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와모토 다이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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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와모토 다이조
개인 정보
로마자 표기 Taizo Kawamoto
출생일 1914년 1월 17일
출생지 일본의 기 일본 아이치현 세토시
사망일 1985년 9월 20일(1985-09-20)(71세)
사망지 일본의 기 일본 오사카부 오사카시
포지션 공격수
구단 기록*
연도 구단 출전 (득점)
와세다 WMW
오사카 SC
국가대표팀 기록
1934-1954 일본 9 (4)
지도자 기록
1956-1958 일본 (수석 코치)
* 구단의 출전횟수와 득점기록은 정규 리그의 공식 리그 경기 기록만 집계함.

가와모토 다이조(일본어: 川本 泰三, 1914년 1월 17일 ~ 1985년 9월 20일)는 일본의 전 축구 선수이자 전 축구 지도자로 현역 시절 포지션은 공격수였다.

선수 시절[편집]

클럽[편집]

1914년 1월 17일 일본 아이치현 세토시 출생으로 이치오카 고등학교, 와세다 대학 졸업 후 와세다 WMW에 입단하여 1940년 일왕배 준우승을 차지했고 제2차 세계 대전 종료 이후인 1949년 12월 일본으로 돌아와 오사카 SC에 입단하여 일왕배 3회 연속 준우승에 기여했다.

국가대표팀[편집]

와세다 대학에 재학 중이던 1934년 일본 A대표팀에 첫 승선한 뒤 같은 해 열린 1934년 극동 선수권 대회에 출전하여 인도네시아와의 1차전에서 국제 A매치에 데뷔하자마자 후반 7분 A매치 데뷔골을 신고했고 필리핀과의 2차전에서도 0-3으로 뒤지고 있던 전반 30분 만회골을 기록하며 팀의 4-3 역전승에 일조했다.

이후 1936년 하계 올림픽에도 출전하여 1924년 하계 올림픽 동메달에 빛나는 북유럽의 강호 스웨덴과의 1라운드 경기에서 0-2로 지고 있던 후반 4분 만회골을 터뜨리며 팀의 3-2 역전승과 함께 8강 진출을 견인했는데 당시 대중들을 비롯한 여러 여론들은 이 경기를 두고 '베를린의 기적'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대한민국과의 1954년 FIFA 월드컵 아시아 지역 예선에 출전했으나 1·2차전 합계 3-7의 완패를 당했고 그로부터 2개월 후에 열린 1954년 아시안 게임에도 참가하여 인도와의 C조 조별리그 2차전에서 득점을 기록하기도 했으나 팀은 2전 전패로 조별리그에서 탈락하는 수모를 피해가지 못했고 그렇게 1954년 아시안 게임이 끝난 후 A매치 통산 9경기 4골의 기록을 남긴 채 국가대표팀에서 은퇴했다.

지도자 시절[편집]

은퇴 후 2년이 지난 1956년 일본 A대표팀의 수석 코치로 부임하여 같은 해에 열린 1956년 하계 올림픽에 참가하였으나 이 대회 개최국이자 홈팀인 호주와의 1라운드에서 0-2로 패하며 8강 진출에 실패했고 1958년 아시안 게임에서도 팀을 이끌었으나 C조 조별리그에서 필리핀홍콩에게 또 다시 패하며 2회 연속 조별리그 탈락의 아픔을 맛보았다.

그리고 1985년 9월 20일 위암과의 투병 끝에 오사카시에서 71년간의 삶을 끝마쳤고 사후 20년이 지난 2005년 일본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통계[편집]

일본
연도 출전
1934 3 2
1935 0 0
1936 2 1
1937 0 0
1938 0 0
1939 0 0
1940 1 1
1941 0 0
1942 0 0
1943 0 0
1944 0 0
1945 0 0
1946 0 0
1947 0 0
1948 0 0
1949 0 0
1950 0 0
1951 0 0
1952 0 0
1953 0 0
1954 3 0
합계 9 4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