궈모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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궈모뤄

궈모뤄(郭沫若, 1892년~1978년)는 중화인민공화국의 문학자, 정치가, 극작가이다. 본명은 개정(開貞), 호는 정당(鼎堂)이며, 모뤄(沫若)는 자이다.

쓰촨 성 쟈딩 푸(嘉定府)의 중류 정도의 지주의 셋째 아들로서 출생하였다. 5세경부터 사서오경을 읽었다. 1914년 일본규슈대 의학부에 들어가 근대적인 과학연구 방법을 몸에 익혔다. 이 사이에 시작(詩作)을 시작했으며 1921년에는 창조사(創造社)를 결성하여 낭만주의 문학운동을 일으켰다. 그는 일본 여자와 결혼하고 극작가로서 여성해방을 테마로 한 <3인의 반역적 여성>을 발표했다. 이 작품은 중국 현대극 중 본격적인 사극으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국내에서 국민혁명의 기운이 고조되어 1926년 국민혁명군북벌을 개시하자 붓을 버리고 스스로 거기에 참가하여 우한·상해 등지에서 활약하다가, 1927년의 국공분열(國共分裂) 후 일본에 망명, 이로부터 10년간 중국 고대사회의 연구에 몰두하였다. 그것은 현실로부터의 도피가 아니라 당시의 새로운 출로(出路)를 탐구한 중국사회연구의 일환으로서 신비에 가려져 있던 고대사회를 처음으로 과학적으로 연구하였다. 1937년 세계 2차대전충칭으로 귀국하여 문화공작의 책임을 맡고 항일전선에 참가하여 선전활동에 종사하는 중에 극작(劇作)이나 평론 등을 많이 발표하였다. 그 때 발표된 희곡 〈굴원(屈原)〉은 <굴원(屈原)>(1942)의 내용은 혁명아 굴원이 중국을 위하여 항쟁하는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것으로, 고대의 위대한 애국시인의 말을 빌어서 국민당의 부패 양상을 들추어내기도 하였다.

그 밖에 <호부(虎符)> <공작담(孔雀膽)> 등의 사극이 있고, <궈모뤄 희곡소설집(郭洙若戱曲小說集)>이 나왔다. 1949년 파리평화회담에 문화인 대표로 참가하고, 중공 정무원 부총리겸 과학원장 등 요직을 거쳤으나, 문화대혁명 초기 모진 비판을 받고 그 동안의 모든 발표작을 스스로 부정하고 나섰다.

작품목록[편집]

  • 여신 《女神
  • 아침은 너무 늦다
  • 족발 《豕蹄》
  • 금강산 애화기 《波》《地下的笑聲》
  • 곽말약자서전 1-3 《沫若自傳》(4卷)
  • 이백과 두보 《李白与杜甫》
  • 중국고대사상사
  • 역사소품
  • 굴원 《屈原
  • 채문희 《蔡文姬


참고 자료[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