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운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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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운계
출생 1940년 2월 25일(1940-02-25)
대한민국 대한민국 경기도 화성시
사망 2009년 5월 22일 (69세)
대한민국 대한민국 인천광역시 부평구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직업 배우
활동 기간 1963년 ~ 2009년
종교 불교

여운계(呂運計, 1940년 2월 25일 ~ 2009년 5월 22일)는 대한민국배우이자 탤런트이다. 1962년KBS의 공채 탤런트로 데뷔하였다. 신장암의 폐 전이로 향년 69세(대한민국식 나이 향년 70세)를 일기로 사망했다.[1]

생애[편집]

초기[편집]

1940년 경기도 화성에서 태어나 무학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인문과학대학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하였다. 무학여자고등학교 재학시절 방송반 및 합창반에서 활동하였으며, 대학시절에는 대학극회 단원으로 연기 활동을 시작하여 박근형과 함께 대학 연극 무대에서 활동했다. 친한 연예인으로는 전원주, 나문희 등이 있다.[2]

작품 활동[편집]

대학교 졸업 후 1962년에 실험극단 단원으로 지내다가 같은해에 KBS 공채 탤런트에 합격하였다. 이후 1964년에는 TBC 공채 탤런트에 다시 합격하여 대한민국 최초의 일일 연속극 《눈이 나리는데》(극본 한운사, 연출 황운진)의 시골 다방 마담 역으로 안방극장에 데뷔하였다.[3]

1968년에는 최무룡이 감독하고 주연을 맡은 영화인 《정 두고 가지마》로 영화에 첫 출연을 하였으며, 그밖에 《엄마의 일기》(1968년), 《별난 여자》(1970년), 《팔 며느리》(1970년), 《목소리》(1972년), 《땅콩 껍질 속의 연가》(1979년), 《순악질 여사》(1980년), 《만추》(1982년), 《산딸기2》(1985년), 《그녀와의 마지막 춤을》(1988년), 《마파도》(2005년), 《마파도2》(2007년) 많은 영화에 출연하였으며, 한국방송공사의 《오! 필승 봉순영》, 《며느리 전성시대》, 문화방송의 《대장금》, 《내 이름은 김삼순》, SBS의 《쩐의 전쟁》등 텔레비전 드라마에도 많이 출연하였다.[2] [3]

연극은 대학극 《성화(聖火)》로 데뷔하였다. 그 외에 주연한 주요 작품으로 《다리에서의 조망》·《안티고네》·《맥베스》·《우리읍내》·《무익조(無翼鳥)》·《맹진사댁 경사》·《세일즈맨의 죽음》·《밤으로의 긴 여로》·《포기와 베스》·《여름과 연기, 그리고 바람》 등이 있다.[4]

투병 생활[편집]

2007년 9월에 신장암으로 SBS《왕과 나》에서 하차, KBS 2TV《며느리 전성시대》의 촬영 활동을 중단하고 치료를 받아 석 달 후 재기에 성공했다. 2009년에는 KBS 2TV《장화, 홍련》에 출연 중에 폐렴을 이유로 4월 23일에 중도 하차하였고, 뒤늦게 신장암의 폐전이라는 사실이 알려졌다. 같은 해 5월 22일 향년 (만 69세)로 별세했다.[5]

약력[편집]

수상 경력[편집]

출연 작품[편집]

드라마[편집]

KBS
SBS
MBC

영화[편집]

예능[편집]

광고[편집]

주석[편집]

  1. "[연예수첩] 탤런트 여운계, 중환자실서 폐암 투병 중", 《KBS》, 2009년 5월 19일 작성.
  2. 임혜선 기자. "여운계, 연기 인생 48년 그가 걸어온 길", 《아시아경제》, 2009년 5월 22일 작성.
  3. 김재윤 기자. "고(故) 여운계, 그녀는 누구인가", 《노컷뉴스》, 2009년 5월 22일 작성.
  4. 문화·민속/한국의 연극/한국의 신극/신극의 배우/여운계, 《글로벌 세계 대백과》
  5. 문주영 기자. "‘대장금 큰상궁’탤런트 여운계씨 별세…폐암 투병끝 69세로", 《경향신문》, 2009년 5월 23일 작성.

바깥 고리[편집]

참고 자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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