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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견
정보 번역을 게시할 당시부터 바로 어제(4월 27일)까지 영어판에서 알찬 글이었던 문서입니다. 번역을 오늘(4월 28일) 끝마치고 일단 입후보하긴 했는데, 어제 공교롭게도 알찬 글에서 해제되었습니다. 해당 토론 내용을 보면 출처 자체가 부족한 것과 인용 일관성 부족이 문제인 것 같은데, 제가 번역할 당시에는 출처 부족에는 별다른 문제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이에 대한 의견 부탁드립니다. Heiliges (토론) 2024년 4월 28일 (일) 16:43 (KST)[답변]
의견 읽으면서 사소한 것들, 예를 들어 오타가 난 것으로 보이거나 조사가 빠진 것으로 보이는 것에 대해서는 제가 직접 수정을 했습니다. 적절한 편집이 맞는지 한 번 확인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그 이외에도 피드백이 있습니다.
#프랑크푸르트 국민의회에서 "찰흙"으로 만든 왕관이라는 표현이 있는데, 찰흙이 여기서 어떠한 비유인지 내용주 등으로 설명을 좀 더 넣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모래성 같은 비유일까요...
#프라하 평화 조약과 북독일 연방에서 "이전에 독일을 이끌었던 오스트리아 제국은 대부분의 동맹국과 함께 하노버, 헤센카셀, 나사우, 프랑크푸르트 전체와 헤센다름슈타트의 일부를 프로이센이 합병하는 북독일 연방 조약에서 제외되었다."라는 문장이 있는데, '일부를'이라는 조사를 써서 읽기에 어색합니다.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 감정을 잘 보여준다."라는 문장 이후의 출처가 하나도 없습니다.
#'통일 과정의 최종 결과물'로서의 전쟁에서 "슐레스비히-홀슈타인 문제에서 서로의 성실함도 입증했다."라는 문장이 있는데, 여기서 '성실함'이 어떤 의미인지 바로 와닿지 않습니다.
@Nt: 직접 수정해주신 부분들은 모두 확인했습니다. '1848-1849년 독일 혁명과 폴란드 봉기'와 '프랑스와의 전쟁' 문단 같은 경우에는 하위 문단이 있어 그곳의 출처로 갈음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마치 문서 가장 위의 개요에 출처가 달려있지 않듯이요. 그리고 '찰흙' 표현의 보충 설명으로 프랑크푸르트 국민의회#국가원수와 황제대표단에서 '혁명의 썩은내'라는 표현을 가지고 왔습니다. 보수적인 편인 프로이센 국왕이 비교적으로 혁명적인 국민의회의 (왕이 생각하기에) "더러운" 왕관을 거부한다는 의미입니다. 저는 '성실함'이라는 표현이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가 가진 독일의 문제를 해결하고 이익을 보호할 의지를 뜻하는 것으로 이해해서, 내용주로 이와 같이 보충 설명을 넣었습니다.
프라하 평화 조약 문단의 문장은 오스트리아가 그 동맹국들과 함께 북독일 연방 조약에서 제외되었다는 의미이고, 나머지 문장은 모두 북독일 연방 조약을 설명하는 부분입니다. 그러니까 해당 문장은 '오스트리아와 동맹국은 / 조약에서 제외되었다. / 이 조약은 프로이센이 하노버 - 프랑크푸르트의 전체와, 헤센다름슈타트의 일부를 합병하는 조약"을 의미합니다. 다르게 해석될 수 있어서 문장을 "이전에 독일을 이끌었던 오스트리아 제국은 대부분의 남독일 동맹국과 함께, 프로이센이 북독일의 하노버, 헤센카셀, 나사우, 프랑크푸르트 전체와 헤센다름슈타트의 일부를 합병하는 북독일 연방 조약에서 제외되었다."로 수정했습니다. Heiliges (토론) 2024년 4월 30일 (화) 18:10 (KST)[답변]
@Heiliges 피드백 반영 감사합니다. 출처가 없어 보이는 문단에 대해서도 왜 그런지 이해했습니다. 추가적으로 피드백을 드리자면,
#초기 역사에서도 "... 색슨족과 프리슬란트족을 정복했다."는 문장 이후로 출처가 없는데 확인 부탁드립니다.
