옌볜 창바이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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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장백산
延边长白山
전체 이름 연변장백산축구구락부
延边长白山足球俱乐部
Yanbian Changbai Mountain Football Club
별칭 백두호랑이
홈 구장 연길인민경기장(연길시 장백산서로)
룡정해란강경기장(룡정시)
수용 인원 35,000 (연길인민경기장)
32,000 (룡정해란강경기장)
구단주 중화인민공화국 박성웅(朴成雄) 주임
감독 대한민국 박태하(Park Tae-ha,朴泰夏)
리그 중국 갑급리그
2014년 16위
홈경기
원정경기

연변장백산(중국어 간체: 延边长白山, 정체: 延邊長白山, 병음: Yánbiān Chángbáishān),연변축구구락부1955년에 창설된 중화인민공화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축구클럽이다. 현재 중국갑급리그에 참가하고 있다. 현존하는 중화인민공화국의 직업과 프로 축구팀 가운데서 유일하게 한족이 아닌 소수민족 출신 선수들로만 구성된 팀이다. 연변조선족자치주를 연고지로 하기 때문에 선수단도 조선족출신 선수들 위주로 구성되여 있다.

구락부팀 발전사[편집]

1955년에 《지린FC(길림FC,吉林FC)》란 이름으로 설립된 옌볜창바이산은 길림성을 대표하는 축구클럽으로 창단이래 중화인민공화국 국가대표팀선수를 40여명이나 배출한 자랑많은 《조선민족축구팀》이다.1965년에 《박만복》감독의 지휘하에서 중국 제2차전국운동대회 4위,갑급련맹전(최고급)에서는 《우승》을 차지한 경력이 있다.조선족을 주축으로한 길림성팀 이였다.1993년리호은감독은 조선족출신위주의 길림성팀을 이끌고 제7차전국운동대회에 참가하여 《전면공격-전면방어(全攻全守)》의 참신한 기전술로 《장백선풍》을 불러 일어켰다.1/4경기에서 북경시대표팀에 2:0로 패하여 결국 전국 5위에 머물렀다.

1957년과 1958년에는 《장춘시팀(长春市队)》으로 팀명이 변경되여 출전하기도 하였다.

1994년에 클럽 이름을 《길림삼성(吉林三星)》으로 하여 중국의 직업구락부 축구리그에 참여하게 된다.한국 대재벌 《삼성그룹(SAMSUNG)》의 팀관명권 경제협찬을 1993년에도 받았다.리호은감독은 당시 전국적으로 드문 《학원파》축구감독으로서 《연변축구팀》(애칭임,당시의 팀명칭은 《길림삼성》,홈장은 《연길인민경기장》)을 위하여 중국축구 직업화구락부제리그에 뛰여들었다.비록 리그전에서 훌륭한 경기성적을 거두진 못하였지만 중국축구협회등 상급부문의 중시와 지지를 받으며 출국연수등 축구리론연구의 많은 기회를 갖는 영광을 지니게 되였다.

1995년에도 한국《현대》재벌의 경제협찬을 받으며 클럽 이름을 《연변현대(延边现代)》로 변경하여 명실상부한 《연변조선족자치주》의 지역축구팀으로 성장하게 되였다.

1997년에 《길림돈화오동제약회사(吉林墩化敖东制药公司)》의 팀관명권 경제협찬을 받아서 구락부 이름을 《연변오동(延边敖东)》 으로 변경 하였다. 대한민국국가대표팀 축구감독을 지냈던 최은택 교수을 영입하여, 그해 클럽 력사상 최고 성적인 甲 A리그 4위를 기록하였다.높은 덕망을 지닌 축구감독으로서 《연변축구애호가》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고 《연변주위》와 《중국축구협회》로 부터도 상당한 중시를 받았다.

1999년에 계속하여 《길림오동제약회사》의 팀관명권 경제협찬을 받으며 구락부명칭을 《길림오동(吉林敖东)》으로 하고 갑A리그에 참가했다.그해 고훈감독이 이끈 길림오동팀축구협회컵에서 4강진입에 성공하였다.준결승전에서 최후관두에 아쉬운 동점꼴을 허용하여 결승진출의 좌절을 당했다.객장 0:0,홈장 1:1의 대 산동로능태산팀 경기였다. 2000년 고훈감독이 건강 악화를 리유로 감독직을 사퇴한후 하부리그로 강등되였고 재정악화로 인해 클럽은 항저우뤼청|절강록성(저쟝뤼청,浙江绿城)에 매각 됐다.

