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송 영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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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 영종(宋 寧宗, 1168년 ~ 1224년)은 남송의 제4대 황제(재위 : 1194년 ~ 1224년). 휘는 조확(趙擴). 시호는 법천비도순덕무공인문철무성예공효황제(法天備道純德茂功仁文哲武聖睿恭孝皇帝). 광종의 아들이다.
생애 [편집]
1194년 황제에 불만을 품은 재상 조여우(趙汝愚), 한탁주(韓侂胄) 등에 의해 광종은 퇴위당했다. 그리고 영종(寧宗)이 즉위하였다. 한탁주는 이 공적으로 권력의 자리에 가까이 다가가게 될 것이라 생각했지만, 한탁주의 인격을 좋아하지 않은 조여우 등은 한탁주를 멀리했다.
이것에 원한을 품은 한탁주는 조여우 등을 몰아내기 위한 운동을 시작해 1195년(경원 원년) 조여우는 재상직에서 물러났고, 경원 3년에는 조여우편에 섰던 주필대(周必大), 유정(留正), 왕난(王藺), 주희(朱熹), 팽귀년(彭龜年) 등 59명이 금고(禁錮)에 처해졌다. 그 다음 해에는 주희의 주자학(朱子學;당시 도학(道學)이라고 불렸다)도 거짓 학문이라고 탄압받았다(경원위학의 금(慶元僞學之禁). 이 일련의 사건을 경원의 당금(慶元之黨禁)이라 불렀다.
1206년 테무진이 몽골을 통일하고 칭기즈 칸의 칭호를 받았다. 칭기즈는 몽골어로 만물의 지배자 또는 강건한 지배자를 뜻한다.
1207년 한탁주를 살해한 사미원(史弥遠)이 이번에 권력을 장악하고 그 후 26년동안 재상의 지위를 차지했다. 그 시기 북쪽의 몽골고원에서는 몽골 제국이 급속도로 세력을 확대하였다.
1207년 몽골족은 북서부 중국과 티벳을 지배하는 서하와 전쟁을 시작하였다. 이 전쟁은 1210년 에 서하의 왕이 항복함으로써 끝이 났다. 이 기간 동안 위구르족 또한 몽골족에게 항복하였다.
1211년 몽골은 대회의를 가진 후 금나라를 침공하였다.
1219년 – 1222년 몽골족은 금나라와 전쟁을 벌이는 동안 중앙 아시아를 침략하여 호라즘 제국을 멸망시켰다.
영종은 9명의 아들 중 조횡(趙竑)을 후계자로 하였다. 그러나 그는 사미원을 배제하여 1224년 영종이 위급해지자 결국 조윤(趙昀)이 태자가 되어 황제로 즉위하였다.
가족관계 [편집]
- 황후(정비) : 공숙황후 한씨(恭淑皇后 韓氏)(1168 ~ 1200)
- 황후(계비) : 공성인렬황후 양씨(恭聖仁烈皇后 楊氏)(1162 ~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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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나라의 황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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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송 | |
| 남송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