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두메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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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두메르

조제프 아타나즈 폴 두메르(Joseph Athanase Paul Doumer, 1857년 3월 22일 ~ 1932년 5월 7일)는 프랑스의 정치가, 대통령이다.

오베르뉴 지방의 캉탈 오리야크 출생으로 국립공예원(國立工藝院)에서 수학을 전공, 6년간 망드에서 교사로 근무했으며, 저널리스트로도 활동하다가 1888년, 주(州)의 급진당 소속 하원의원으로 당선, 정계에 진출하였다. 재정 전문가로 명성을 얻어 1895년 11월, 레옹 부르주아 내각의 재무장관으로 입각(入閣), 누진(累進)소득세 도입을 구상했으나 상원의 반대에 부딪쳐 성사시키지 못한 채, 5개월만에 사임하였다. 1897년 2월, 인도차이나 총독으로 부임해 재임 중 행정제도를 정비하고, 증세(增稅) ・공공토목사업의 전개를 통하여 식민지 통치의 기반을 다졌는데, 한편으론 과도한 세금과 전매 문제로 토착민의 원성을 사기도 했다.

귀국(1902) 후 하원에 복귀, 급진사회당 우파의 리더격으로 당(黨) 노선의 온건화를 도모하였으며, 1905년 2월부터 이듬해 6월까지 하원의장으로 재직했다. 1906년 대통령 선거에 보수파 후보로 출마했으나, 중도좌파 연합의 아르망 팔리에르에게 패배한데다, 1910년 4월의 총선에선 의원직마저 상실했지만, 코르시카로 선거구(選擧區)를 바꿔 상원의원에 당선되었다(1912). 1917년 9월, 제1차 팽르베 내각의 무임소장관 겸 전시(戰時)경제위원장으로 입각, 전후(戰後)에도 공직생활을 계속하면서 제7차 브리앙 내각(1921.1~1922.1)과 제8차 브리앙 내각(1925.12~1926.3)의 재무장관으로 재정 재건에 몰두하였다. 1927년 1월, 상원의장에 취임한 동시에 예산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한 데 이어 1931년 5월 13일, 상원 보수세력의 지원을 받아 브리앙을 물리치고 제3공화국 14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취임은 6월 13일).

1932년 5월 6일 오후 3시경, 파리로트실트 회관에서 개최된 '종군(從軍)작가 구제를 위한 도서판매회'에 참석하던 도중, 정신착란증 환자로 판명된 백계(白系) 러시아인 파벨 고르굴로프로부터 저격당해 다음날인 5월 7일 오전 4시 37분 사망하였다(고르굴로프에게는 단두대 공개처형이 선고되어 9월에 집행). 슬하에 5남 3녀를 둔 자식부자이자, 철저한 금주(禁酒) ・금연가(禁煙家)로 성실한 업무 태도와 인품이 평가되어 여론의 기대가 높았다고 한다. 베트남 하노이롱비엔 대교(大橋)는 그가 인도차이나 총독으로 재직할 당시(1899~1902) 건설된 것으로 아시아 최장길이(2.5km)의 교각이었으며, 1954년까지 폴 두메르 대교라 불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