멀티미디어: 저작권에 대한 설명이 충족하는 미디어 사용 정책에 일치하는 멀티미디어 자료가 있는가?
길이: 불필요한 세부사항 없이 주요 주제에 중점을 두고 있는가?
의견
의견 드립니다.
도입부 부분을 최소 2~3 단락 이상으로 보충했으면 좋겠습니다. twotwo2019님이 만드신 다른 지진 문서도 최소한 단락이 2개 이상은 됩니다.
아래는 제가 확인했을 때 출처가 없다고 보이는 문장만 따로 떼온 것입니다.
탕산 지진#지진에서: "여진으로 무너진 건물에 갇힌 사람들과 건물에서 옷가지 등을 찾으러 돌아다닌 사람들이 사망했다."
탕산 지진#지진에서: "이 지진은 탕산 단층의 북쪽 끝을 가로지르는 북북서를 주향으로 하는 사교단층 지역에서 발생했다. 이곳에서의 좌수향 움직임과 탕산 단층에서의 우수향 움직임은 서쪽과 동쪽의 지각괴가 함께 압축되면서 두 지진 사이의 지각괴가 남쪽으로 눌러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탕산 지진#철도망 피해에서: "1975년 하이청 지진 이후가 되어서야 일부 대형, 중형 교량에 대한 일부 내진조치가 취해졌다."
탕산 지진#사망자수에서: "지진으로 탕산시 당위원회 제1서기였던 리웨눙과 시당위원회 제1서기 대행 뉴융 등 지방 및 지자체 당지도자 10명도 사망했다."
기념과 추모 문단과 영화 문단의 경우 서술할 내용이 많지 않을 경우 한 문단으로 합치는 건 어떨까 싶습니다.
같이 보기 문단에 있는 1976년 지진의 경우 문서를 만들어 주시던지, 아니면 지워주시던지 해야겠네요.
도입부를 보충했고, 출처 없는 문장은 출처 찾아서 추가했습니다. 문화대혁명과 본 지진이 깊은 관련이 있어서(#정치적 측면 참조) 틀을 넣었는데 중국어 쪽 참고해서 틀 내용을 보강하겠습니다. 같이 보기의 문서는 곧바로 생성하겠습니다. 파일의 경우에는 제가 그림 편집 프로그램이 없어 svg라면 편집하겠는데 png라 당장 바로 한글화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Vela* (토론 / 기여) 2024년 5월 21일 (화) 11:58 (KST)[답변]
이 경우는 2020년에 일어난 다른 지진에 비해 중요성이 엄청나긴 합니다만, 다른 위키백과의 표제어도 '1976년 탕산 지진'혹은 '탕산 대지진'인데다가 탕산 대지진으로 통용되고 있습니다. 표제어를 탕산 지진으로 하는게 좋은지 의문스럽습니다. 표제어를 탕산 대지진으로 옮기고 '1976년 탕산 지진'을 병기하되, 탕산 지진은 넘겨주기 처리하는것이 더 나을 것 같습니다. 2001:2D8:215:7199:0:0:1067:40B0 (토론) 2024년 5월 21일 (화) 09:49 (KST)[답변]
해당 글에서 탕산 지진은 단독 1회, 제목에 연도가 붙은채 1회, 탕산 대지진 단독 1회, 대지진은 탕산대지진에 포함된걸 빼고도 단독 2회 사용되어, 이미 문서 제목에서 서술 대상을 한정한 뒤에 쓰인것이라 단순 탕산지진이 중국(정부)에서 주로 쓰는 표기라는 근거로 보기 어렵습니다. 중국어 위키백과 표기등을 봐도 탕산대지진이 중국어권에서 많이 쓰이는 표기로 추측되고요. 2001:2D8:21F:1F1:0:0:C9D:50A4 (토론) 2024년 5월 21일 (화) 12:25 (KST)[답변]
지진 규모가 크고 피해가 크면 얼추 '대지진'이라고 붙이는 것 같습니다. 중국공산당이랑 정부 쪽 홈페이지를 보니 대지진과 그냥 7.28 탕산지진, 탕산지진을 혼용해서 사용하네요. 그렇다면 "탕산대지진" 표기로 이동하겠습니다. Vela* (토론 / 기여) 2024년 5월 21일 (화) 19:36 (KST)[답변]
의견탕산대지진#지진 예측 문제에서 "... 두루뭉실해 대규모 사회적, 경제적 혼란을 가져올 수 있었다. 이러한 혼란은 심각한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런 혼란은 탕산 지진 이후에 심해졌다."라는 문장이 있는데 혼란이라는 단어를 가지고 문장이 세 번 반복되어 부자연스러운 느낌이 듭니다. 간결하게 수정했으면 좋겠습니다. — Nt2024년 5월 22일 (수) 00:03 (KST)[답변]
