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송 소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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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 소제(宋 少皇帝, 1272년 ~ 1279년)는 남송의 마지막 제9대 황제(재위 : 1278년 ~ 1279년). 휘는 조병(趙昺)이다.
시대 배경 [편집]
당시 원나라군은 포수경으로부터 선박 및 숙련된 수부(水夫)를 제공받게 되어, 약했던 해상에서도 옛 남송 함대를 추적해 전투를 유리하게 진행시킬 수 있었다.
원나라측의 기록에 의하면 옛 남송함대는 1,000척의 대형 선박을 모두 한데 묶어서 화재방지용으로 선체외장에 진흙을 칠하고 적이 가까이 오지 못하게 긴 목재을 묶어서 붙여놓아 방어망을 만들어 기름을 이용해 화공을 가하려는 의도를 가진 원나라군을 물리쳤다.
1279년 2월에 이르러, 기나긴 소모전에 피로가 쌓인 옛 남송군은 패주했다.
1279년 3월 19일 중국 남부 광주(廣州)의 애산에서 원나라와 남송의 최후 결전이 있었다. 원나라의 군대가 남송의 해군을 격파한 전투로 이 전투에서 남송은 패배하고, 이것에 절망한 신하 및 간부들이 차례로 물에 뛰어들었고, 그 와중에 육수부는 어린 황제에게 대학의 강의를 배안에서 하였다. 그러나 패배를 깨닫고, 황제를 안고 물에 뛰어들었다. 이것을 기점으로 전투는 종결되었고, 원나라군의 승리가 확정되었다. (애산 전투).
남송이 멸망할 때 나라에 순사한 충신은 다른 왕조에 비해 대단히 많았으나, 원나라의 통치 아래에서 송나라의 유민으로써 살아 남기를 계속한 사대부도 있어 문장궤범을 편찬한 사방득, 십팔사략을 저술한 증선지, 자치통감음주(자치통감의 주석서)을 저술한 호삼성 등, 문학 사학에서 이름을 남긴 송나라의 유민도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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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나라의 황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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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송 | |
| 남송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