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샤 조약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이동: 둘러보기, 검색
조약이 서명된 마카오 관음당 건물

왕샤조약(望廈條約, 1844년 7월 3일) 또는 망하조약아편전쟁의 결과 맺어지게 되는 난징조약의 후속 조약으로 1843년 10월에 영국이 후먼조약을 먼저 마무리 짓자, 차 수입과 아편 밀수를 통해 영국 다음 가는 무역 규모를 자랑하던 미국도 9개월 후인 1844년 7월 3일 마카오 교외의 왕샤촌(望厦村)에서 청(淸)과의 후속 조약을 체결하였다. 이는 청나라와 미국이 맺은 최초의 계약이자 불평등 조약이었다.

개요[편집]

1844년 7월 3일 마카오 북쪽 교외의 왕샤촌(望厦村)에서 영국과 후먼조약을 마무리 지었던, 청나라의 전권대사 치잉(耆英)과 당시 미국의 변호사였던 쿠싱(Caleb Cushing)과 맺은 조약으로, 난징조약을 보충하고, 아편전쟁을 종결하는 조약이다.

당시 조약은 현재 1994년에 세워진 관음당 자리에서 협상을 진행하였으며, 미국은 협상을 통해 영국의 오구통상장정(五口通商章程) 등에 준하는 조약을 체결하였다.

내용[편집]

쿠싱(Caleb Cushing)은 존 타일러 대통령에게 특사자격을 부여받아, 당시 영국의 시장 장악을 우려한 미국의 상인을 대표하여 협상에 임했다. 물리학자이자, 전도사였던 피터 파커(Peter Parker)가 쿠싱의 통역을 담당했으며, 청나라에서는 영국과의 협상을 마무리 지었던 당사자이자, 광둥 성광시 성의 지사였던 지잉(耆英)이 전권대사로 나왔다. 선례가 있었던 지라 미국은 영국 - 청나라 간의 후먼조약을 기준으로 협상에 임했고, 특히 영사재판권에 대한 규정은 훨씬 더 자세하게 명기를 하였다. 또한 12년 뒤에 조약을 재개정할 수 있게 하는 등 훨씬 더 탄력적으로 협상에 임하였다.

  1. 미국 영사에 의해서만, 미국 시민권자를 재판할 수 있는 치외법권을 인정한다.
  2. 다섯 항구에서 무역을 할 때 고정관세를 적용한다.
  3. 다섯 항구에서 땅을 살 수 있는 권리와 그곳에 교회와 병원을 설립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한다.
  4. 지금까지 외국인이 중국어를 배울 수 없도록 한 법률을 폐지하여 중국어를 배울 수 있도록 허용한다.

미국은 청나라에 성의를 보여주기 위해, 아편 무역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범법자들을 청나라 관헌에 양도하는데 동의를 한다.

결과[편집]

이미 후먼조약에 의해 만들어진, 주권 침해 조약의 선례들은 왕샤조약으로 그대로 이어지고, 다시 같은 해 프랑스마저도 황푸조약을 체결하여 중국 내 조계를 마무리 짓는다. 이로써 상하이, 홍콩 등 다섯 개의 항구는 서양 열강에 완전히 개방되어 이후 100년간 조계시대가 이어진다.

같이 보기[편집]

바깥 고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