2004년에 구락부는 《연변세기그룹(延边世纪集团)》의 관명권 경제협찬을 받고 팀명을 《연변세기(延边世纪)》라 하였다. 고훈감독이 팀에 복귀하면서 옌볜FC는 3부리그에서 18전17승1무, 북부리그 17련승으로 우승하고 PO전에서 2위에 오르면서 클럽이 《갑급리그(2부리그)》로 승격되였다.2008년에는 《한국붉은악마응원단》의 협찬금 6억원한화(인민페 500만원상당)및 응원장비,그리고 한국제3재벌 《SK그룹》의 한화8억원(인민페 600만원상당)에 달하는 경제후원을 받게 되였다.붉은악마응원단의 협찬금은 2년에 걸쳐 전달하기로 하였다.구락부 리호은주임이 연변팀을 위하여 성공적으로 유치해 들인 해외자금인 것이다.2009년 12월 5일 제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코리안풋볼드림매치2009》에서 《제주 유나이티드》와 경기를 가졌다.경기는 0:2로 제주팀의 승리로 끝났다. 2010년 10월 22일에 《청도시신체육용품유한회사(青岛市新体育用品有限公司)》와 STAR(스타)브랜드의 체육장비를 사용할데 관한 합작협의를 체결,10월 27일에는한국인증농산품생산자협회와 후원의향서를 체결하고 한화10억원(약 560만원인민페)을 협찬받기로 하였다.

2011년에 클럽 이름을 《연변백두산호랑이》라는 뜻의 《연변장백호랑이(延边长白虎)》로 변경하였다. 2012년최은택교수의 제자인 한국인 조긍연감독을 연변직업팀의 감독으로 영입했다.

2014년에는 새로운 축구구락부를 결성하고 《연변장백산축구구락부(延边长白山足球俱乐部)》로 명칭하였다.구단주는 우장룡(于长龙)주임이 맡았다.팀관명권 경제협찬(1000만원/년)은 《길림삼공그룹 천양천샘물회사(吉林森工集团 泉阳泉矿泉水公司)》에서 하여 갑급리그 출전명칭을 《연변장백산천양천》팀으로,팀유니폼은 등면에 《길림삼공》,가슴면에는 《천양천》을 도장하였다. 감독진 또한 구락부사상 최고급 정예멤버로 구성하였는데 《연변직업축구의 어버이》-리호은축구인을 주감독,《연변직업축구의 령혼》-고종훈축구인을 예비팀감독,조리감독에는 김광주(《연변직업축구의 상징》),김청(《연변직업축구의 존엄》),리재호(원연변대학팀 감독),키퍼감독에 유림,인솔자에 리광호(《연변직업축구의 경제사》)이 맡았다.슈퍼리그 프로팀의 강대한 서양인감독진을 답습하여 연변직업팀감독진을 묶어세운것 이였다.제한된 경제력등 문제로 말미암아 리그초반부터 경기성적부진을 면치못하고 리호은축구감독은 사퇴하게 되였다.사퇴전의 경기소식공개회에서 리감독은 《모든 책임은 자신이 지겠다》고 하였다.김광주등도 함께 사퇴하였다.2013년에 《대리》감독직을 수행했던 리광호인솔자가 연변팀감독의 《계주봉》을 쥐게 되였다.광호감독 역시 고전을 면치못하고 사퇴되고 말았다.전년의 《도문체육장신화》를 《연길인민경기장》에서는 빛을 발하지 못하였다.예비팀감독인 《고종훈축구인》이 연변직업팀감독을 《대리》수행 하였다.《예비팀리그》에서는 량호한 감독능력을 보였지만 1선팀에서는 무능력을 드러내고 리그성적 말등인 16위로 《을급》에 강등 하였다.리그전의 마지막 홈장경기는 《룡정해란강경기장》에서 마가을의 처량한 《축구기분》속에서 치렀다.2015년 리그시즌은 연변팀에게 《복이 하늘에서 넝쿨채로 떨어지는 해》가 되였다.마치도 올해는 《연변조선민족축구팀》이 《전국우승》을 취득한지 꼭 50년이 됨으로 하여 《50돐》생일을 쇠는,그리고 《지린FC》가 창단된지 60년이 되는 참으로 뜻깊고도 의미있는 경사스러운 《연변축구의 해》인듯 하다.강등한 전년말부터 일찌감치 실력감독을 물색한 구락부측은 마침내 한국적 박태하축구인을 영입하게 되였다.조리감독도 한명 추가하여 오명관한국인으로 하였다.《을급련맹전》에 대비하여 중국남방지역에서 동계훈련을 열심히 한 끝에 《희소식》을 받게되여 《갑급련맹전》에 재부활 하였다.중국축구협회의 《정풍운동》관리행동에 부실한 구락부팀들은 로임체불문제등으로 리그참가권을 강제제명받거나 구락부팀 자체 해산하고 말았다.《강호》급 직업팀이였던 《광동일지천(广东日之泉)》,《심양중택(沈阳中泽)》,《성도천성(成都天诚)》이 《중국축구무대》에서 소실되고 말았다.2015년 갑급련맹전 제4륜차부터는 정식으로 경제협찬을 받게되여 팀유니폼에 ‘’‘《부덕보험》’‘’을 실었다.심천부덕보험회사(深圳富德保险公司)가 거액 협찬금 8000만원인민페를 3년에 걸쳐 《연변장백산직업축구팀》에 투자하게 되였다.2000만원을 직업팀에,6000만원은 청소년축구에 투자하는 형식이였다.《연길인민경기장신체육장》의 활기찬 《축구분위기》를 인지한것 이다.금년도의 첫 홈장경기는 싸늘한 봄비날씨속에서 진행되였다.상대팀은 2004년 《중국슈퍼련맹전(초급련맹전)》에서 우승한 수준프로급의 《심천우항(深圳宇恒)》직업팀이였다.관람객수도 비오거나 흐린날의 저온봄철임에도 불구하고 연길신체육장의 관람객수는 최고치를 경신하여 근1.5만명에 달하였다.경기는 긴장히 진행되여 상반전에 연변팀의 임대용병 한국인 하태균이 헤딩으로 체면꼴을 세우고 몇분후에 인츰 대방팀의 외적서양인에게 동점꼴을 허락하며 1:1로 빅고 말았다.중국 북방지역 《송화강》류역인의 특유한 사유축구와 분발박투하여 뽈을 찻다면 홈장에서 크게 이겨서 객장에서의 자신심을 구축할수도 있는 경기였다.

