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기원 (축구 선수)
| 윤기원 尹基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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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 정보 | ||
|---|---|---|
| 로마자 표기 | Yoon Ki-Won | |
| 국적 | ||
| 출생 | 1987년 5월 20일 | |
| 사망 | 2011년 5월 6일 (23세) | |
| 키 | 188cm | |
| 포지션 | 골키퍼 | |
| 청소년 클럽 | ||
| 2000-2002 2003-2005 2006-2009 |
연초중학교 거제고등학교 아주대학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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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럽1 | ||
| 연도 | 클럽 | 출장수 (골) |
| 2010-2011 | 인천 유나이티드 | 6 (0) |
|
1성인 클럽 출장수와 골은 정규 리그 기록만 세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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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기원(尹基源, 1987년 5월 20일 ~ 2011년 5월 6일)은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이다.
목차 |
[편집] 클럽 경력
윤기원은 2010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인천 유나이티드에 지목되어 입단하였다.[1]
입단 후 1년 가까이 2군에서 뛰었고,[2] 2010년 11월 7일, K리그 2010 제주 유나이티드와의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리그 데뷔전을 치렀다.[3] 이경기가 끝난 후 허정무 감독은 기자회견에서 윤기원의 발견은 큰 소득이며 앞으로 기대해볼 만한 선수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4]
2011 시즌에 앞서 그는 인천 유나이티드의 1번 등번호를 받았다.[5] 이후 2011 시즌 상주 상무 피닉스와의 개막전에 선발 출전하였다.[6] 이 경기를 포함해 그는 정규 리그 5경기와 K리그 컵에 2경기 출장하는 등 점점 출전 횟수를 늘리고 있었다.
[편집] 사망
2011년 5월 6일, 경부고속도로 하행선 만남의 광장 휴게소 주차장의 자가용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 차 안에는 번개탄과 100만원 상당의 현금봉투가 있었다. 아직도 그의 죽음을 둘러싼 의문이 제기되고있다.[7]
얼마 후 현금 100만원은 안종복 전 인천 유나이티드 사장의 퇴임 이벤트를 위해 구단 동료들과 모은 돈인 것으로 밝혀졌다.[8]
2012년 5월 6일 그의 사망 1주기, 지구의 반대편인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뛰고 있는 구자철(MF, 아우크스부르크)이 시즌 5호골을 기록함과 동시에 골세레머니로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어구를 보이면서 故 윤기원 선수의 1주기를 추모했으며 그에 따라 故 윤기원 선수에 대하여 다시 주목이 되고있다.
[편집] 기록
[편집] 클럽
2011년 4월 9일 기준
| 클럽 | 리그 | 시즌 | 리그 | 국내 컵 | 리그 컵 | 대륙 대회 | 통산 | |||||
|---|---|---|---|---|---|---|---|---|---|---|---|---|
| 출장 | 득점 | 출장 | 득점 | 출장 | 득점 | 출장 | 득점 | 출장 | 득점 | |||
| 인천 유나이티드 | K리그 | 2010 | 1 | 0 | 0 | 0 | 0 | 0 | - | 1 | 0 | |
| 2011 | 5 | 0 | 0 | 0 | 2 | 0 | - | 7 | 0 | |||
| 통산 | 6 | 0 | 0 | 0 | 2 | 0 | 0 | 0 | 8 | 0 | ||
[편집] 바깥 고리
[편집] 주석
- ↑ “<종합>홍명보호 '주전 수비수' 홍정호 1순위 제주行, 145명 지명”, 《뉴시스》, 2009년 11월 17일 작성.
- ↑ “아듀 문학, "심장이 뜨거웠던" 그 7년간의 기록”, 《오마이뉴스》, 2011년 3월 2일 작성.
- ↑ “제주, 인천과 0-0 무승부...정규리그 2위”, 《스포탈코리아》, 2010년 11월 7일 작성.
- ↑ “대개혁 예고한 허정무 감독, "내년 목표는 6강 진출"”, 《스포탈코리아》, 2010년 11월 7일 작성.
- ↑ “인천 유나이티드, 2011 시즌 등번호 확정”, 《조이뉴스24》, 2011년 2월 20일 작성.
- ↑ “'김정우 두 골' 상주, 인천 꺾고 첫 승 올려”, 《스포탈코리아》, 2011년 3월 6일 작성.
- ↑ “프로축구선수 윤기원 숨진채 발견”, 《연합뉴스》, 2011년 5월 6일 작성.
- ↑ “故 윤기원 차 안 100만원 용처 밝혀져”, 《스포츠서울》, 2011년 5월 8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