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스투스 폰 리비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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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스투스 폰 리비히

유스투스 폰 리비히(Justus von Liebig, 1803년 5월 12일 ~ 1873년 4월 18일)는 독일화학자이다. 어릴 때부터 화학에 매료된 리비히는 아버지가 운영하는 공장에서 가져온 화학 물질로 화약을 만들어 학교에서 폭발시키는 바람에 초등학교에서 퇴학당했다고 전해진다. 1820년 본 대학에 입학하였으나, 이듬해 카스터너 화학 교수를 따라 에를랑겐 대학으로 전학하였다가 퇴학당하였다. 박사학위는 에를랑겐 대학에서 받았다. 그러나 그를 아끼던 카스터너의 추천으로 파리 소르본 대학에서 강의를 들으며 게이뤼삭의 지도를 받았다. 1824년 귀국하여 21세의 나이로 기센 대학 조교수가 되어 그곳에서 세계 최초의 본격적인 화학 분야의 학과를 만들고 실험 중심의 화학교육을 실천하여 후일 최고의 화학 교육자로 불리게 된다. 그곳에서 14년간에 걸쳐 유기 화학 연구에 전념하였다. 리비히의 가장 중요한 업적 중 하나는 유기 화합물의 탄소와 수소의 분석 방법을 개발한 것이다. 리비히가 활동하던 19세기는 간단하지만 중요한 유기화합물들을 분리하고 연구하던 시기였다. 예컨대 글루코오스는 1747년에 건포도에서 처음 분리되었고, 1838년에 듀마(Jean Dumas)가 '달다'라는 뜻의 glycos로부터 glucose라고 명명했지만, 구조가 밝혀진 것은 19세기 에밀 피셔(Emil Fischer, 1902년 노벨 화학상)에 의해서였다. 한편 아미노산의 일종인 아스파라진(asparagine)은 1806년에 아스파라거스에서 발견되었고, 글루코스와 마찬가지로 달다는 말에서 유래된 글라이신(glycine)은 1820년 경에 동물 단백질인 젤라틴에서 발견되었다. 핵산의 다섯 가지 염기 중 하나인 구아닌(guanine)은 1844년에 바다 새의 똥이 굳어진 것으로 천연비료로 중요하게 사용되던 구아노(guano)에서 분리되었다. 이러한 물질을 조사하는 첫 단계는 탄소, 수소, 질소 등의 무게 퍼센트를 알아내는 것이다. 지금도 고등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탄소와 수소의 원소분석 방법은 리비히가 1830년대에 발전시킨 것이다. 시료를 연소하고 나오는 물은 오산화인(P2O5)과 같은 흡수제에 흡수시키고, 이산화탄소는 수산화포타슘(KOH) 같은 알칼리 용액에 흡수한 후 무게의 증가를 측정한다. 예컨대 근육의 원소 조성을 조사하려면 우선 근육 시료를 바짝 말려서 물의 양을 측정하고, 마른 시료를 가지고 리비히의 방법을 사용하면 될 것이다. 이 때 생성물로 얻어진 물과 이산화탄소는 무생물계에서 찾아 볼 수 있는 물이나 이산화탄소와 똑같다. 우리 몸의 탄수화물이나 단백질은 몸 밖의 물, 이산화탄소 등 무기물질로부터 만들어진 것이다.

리비히는 식물이 공기로부터 얻는 이산화탄소와 뿌리로부터 얻는 질소 화합물과 미네랄을 가지고 성장하는 것을 알아냈고, 그로부터 질소 비료를 개발하였다. 종전에는 식물의 성장에는 식물이 썩어 흙과 섞인 부식토(腐植土, humus)가 필수적이라고 생각했지만 리비히는 비료의 필수 성분은 질소라는 것을 밝힌 것이다. 우리나라가 중화학공업을 통해 성장과 식량의 자급자족을 이루어낸 1960, 70년대에 비료 공장은 중요한 역할을 했다. 리비히는 식물 성장에서 질소의 역할을 밝혔지만 막상 대규모로 질소비료를 생상하게 된 것은 하버가 공중 질소를 고정하는 방법을 개발하고 나서이다. 지금은 무기물로부터 유기물이 만들어지는 것이 당연시 되지만, 19세기 전반에 가장 위대한 화학자 중 하나인 베르셀리우스는 유기물과 무기물은 엄격히 구분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당시 널리 받아들여졌던 생기론(生氣論, vitalism)에 따라 유기물은 생체, 생명력과 관련된 특별한 물질로 생각되었던 것이다. 그러한 시기에 리비히는 이산화탄소, 질소화합물, 미네랄 같은 무기물과 식물의 성장을 연관지어 농화학, 생리화학, 생화학, 유기화학의 기초를 놓았으며, 언젠가는 당, 아스피린, 몰핀 등 천연물을 합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1828년에 리비히의 절친한 친구였던 뵐러는 생체에서만 만들어진다고 생각되었던 요소(尿素, urea)를 무기물인 시안산암모늄(ammonium cyanate)을 가열하여 실험실에서 합성함으로써 유기물과 무기물의 관련성을 보여주었다.

리비히의 다른 중요한 발명에는 리비히 컨덴서(Liebig condenser)와 은거울이 있다. 리비히 컨덴서는 기체로 증류되어 나오는 물질을 냉각시켜서 다시 액체로 수집하는 장치이다. 초중등학교에서도 쉽게 만들 수 있는 은거울은 유리용기 안에서 은 이온(Ag+)을 펠링 용액(Fehling solution)과 같은 환원당(還元糖, reducing sugar) 용액을 사용하여 금속 은으로 환원시켜서 얻는다.

또 요산에 관한 연구로 산의 다염기성이란 가설을 세웠다. 또 1838년부터 응용 화학을 연구하여, 칼리·인산·암모니아의 화합물로 이루어지는 인공 비료를 만들어 냄으로써 농예 화학의 기초를 이룩하였다.

리비히의 제자 중에는 펠링(Fehling), 케쿨레(Kekule), 호프만(Hofmann), 에를렌마이어(Erlenmeyer) 등 유명한 유기화학자들이 있다.[1]

참조[편집]

  1. http://vod.snu.ac.kr/wbi/wbi_total/2009_1/chemistry_2009/text/text_03_07.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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