핼리 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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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핼리 혜성(Halley's Comet) | |
|---|---|
| {{{그림설명}}} | |
| 발견 | |
| 발견자 | 애드먼드 핼리 |
| 발견일 | 1531년 [[]] |
| 임시이름 | |
| 궤도 특성 | |
| 이심률(e) | 0.967 |
| 궤도장반경(a) | 17.8 AU |
| 근일점(q) | 0.586 AU |
| 원일점(Q) | 35.1 AU |
| 공전 주기(P) | 75.3 년 |
| 평균 공전 속도 | km/s |
| 궤도 경사(i) | 162.3˚ |
| 승교점 경도(Ω) | ˚ |
| 근일점 인수(ω) | ˚ |
| 물리적 성질 | |
| 지름 | 15×8×8 km |
| 질량 | (2.2ㅡ3)×1014 kg |
| 평균 밀도 | 0.6 g/cm3 |
| 적도 중력 | |
| 탈출 속도 | |
| 자전 주기 | 2.2 일 |
| 반사율 | 0.04 |
| 온도 | |
| 분광형 | |
| 겉보기 등급 | |
| 절대등급 | |
1986년의 핼리 혜성
핼리 혜성(공식 명칭은 1P/Halley)은 그 주기와 다음 접근 시기를 예측한 에드먼드 핼리의 이름을 딴 혜성으로, 약 75~76년을 주기로 지구에 접근한다. 매 세기마다 더 밝은 혜성이 찾아오지만, 여러 혜성 중 가장 그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다.
마지막으로 관측된 연도는 1986년으로, 다음 접근 시기는 2061년 여름이 될 것으로 예측된다.
[편집] 조선에서의 출현 및 관련 기록
조선에서는 특히 반란이나 쿠데타의 징조로 혜성을 해석하곤 했는데, 혜성이 흰 빛을 띠면 장군이 역모를 일으키며 꼬리가 길고 클수록 재앙이 크다고 생각했다.
- 1456년 : 조선 세조 때 혜성의 출현으로 성삼문 등 사육신으로 후대에 칭하는 이들이 거사를 도모하였다는 기록이 조선왕조실록에 나타나 있다. 하지만 5일 후 성균사예 김질의 밀고로 실패로 돌아갔다.
- 1531년 : 조선 중종 때 좌의정까지 오른 김안로는 권력을 남용하다 세자 호(峼)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계비인 문정왕후를 폐위하려다 발각되어 1537년 사약을 받았다. 조선왕조실록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혜성이 보이는 조짐의 응보는 큰 것이다. 김안로가 등용되자마자 혜성의 요괴로움이 바로 나타나니, 하늘이 조짐을 보임이 그림자와 메아리보다도 빠른 것이다.
- 1607년 : 조선 선조 때로 왜란 전후의 어수선한 혼란으로부터 점차 안정을 다지던 무렵이었다. 공교롭게도 그해 선조는 병석에 누워 다음해 사망에 이른다. 조선왕조실록에는 다음의 기록이 남아 있다.
구름이 짙게 끼어 혜성을 살필 수가 없다.
- 1759년 : 조선 영조 때로 영조가 건강상의 이유로 사도세자에게 대리청정을 맡기고 있던 시기였는데, 혜성의 계속된 출현으로 천체의 재앙을 늦추는 방도는 오직 세자 저하께서 몸을 돌이켜 수성하는 데 있을 것이라는 요지의 상소가 올라왔다. 이에 사도세자는 따르겠다는 표시를 하였으나, 2년 후 영조 몰래 궁궐을 빠져나가 유람을 즐기는 등 계속되는 돌발 행동이 있었다. 그로 인해 영조의 불신은 더욱 커져 결국 1762년 뒤주에 갇혀 사망에 이른다.
혜성이 저녁에 나타났는데 빛은 희고 꼬리의 길이는 2척 가량이었으며 북극과의 거리가 32도였다. 또 4경에 혜성이 서쪽으로 사라졌는데, 헌종은 측후관을 임명하여 윤번으로 숙직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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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참고 문헌
- 사육신을 궁지로 몰아넣은 핼리혜성 (상·하), 《사이언스타임즈》, 2008년 7월 31일, 2008년 8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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