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 반대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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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 반대 운동(落胎反對運動)은 낙태의 합법화와 선택적 낙태에 반대하는 운동이다.

국가별 운제[편집]

프랑스[편집]

1971년 프랑스에서 최초의 반낙태 운동 단체인 Laissez-les-vivre-SOS futures mères가 설립되었다. 소속 주요 인물로는 유전학자 제롬 르준(Jerome Lejeune)이 있다. 반낙태 시위 Marche pour la vie를 2005년부터 매년 개최하고 있다.

아일랜드[편집]

주요 단체로는 Pro Life Campaign과 Youth Defence가 있다.

리히텐슈타인[편집]

2011년에 실시된 국민투표에서 찬성 47.7%, 반대 52.3%로 낙태 합법화 법안이 부결되었다.

스페인[편집]

2010년 1,067,315명의 국민들이 자유 낙태 반대 청원에 서명하였다.

영국[편집]

주요 단체로는 Society for the Protection of Unborn Children가 있다. 이는 세계 최초의 반낙태 운동 단체이다.

이스라엘[편집]

주요 단체로는 Efrat이 있다. Efrat은 임신 여성에 대한 경제적 지원을 주요 활동으로 하고 있다.

일본[편집]

1945년 일본이 패망하기 전 자기나라의 국법을 어겨 아무도 처벌하지 않고 태아를 놓지 않고 살해하며, 일본남자가 분노하여 산채로 낙태녀를 생매장당하였으나, 일본제국은 패망함으로써 미군이 일본을 통치할 때 낙태녀생매장을 금지하였으나 일본정부의 반대로 거부를하였고, 1945년 일본이 패망한 이후 1949년부터 아시아의 최초로 낙태를 반대한운동이 일어나고 있으며, 일본인이 낙태를 종식하고 있다. 일본남자는 미국정부에 합류하여 최초로 낙태한 여자를 처벌허용한 바가 있다.

캐나다[편집]

대표 단체인 Canada Silent No More은 후기낙태와 부분출산낙태에 대한 금지법 제정을 주장하고 있다.

미국[편집]

1973년 로 대 웨이드 사건 이후 지속적인 반낙태 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대한민국[편집]

1953년 한국전쟁 종전계기로 이승만정부 때 낙태한 여자에게 처벌받을수 있다. 2019년 4월 11일 헌법재판소가 낙태처벌불합치로 선고된 계기로 한국 국민(남성과여성)들은 분노하여 2020년(2020년전후)말까지 낙태죄처벌을 계속 데모하여 낙태위헌철폐(불가능)할때까지 낙태반대시위를 계속하고 있다.

외부 링크[편집]

반낙태 운동 단체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