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섬유
명주(明紬) 또는 주(紬)는 누에의 고치로부터 얻은 천연 단백질 섬유인 견사(絹絲, 곧 명주실) 및 명주실로 짠 천(견(絹))을 통틀어 일컫는 말이다. 원래는 주(紬)라고 불렸으나, 명나라에서 만든 견이 널리 알려지면서 명주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비단(緋緞)은 명주 가운데 특유의 광택을 띠는 천을 가리키며, 이러한 광택은 빛을 산란하여 프리즘과 같이 형형색색의 반사광을 만들기 때문에 생겨난다. 한국어 고유어로는 깁으로도 불리는데, 이는 조금 거칠게 짠 비단을 가리키며, 사라(紗羅)로도 불린다.
여러 종류의 유충이 번데기가 되면서 단백질 섬유를 만들기는 하지만 누에처럼 양이 많지는 않다. 누에가 만드는 고치는 번데기 전체를 명주실로 감싸기 때문에 인간은 오래 전부터 이를 섬유로 이용하였다. 비단은 중국, 남아시아, 유럽과 같은 지역에서 오래 전부터 이용되어 왔다.
명주실은 누에고치에서 얻었기 때문에 잠사(蠶絲) 또는 견사(繭絲)라 하며, 그밖에 비단실, 깁실, 진사(眞絲) 등으로 불린다.
역사
최초의 명주(비단)는 기원전 6000년 무렵에서 기원전 3000년 무렵 사이 고대 중국에서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중국의 전설에 따르면, 황제의 아내 누조(嫘祖)가 처음 비단을 만들었다고 한다.[1] 비단은 원래 중국의 왕과 귀족만이 사용하였으나 중국 문화의 전파와 함께 여러 지역으로 전파되었다. 비단은 아시아의 대부분 지방에서 가장 귀한 옷감으로 취급되었으며, 아주 오래전부터 중국의 중요한 수출품으로 자리잡았다. 비단은 산업혁명 이전 시대의 무역에서 가장 무역량이 큰 상품이었다. 2007년 중국의 고고학자들에 의해 장시 성에서 약 2,500년 전의 비단 옷감과 베틀, 염료 등이 발굴되어, 동주 시대부터 비단이 대량으로 생산되었음이 알려졌다.[2] 한편 한나라(기원전 202년~220년) 시대의 유적인 마왕퇴에서 비단의 생산을 위한 전문 기술인 집단이 있었음을 암시하는 여러 유물들이 발굴되기도 하였다.
고대 비단 무역의 증거로는 기원전 1070년 비단을 이용한 고대 이집트 제21왕조의 미라가 있다.[3] 이러한 비단 무역은 결국 중국과 인도, 중동, 북아프리카, 유럽을 잇는 무역로로 발전하였다. 이 무역로가 바로 비단길이다.
생산
명주는 약 30여 국가에서 생산되고 있다.
주요 명주 생산국 — 2005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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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 생산액 ($1000) | 비고 | 생산량 (MT) | 비고 |
중화인민공화국 | 978,013 | C | 290,003 | F |
인도 | 259,679 | C | 77,000 | F |
우즈베키스탄 | 57,332 | C | 17,000 | F |
브라질 | 37,097 | C | 11,000 | F |
이란 | 20,235 | C | 6,000 | F |
태국 | 16,862 | C | 5,000 | F |
베트남 | 10,117 | C | 3,000 | F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 5,059 | C | 1,500 | F |
루마니아 | 3,372 | C | 1,000 | F |
일본 | 2,023 | C | 600 | F |
F = 국제연합식량농업기구, C = 산출량; 산출액은 1999-2001 국제가격 기준 |
명주의 이용
명주실을 뽑아 이용하기까지의 과정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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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에 유충은 자라면서 마디가 늘어나는데 1마디가 늘어날 때마다 1령, 2령과 같이 부른다. 6령이 되면 고치를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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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에고치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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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에고치를 삶아 비단을 뽑는다. 한국에서는 고치를 뽑고 난 번데기를 먹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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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색된 비단으로 실을 잣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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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으로 천을 짜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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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 스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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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 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