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월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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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월폴

제1대 오포드 백작 로버트 월폴(Robert Walpole, 1st Earl of Orford, KG, KB, 1676년 8월 26일~1745년 3월 18일)은 영국정치인이다. 케임브리지 대학을 졸업한 후 휘그당에 들어가 1701년 하원 의원으로 선출되었다. 조지 1세 때 내각의 중심 인물로서 남해 거품 사건 등 어려운 경제 문제들을 잘 처리하여 1715년 첫 총리가 되었고 1721년 4월 4일부터 1727년 6월 11일까지는 영국 총리라는 신분으로써 조지 1세 영국 왕의 대리청정을 맡기도 하였다.

그 후 20년간 총리로 있으면서 정당 간의 다툼·종교적인 대립을 없애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러나 에스파냐 왕위 계승 문제로 왕과 다투고 1741년 수상직에서 물러났다. 1742년 백작 작위를 받았다. 영국 정치사에 있어서 책임 내각 정치를 처음 실시한 정치가로 이름이 높다.

생애

잉글랜드 동부의 노퍽 주젠트리 계급 출신으로 집에서는 휘그당을 지지하였다. 이튼스쿨에서 1696년 대학에 가서 성직자를 목표로 하고 있으나 위의 형이 요절했기 때문에 가산의 상속자로, 휘그당에서 하원 의원에 당선하여 정계에 진출한다.

영국 남해회사 사건에서 정치가로서의 역량을 발휘하여, 앤 여왕 사후 하노버 왕가조지 1세(하노버 왕가를 겸하는) 하에서 첫 경제 수장에 취임하여, 사실상 총리로 1721년부터 1742년까지 21년간에 걸친 장기 집권을 운영한다. 대 프랑스 유화책, 토지세 완화 정책으로 스튜어트 왕조의 부활을 목표로 하는 자코바이트(Jacobite, 스튜어트 왕조 부활론)의 위협을 이용하여 휘그당과 양당 체제를 구축한다.

1730년대 말부터 있어 온 정치 부패와 소비세 확대, 대 프랑스 평화 정책 등으로 인해 정권이 신뢰를 잃었고, 1741년에 실시된 총선에서 스코틀랜드, 콘월 등에서 패배하여, 여야의 격차가 좁혀졌다. 따라서 당시의 국왕 조지 2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다음해 1742년 제1 경제수장 직위에서 사임했다. 이 때문에 의회 내에서 우세한 세력이 내각을 조직하여 의회에 대해 책임을 갖는다는 의원내각제(책임 내각제)의 기초가 만들어졌다. 은퇴 후에는 초대 오 포드 백작이 되었고, 1745년에 사망했다.

서훈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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