셜리 템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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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리 템플, 1944년

셜리 제인 템플(영어: Shirley Jane Temple, 1928년 4월 23일 ~ 2014년 2월 10일)은 미국의 배우이다. 1934년 4월 19일 《Stand Up and Cheer!》로 영화계에 데뷔했으며 1930년대를 통틀어 가장 유명한 아역 배우였다.

생애[편집]

셜리 템플은 1928년 캘리포니아 주 산타모니카의 유복하고 원만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음악과 춤을 좋아하는 딸을 눈여겨본 모친은 딸이 세 살 되던 해에 무용학교(Meglin's Dance School)에 입학시켰다. 1933년 20세기 폭스의 전신인 폭스 필름의 관계자에게 발탁되어 7년 계약을 맺고 영화 《Stand Up and Cheer!》로 데뷔했다. 템플의 두 번째 영화 파라마운트 픽처스의 《Little Miss Marker》는 그녀를 일약 스타로 만들었고 여덟 살이 될 무렵에는 1년에 50만 달러를 벌어들이게 되었다.[1] 당시 미국은 대공황을 맞아 경제가 침체되어 있었지만 셜리 템플을 모델로 한 인형과 각종 관련 상품이 불티나게 팔리는 등 그녀의 브랜드 가치는 어마어마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라디오 연설에서 "미국에 셜리 템플이 있는 한 우리는 괜찮을 거다" 라는 이야기를 할 만큼[2] 셜리 템플은 당시 미국의 상징이자 희망이었다. 템플은 일곱 살 때 아카데미상 아역상을 수상했으며 클라크 게이블, 로버트 테일러, 게리 쿠퍼 등 유명 배우들을 누르고 3년 연속 박스 오피스 챔피언에 오르기도 했다.[1] 나이가 들면서 아역 배우의 대명사였던 템플의 인기는 시들해졌고 그녀는 17세에 잭 애거(Jack Agar)와 결혼, 21세에 은퇴를 선언했다. 남편과의 사이에 딸 린다 수잔(Linda Susan)을 두었지만 4년 후 이혼했다. 이후 정계에 입문해 가나체코슬로바키아의 대사를 지내는 등 외교관으로 활약했으며[2] 1972년에는 공개석상에서 다른 환자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자신이 유방암에 걸렸음을 밝히기도 했다.[2] 2006년 미국배우협회 시상식에서 평생공로상을 수상했다.[1]

일화[편집]

  • 셜리 템플은 1930년대 하와이 와이키키의 로열 하와이안 호텔을 자주 방문했는데 나이가 어려 술을 마실 수 없는 그녀를 위해 석류 시럽과 탄산음료를 넣은 칵테일을 만들어주었고 이 칵테일에는 그녀의 이름이 붙여졌다.[3]

주석[편집]

  1. "책갈피 속의 오늘 1934년 美신동 배우 셜리 템플 데뷔", 《동아일보》, 2007년 4월 19일 작성.
  2. "1934년 셜리 템플 첫 장편 영화 개봉", 《동아일보》, 2008년 4월 19일 작성.
  3. 염선영, 《칵테일 수업》, 우듬지, 2010, p.167, ISBN 978-89-91292-68-0

바깥고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