구락부(클럽)명칭 력사[편집]

  • 1955-1956/1959-1993: 길림FC(지린FC,吉林队)
  • 1957-1958:장춘시팀(창춘쓰뚜이,长春队)
  • 1993-1994: 길림삼성(지린싼싱,吉林三星)
  • 1995-1996: 연변현대(옌볜쏀따이,延边现代)
  • 1997-1998: 연변오동(옌볜오우뚱,延边敖东)
  • 1999-2000: 길림오동(지린오우뚱,吉林敖东)
  • 2001-2010: 연변FC(옌볜FC,延边队)
  • 2004: 연변세기(옌볜쓰찌,延边世纪)
  • 2011-2013: 연변장백호랑이(옌볜창바이후,延边长白虎)
  • 2014-현재: 연변장백산(옌볜창바이산,延边长白山)

응원단[편집]

2008년에 붉은폭풍응원대(레드 싸이클론 서포터스)라는 서포터즈가 결성되여 응원하였다.

  • 《추구자》축구팬협회(“追球者球迷协会”)-김파회장
  • 《연변축구팬협회》(“延边球迷协会”)-책임자는 리씨형제(组织责任人 李氏兄弟)
  • 《불사조》사단(“不死鸟”社团)-연변대학생,20여명
  • 《룡정축구팬협회》(“龙井球迷协会”)

력대 축구인 명단[편집]

운동원(1선팀,2015년)[편집]

  • 1호-윤광
  • 2호-리호걸
  • 3호-한광화
  • 4호-조명(쪼밍,赵铭,흑룡강성 대경시)
  • 5호-진효(천쇼,陈晓,산동성 덕주시)
  • 6호-리훈
  • 7호-고만국
  • 8호-리호
  • 9호-스테브(STEVE,浙江绿城,감비아적)
  • 10호-야일톤(JAILTON,브롸질적)
  • 11호-리성림
  • 12호-강홍권
  • 13호-김파
  • 14호-왕지붕(왕쯔펑,王志鹏,강소성)
  • 15호-김홍우
  • 16호-오영춘
  • 17호-박세호
  • 18호-하태균(수원삼성(K리그),한국적)
  • 20호-최민
  • 21호-김현
  • 22호-지문일
  • 23호-배육문
  • 25호-(Exmetjan Ekber,艾合买江 艾克拜尔,신강위글족)
  • 26호-문학
  • 29호-고츰(꼬촹,高闯,길림성 연변주)
  • 30호-왕맹(왕멍,王猛,강소성)
  • 32호-심봉(선훵,沈烽,광동성 매현)
  • 33호-손군
  • 42호-윤창길

감독진(2015년)[편집]

  • 박태하-주감독,한국인,전임 포항제철 예비팀 감독_한국국가대표팀 코치_FC서울 코치,전직 포항제철 공격수(K리그)_한국국가대표팀 공격수
  • 오명관-조리감독,한국인
  • 김청-조리감독,중국조선족,전임 연변장백산천양천팀 조리감독,전직 연변직업팀 중앙수
  • 유림-키퍼감독,중국조선족,전임 연변장백산천양천팀 키퍼감독
  • 문호일-예비팀 감독겸 운동원,중국조선족,전직 연변직업팀 공격수_심양팀 대원_장사금덕팀 대원_상해신화팀 변선수비수_심양심북팀 대원_심양중택팀 대원
  • 김혁종-경기동영상 분석사,중국조선족
  • 서빈(쉬삔,徐斌)-수석팀의사,중국한족(강소성 상주시),전직 연변직업팀 대원,영국류학 석사학위
  • 리영학-팀의사,중국조선족
  • 김현-팀의사,중국조선족
  • 왕건(왕쳰,王騫)-인솔자,중국한족,전임 연변장백산천양천팀 대변인,연변대학 체육학원필업

국가대표급 운동원[편집]

인기 스타[편집]

리시봉,박문호,김정근,황동춘,졸라,왕광위,왕해파,문호일,정림국,지충국,윤광,최민,루둘라,이봔 보짓,라피치,로란 고쎄

주석[편집]


바깥 고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