴는 영역의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감소하는 시기를 가져왔다. 그리고 도시는 작은 동네로 축소되었다. 사학자들은 언제 누가 도시를 파괴하였는지에 대해 여러 가지 의견이 있다. 혹자는 아카드의 사르곤이 마리를 통과하여 서쪽으로 유명한 원정을 하였다고 한다. 한편 다른 이들은 에블라이트가 마리의 전통적인 경쟁 도시였다고 말한다.

두 번째 황금기[편집]

마리의 짐리-림 왕의 점토판 , ca. 1780 BC, 루브르

도시의 상태는 아모리트 왕조 아래에서 다시 되살아났다. 기원전 1900년경이었다. 두 가지 중요한 고고학적 발견이 이 시기로 연대가 측정된다. 마리의 왕 짐리-림의 왕궁은 300간의 방을 포함한다. 왕궁은 이 시대의 최대였다. 그리고 인근 도시들에 그 명성은 잘 알려져 있었다. 아마도 얌카드의 왕과 우가리트의 왕이 스스로 확인하기 위해 왕궁을 방문하려는 야심을 표현하였다.

멸망[편집]

마리는 기원전 1800년경 아시리아의 공격을 받고 도시의 대부분이 파괴되었으며 결국 기원전 1759년 바빌로니아의 함무라비에게 완전히 파괴되었다. 이것은 수많은 도시의 점토판에서 알려졌는데 짐리림과의 오랜 동맹을 배반하고 전투에서 그를 격파한 함무라비의 산하에 자발적으로 들어갔다. 기원전 1800년 이후 아시리아인과 바빌로니아인이 거주하였지만 도시는 알렉산드로스 3세가 이끄는 그리스 인이 도착하는 기원전 4세기까지 아시리아인들과 바빌로니아인들은 이 마을을 지켰다.

  1.  위 지도에는 우바이드(30°58′N 46°05′E)와 우르(30°57′N 46°06′E)가
     같은 위치에 표시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