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송 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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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 인종(宋仁宗, 1010년 ~ 1063년)은 북송의 제4대 황제(재위:1022년 ~ 1063년)였다. 휘는 조정(趙禎), 원명은 수익(受益)이며,[1] 시호는 체천법도극공전덕신문성무예철명효황제(體天法道極功全德神文聖武睿哲明孝皇帝)이다. 제3대 황제 진종의 여섯번째 아들이다.

생애[편집]

1010년 4월 14일 진종과 후궁 이씨 사이에서 태어났으나 황후 유씨를 생모로 알고 자랐다. 위로 다섯 형이 있었으나 모두 요절했고, 다섯 살에 경국공, 아홉 살의 나이에 태자로 책봉되었다.[1] 1022년 13세의 나이에 황제로 즉위하였으나 나이가 어려 황태후 유씨가 섭정이 되어 실권을 쥐었다.[1]

1041년 서하군이 송나라 영토 근처에 집결해 호수천에서 양국 간 전투가 벌어졌는데, 송군이 패배해 전사자가 1만 3천 명에 달했다. 그 후 2년 여간 전쟁이 계속 되었는데, 송나라와 요나라가 강화를 맺고 서하의 병사와 백성들이 느끼는 전쟁의 피로가 커지는 등 전황이 서하군에 유리하지 않게 되자 서하에서는 송나라에 강화를 요청했다.

송나라서하요나라와의 동맹을 우려하여 서하의 강화 교섭을 받아들였다. 1044년 송이 서하에게 매년 조공을 바치는 대신 서하에서는 송나라의 황제를 인정하고 신하의 나라가 되는 조건의 강화를 맺었다. 그래서 서하의 황제는 하국왕(夏國王)에 봉해졌고, 송나라는 평화유지를 위해, 사실상 공물에 해당하는 비단 13만 필, 은 5만 냥, 차 2만근을 매년 서하국에 보내기로 하였다.

1063년, 인종이 대를 이을 아들을 두지 못하고 병사하자 영종이 즉위하였다.

인물[편집]

인종은 천성이 너그럽고 무던하였으며, 늘 낡은 옷을 입고 지낼 만큼 검소하였다.[1] 하루는 인종이 잠자리에서 일어나 내관에게 어젯밤 양고기가 먹고 싶었다고 말하자 내관이 왜 준비해 오도록 시키지 않았냐고 물었다.[2] 인종이 답하기를 "황제가 한번 요구를 하면 다음부터는 그것을 선례로 삼는다고 들었다. 그렇다면 늘 미리 양을 죽여 준비해 두어야 할 텐데 하루 저녁의 배고픔을 참지 못해 쓸데없는 살생을 일으키겠느냐."고 하였다.[2] 인종은 각지에서 진상하는 산해진미도 먹지 않았으며, 신하들과 함께하는 연회상에 오른 동죽조개 100개의 가격이 2천 8백냥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몹시 불쾌해하며 먹지 않았다.[2] 또한 인종은 저렴하고 소박한 물건들을 사용했는데 신하들은 인종의 그런 모습을 알지 못했고 우연히 인종의 문병을 온 양부대신만이 보고 놀랐다고 구양수의 《귄전록》에 기록되어 있다.[2] 인종은 자신뿐 아니라 황후와 비빈이 사치를 하는 것 또한 용납하지 않았는데, 총애하던 장귀비의 처소에 귀한 도자기가 있는 것을 보고 그 출처를 물었다.[2] 장귀비가 관리에게서 선물받은 것이라고 하자 인종은 크게 화를 내며 도끼로 도자기를 깨 버렸고 장귀비는 그 이후 다시는 선물을 받지 않았다.[2]

가족관계[편집]

주석[편집]

  1. 청휘, 장허성, 《중국을 말한다 11》, 이원길 역, 신원문화사, 2008, p.123, ISBN 9788935914500
  2. 샹관핑, 《중국사 열전 황제》, 차효진 역, 달과소, 2008, p.65~p.66, ISBN 9788991223219

참조 항목[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