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 포이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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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 포이티어
Sidney Poitier

시드니 포이티어(1963년)
출생 1927년 2월 20일(1927-02-20) (87세)
미국 미국 플로리다 주 마이애미
국적 미국 미국 · 바하마 바하마 (이중국적)
다른 이름 시드니 포이티에
시드니 푸아티에
직업 영화배우, 영화감독
활동 기간 1943년~2001년
수상 1964년 아카데미상 남우주연상
1974년 대영 제국 훈장 2등급

시드니 포이티어 경(Sir Sidney Poitier, KBE, 1927년 2월 20일~)은 미국배우, 영화감독이며 1963년 《릴리 꽃의 밭》과 함께 아프리카계 미국인 최초로 아카데미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하였다.

플로리다 주 마이애미에서 태어나, 그의 부모의 모국 바하마에서 자라왔다. 1945년뉴욕에 가서 아메리칸 니그로 시어터(American Negro Theatre)에서 연기 수업을 시작하였다.

1947년 《애나 루카스타》(1944년)의 브로드웨이 출연자로 가입하였고, 그 후에 《태양의 건포도》(1959년)에서 활약하였다. 그는 주로 미국의 인종 갈등을 그린 영화에 많이 출연하였는 데, 《노웨이 아웃》 (1950년), 《칠판 정글》(1955년), 《도시의 끝》(1957년), 《도전자》(1958년), 《패치 어브 블루》(1965년), 《저녁 초대》와 《밤의 열기 속으로》(1967년) 등이 있다.

그의 다른 출연 작품들로는 《사랑하는 조국이여, 울어라》(1952년), 《포기와 베스》(1959년), 《언제나 마음은 태양(To Sir, with Love)》(1967년), 《아이비의 사랑을 위하여》(1971년) 등을 포함한다.

그의 감독 작품으로는 《버크와 설교자》(1971년)과 코미디 영화 《스터크레이지》(1980년) 등이다.

2009년 8월 12일 대통령 자유 훈장을 받는 시드니 포이티어

서훈[편집]

시드니 포이티어는 1974년 대영 제국 훈장 2등급(KBE, 작위급 훈장)을 받았는데, 서훈 당시 그는 영국 연방에 속하는 바하마의 국적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명예 훈장이 아닌 정식 훈장으로 문제 없이 인정되는 경우이다. 따라서 2등급 이상의 정식 대영 제국 훈장은 기사작위로 취급하는 규정에 따라 시드니 포이티어의 이름 앞에는 'Sir(경)'이 붙는다.

2009년에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대통령 자유 훈장을 받았다.

출연 작품[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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