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센코부르크고타의 앨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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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버트 공
Albert of Saxe-Coburg-Gotha.jpg
앨버트 공의 사진, 1860년
영국 여왕 부군
재위 1840년 2월 10일~1861년 12월 14일
전임자 작센마이닝겐의 아델레이드
후임자 덴마크의 알렉산드라
배우자 영국의 빅토리아
자녀 프린세스 로열 빅토리아
에드워드 7세
헤센 대공비 알리체
에든버러와 작센코부르크고타 공작 알프레트
슐레스비히홀슈타인 공자비 헬레나
아가일 공작 부인 루이즈
코넛스트래선 공작 아서
올버니 공작 레오폴드
바텐베르크 공자비 베아트리스
본명 프란츠 알브레히트 아우구스트 카를 에마누엘레
부친 작센코부르크고타의 에른스트 1세
모친 작센코부르크고타의 루이즈
출생 1819년 8월 26일(1819-08-26)
작센코부르크고타 코부르크
사망 1861년 12월 14일 (42세)
영국 영국 버크셔 윈저 성
매장지 잉글랜드 세인트 조지 예배당
국적 영국
종교 영국 성공회

작센코부르크고타 대공 앨버트(Prince Albert of Saxe-Coburg and Gotha, 1819년 8월 26일 - 1861년 12월 14일)는 영국의 빅토리아의 남편이자 영국의 에드워드 7세의 아버지다. 본명은 프란츠 아우구스트 카를 알베르트 에마누엘 폰 작센코부르크고타(독일어: Franz August Carl Albert Emmanuel von Sachsen-Coburg und Gotha)이다.

그는 당시 유럽을 다스렸던 많은 군주와 연고가 있었던 작센코부르크잘펠트작센 공작령에서 태어났다. 스무 살에 그는 사촌지간인 빅토리아 여왕과 결혼하여 아홉 명의 아이를 두었다. 처음에 앨버트는 아무런 힘이나 관공직도 주어지지 않은 여왕의 배우자라는 자신의 처지를 갑갑하게 생각하였다. 죽을 때까지 그는 노예 제도 철폐와 교육 개혁 등 일반 대중의 요구 가운데 많은 부분을 받아들였으며, 여왕의 왕실 일가와 재산, 관청을 관리하는 일을 도맡았다. 앨버트는 1851년에 열린 국제박람회를 성공적으로 치러냈다. 정치적인 면으로 봤을 때의 그는 아내에게 의회 내에서의 정치적 당파 싸움에 중립을 지킬 것을 권고함으로써 영국의 입헌군주제를 한층 더 발전시켰다.

앨버트가 서거한 후, 빅토리아는 그녀 자신도 뒤따라 죽을 때까지 평생 검은색 상복을 입기를 고집하였다. 1901년에 빅토리아가 서거하자 두 사람의 아들 에드워드 7세가 왕위를 물려받아 작센코부르크고타 왕가의 첫 번째 영국 군주로 등극하였다.

전 임
작센마이닝겐의 아델레이드
영국 여왕 부군
1840년 2월 10일~1861년 12월 14일
후 임
덴마크의 알렉산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