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대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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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대세
(鄭大世)
Jong Tae-Se.jpg
개인 정보
로마자 표기 Jong Tae-Se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출생 1984년 3월 2일(1984-03-02) (30세)

일본 일본 아이치 현 나고야 시

181cm
포지션 스트라이커
클럽 정보
현 소속팀 대한민국 수원 삼성 블루윙즈
등번호 14
청소년 클럽
1997-1999
1999-2002
2002-2005
일본 도슌조선초중급학교
일본 아이치조선중고급학교
일본 조선대학교
클럽1
연도 클럽 출장수 (골)
2006-2009
2010-2012
2012
2013-
일본 가와사키 프론탈레
독일 보훔
독일 쾰른
대한민국 수원 삼성 블루윙즈
1120(47)
0390(14)
0100(0)
0510(17)
국가대표팀2
2006-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0330(15)

1성인 클럽 출장수와 골은 정규 리그 기록만 세며,
2013년 10월 13일 기준입니다.
2국가대표팀의 출장수와 골은
2009년 8월 28일 기준입니다.

정대세 (鄭大世, 1984년 3월 2일 ~ )는 재일 한국인 3세 출신으로, 현재 대한민국 K리그 클래식 수원 삼성 블루윙즈 소속의 대한민국 국적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축구 선수이다. 인민 루니[1], 인간 불도저[2] 등의 별명을 가지고 있다.

개요[편집]

그는 대한민국 국적을 가지고 있지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축구 국가대표팀으로 출전한다. 조부모는 대한민국 국적과 일제 강점기 해방전 조선의 국적, 둘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상황에 일본에서 태어났다. 그의 조부모는 대한민국 국적을 선택했으며, 그도 대한민국 국적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일본에서 조선학교에 다니며 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 (조총련)계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2006년 FIFA 월드컵 아시아 지역 예선에서 일본에게 지는 모습을 본 후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뛰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대한민국 국적을 갖고 있던 정대세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대표로 뛸 수가 없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이중국적을 허용하지 않기에 다른 나라 국적을 취득하려면 반드시 대한민국 국적을 포기해야 하는데, 대한민국 정부는 북한을 자국의 영토로 여겨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기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적 취득을 위한 대한민국 국적 포기 신청도 불가능했다. 그러다 재일조선인축구협회의 도움 속에 국제축구연맹(FIFA)에 분단국가의 상황과 자신의 독특한 가족사를 설명한 자필 청원서를 보내는 등의 우여곡절 끝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가대표가 될 수 있었다. 출국 시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여권을 이용하며, 대한민국에 갈 때는 영사관에서 임시 여권을 발급받는다고 한다.[3]

출신 학교[편집]

  • 아이치조선제2초급학교(아이치현)
  • 도슌조선초중급학교 중급부(아이치현)
  • 아이치조선중고급학교 고급부(아이치현)
  • 조선대학교 체육학부(도쿄도)

선수 경력[편집]

2006년 도쿄 도에 있는 조선대학교를 졸업하고, 가와사키 프론탈레에 입단했다. 팀에서 9번을 달고 공격수로 뛰었고, 데뷔 하던 해 7월 19일 가시마 앤틀러스전에서 리그 첫 골을 기록했다.

독일 진출[편집]

2010년 정대세는 독일 2부리그 VfL 보훔으로 이적하였다. 보훔에서 뛴 첫 시즌 팀은 승격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였지만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에게 패하며 팀은 승격에 실패하였고 정대세는 1부 리그 진출이 좌절되었다. 2012년 겨울 이적시장에서 FC 쾰른으로 이적을 하며 1부리그에 진출을 하였다. 그러나 주전 선수들에게 밀려 많은 출장을 하지 못했다. 팀은 분데스리가 17위를 기록하여 강등되었다. 팀이 강등되며 정대세는 다시 2부리그의 선수가 되었다.

2012년 시즌이 중반을 넘어서는 현 상황에서 출전을 전혀 하지 못한 상황에 좌절하며 K리그 클래식으로 진출을 염두에 둔 상황에서 2013년 1월 2일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 이적을 합의하였다.

국가 대표[편집]

2007년 동아시아컵 예선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대표로 뽑혔으며, 이듬해 열린 본선에서 일본과 대한민국을 상대로 각각 1골을 기록했다.

클럽 경력 통계[편집]

최신 업데이트: 2014년 12월 9일

연도 리그 디비전 출장
2006년 가와사키 프론탈레 일본 일본 1 16 1
2007년 가와사키 프론탈레 일본 일본 1 24 12
2008년 가와사키 프론탈레 일본 일본 1 33 14
2009년 가와사키 프론탈레 일본 일본 1 29 15
2010년 가와사키 프론탈레 일본 일본 1 10 5
2010/11년 VfL 보훔 독일 독일 2 25 10
2011/12년 VfL 보훔 독일 독일 2 14 4
2011/12년 1. FC 쾰른 독일 독일 1 1 0
2013년 수원 삼성 블루윙즈 대한민국 대한민국 1 23 10
2014년 수원 삼성 블루윙즈 대한민국 대한민국 1 28 7

기타[편집]

정대세는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첫 경기 전 국가가 울려퍼지던중 눈물을 흘렸는데 북한의 출전 자체도 주목받던 상황에서 그의 눈물은 큰 화제가 되었다. 같은해 9월에 미국에 있는 한국인 유학생들이 정대세의 눈물을 주제로 세계 평화를 기원하는 동영상을 만들어 올려 미국의 인터넷 잡지 '와이어드'가 주최한 대회에서 '평화를 가장 잘 전하는 동영상'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대상을 받아 또다시 화제가 되었다.[4]

정대세는 자기의 국적 혼란에 대해서 "어릴 때부터 조선학교에 다니면서 내 나라가 어딘지 내가 어느 나라 사람인지 배웠다. 꿈을 쓰면 '조선 축구 국가대표가 되고 싶다'고 적었다"라고 설명하였다.[5]

같이 보기[편집]

경력[편집]

수상[편집]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대한민국 수원 삼성 블루윙즈


개인

주석[편집]

  1. 김종한. "‘인민 루니’ 정대세 개막전 2골 폭발", 《한국일보》, 2010년 8월 24일 작성. 2010년 8월 28일 확인.
  2. 최용석. "FIFA “정대세는 인간 불도저”", 《동아일보》, 2008년 9월 5일 작성. 2010년 8월 28일 확인.
  3. (도쿄) 윤종구 특파원. "日출생…한국국적…北국가대표…‘축구 풍운아’ 정대세를 만나다", 《동아일보》, 2009년 8월 8일 작성.
  4. 세계 동영상대회서 '정대세 눈물'로 한국인 우승 mbc 2010년 9월 24일
  5. 서동철 기자. "정대세 “북한 선택했던 진짜 이유는…” 깜짝 고백", 《스포츠동아》, 2012년 6월 5일 작성. 2012년 8월 19일 확인.

바깥 고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