오래된 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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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견위키백과:편집 지침#첫 문단에 따르면 표제어를 굵은 표시로 하고 보충 설명을 하는 경우 표제어 뒤에 괄호를 넣는다고 되어 있고 이러한 편집 방식이 한국어 위키백과에서 일반적인데, 해당 문서는 독일연방공화국과 독일의 보충 설명을 하는 괄호를 굳이 내용주로 넣을 필요가 있었는지 이유가 궁금합니다. — Nt2024년 1월 26일 (금) 22:13 (KST)[답변]
의견 방대한 자료들을 기반으로 문서를 보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문서를 보니 경제, 사회, 문화, 정치 분야들의 경우 2024년 1월 기준으로 최신의 자료들이 아닌 2018년을 기준으로 되어 있는 등 업데이트가 조금 느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혹시 이러한 자료들을 최신 자료들로 보강해주실 것을 부탁드려도 괜찮으실까요?? --YellowTurtle9 (토론) 2024년 1월 30일 (화) 01:02 (KST)[답변]
의견 정보 업데이트가 빠르지 않아도 큰 문제 없을 것 같습니다. 2007년부터 2024년까지는 독일의 다양한 분야들에서 많은 일들이 있었다보니 저도 장기간 동안 있었던 일들을 모두 요약해서 문서에 정리하기에는 긴 시간이 걸릴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문서의 기본 토대는 공동체 구성원들의 인정을 받은 알찬 글에 근거하고 있어 해당 내용만으로도 독일 문서가 알찬 글이 되는데 있어 전혀 문제 없다고 생각하지만 첼시 FC처럼 2024년 2월 기준으로 최신 업데이트가 많이 진행되지 않은 부분들이 있다보니 알찬 글로 선정된 이후 혹시나 정보 업데이트의 미비를 언급하며 알찬 글 재검토 논의가 나올까 살짝 걱정이 들긴 합니다. Heiliges님께서 많이 아시는 분야 순서대로 정보를 차근차근 업데이트하면 해당 문제는 쉽게 해결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YellowTurtle9 (토론) 2024년 2월 15일 (목) 22:27 (KST)[답변]
의견 전체적으로 훑어보았는데 전반적으로 독일에 대해서 매끄럽게 설명하고 있는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의견이 있다면 사도바울님의 의견처럼 {{본문}}을 통해 안내되는 글이 빼곡히 있으면 좋겠는데 독일의 철학이 아직 생성되지 않았고, 영어 위키백과에서 가져오신 과학과 기술 문단의 경우 {{본문}}을 사용하여 독일의 과학과 기술을 생성할 의향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 Nt2024년 4월 15일 (월) 22:58 (KST)[답변]
@Nt: 마지막 331번 각주는 바로 앞의 330번 각주의 자료와 같은 것으로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이게 데스크톱 화면에서는 연결된 것처럼 잘 안보이는데 모바일 화면에서는 확실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독일의 과학과 기술은 추후 번역해올 생각인데, 철학의 경우에는 제가 잘 아는 분야가 아니고 영어판이나 독일어판 모두 '시작 단계'의 문서여서 번역으로 제대로 된 문서를 만들 수 있는지 확신이 들지 않네요. Heiliges (토론) 2024년 4월 16일 (화) 23:49 (KST)[답변]
@Heiliges 그렇군요. 그런 식으로 각주가 연결되는 형태는 처음 봤네요. 사실 저는 {{본문}}에 연결된 대부분의 문서가 생성되어 있다고 한다면 두 문서 정도 만들어지지 않는 것은 알찬 글을 선정하는데 큰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찬성하겠습니다. — Nt2024년 4월 16일 (화) 23:53 (KST)[답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