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송 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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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 인종(宋仁宗, 1010년 ~ 1063년)은 북송의 제4대 황제(재위:1022년 ~ 1063년)였다. 휘는 조정(趙禎), 시호는 체천법도극공전덕신문성무예철명효황제(體天法道極功全德神文聖武睿哲明孝皇帝)이다. 제3대 황제 진종의 여섯 번째 아들이다.
생애 [편집]
범중엄(范仲淹)은 인종이 친정을 하면서 중앙 관리가 되었다. 곽황후(郭皇后)의 폐립문제를 놓고 찬성파인 재상 여이간(呂夷簡)과 대립했기 때문에 재상에 항론을 하여 요주로 좌천되게 된다. 이후 여정, 윤수, 구양수 등이 그를 지지하여 차례로 조정에서 물러나면서 그들 스스로를 군자의 붕당이라고 칭한다.
1038년 서하(西夏)의 이원호(李元昊)가 섬서 지방을 침공을 하자 범중엄은 전운사로서 섬서를 그 침공으로부터 방어를 하고 국경을 지키는 역할을 몇 해 동안 담당하였다. 그는 군사제도를 개혁하여, 장병들을 엄하게 훈련시키고 인자하게 대했으며, 허약한 송군을 정예부대로 편성하여 서하를 퇴치하는 데 큰 공을 세우게 된다.
이러한 공으로 인종은 범중엄을 부재상에 임명했으며, 1043년 관리제도를 정비하여 인재를 양성하며, 무력을 강화하는 개혁조치를 제안했다. 인종은 그의 개혁안을 받아들여 개혁안이 전국적으로 실시되게 된다. 이 정치개혁은 기원 1041-1048년까지에 7년간 실시되어, 이 개혁을 경력신정(慶曆新政)이라고 불렀다.
1041년 서하군이 송나라 영토 근처에 집결해 호수천에서 양국 간 전투가 벌어졌는데, 송군이 패배해 전사자가 1만 3천 명에 달했다. 그 후 2년 여간 전쟁이 계속 되었는데, 송나라와 요나라가 강화를 맺고 서하의 병사와 백성들이 느끼는 전쟁의 피로가 커지는 등 전황이 서하군에 유리하지 않게 되자 서하에서는 송나라에 강화를 요청했다.
송나라는 서하와 요나라와의 동맹을 우려하여 서하의 강화 교섭을 받아들였다. 1044년 송이 서하에게 매년 조공을 바치는 대신 서하에서는 송나라의 황제를 인정하고 신하의 나라가 되는 조건의 강화를 맺었다. 그래서 서하의 황제는 하국왕(夏國王)에 봉해졌고, 송나라는 평화유지를 위해, 사실상 공물에 해당하는 비단 13만 필, 은 5만 냥, 차 2만근을 매년 서하국에 보내기로 하였다.
1063년, 인종은 대를 이을 아들이 없이 병사하고 영종이 즉위하였다.
가족관계 [편집]
참조 항목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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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나라의 황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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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송 | |
| 남송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