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송 신종
송 신종(宋 神宗, 1048년 ~ 1085년)은, 북송의 6대 황제(재위 : 1067년 ~ 1085년)로 제5대 황제 영종의 장남이다. 휘는 조욱(趙頊). 시호는 소천법고운덕건공영문열무흠인성효황제(紹天法古運德建功英文烈武欽仁聖孝皇帝)이다.
[편집] 생애
그는 1066년에 황태자가 되고 다음 해 영종 붕어후에 즉위하였다.
19세의 젊은 황제 신종이 즉위한 후에 왕안석(王安石)은 한림학사가 되었고 이때 황제의 신뢰를 얻었다. 국방비의 증가와 대상인, 대지주 증가로 일어난 세수 감소 등에 대해 개혁이 촉구되어 6대 황제 신종은 왕안석을 등용하여 국정개혁에 나섰다.
1069년 참지정사(參知政事)가 된 것이 계기가 되어 다양한 내용의 개혁정책을 실행에 옮기게 된다. 이 움직임은 왕안석의 신법(新法)이라 불리었다.
이 신법은 주로 영세농민의 보호와 대상인, 대지주의 억제를 목표로 한 것이기에 신법은 지주, 상인세력과 그곳 출신인 관료들의 엄청난 반대를 불러 일으켰다. 이들 반대파들을 가리켜 구법파(旧法派)라고 불렀다.
이 신법파와 구법파의 다툼은 나날이 격렬해져 갔다. 신법파의 왕안석에 대해 구법파의 대표자는 사마광(司馬光)이었다. 이 두 사람이 살아있던 기간에는 당파의 다툼은 높은 이념에 의한 것이었으나, 두 사람이 죽은 후에는 당리에 의한 이념 다툼으로 추락했다. 신법파가 이기면 구법파의 관료는 한꺼번에 중앙에서 멀어졌고, 법률을 모두 개정하였지만, 그 후에 구법파가 득세할 때에는 오히려 반대의 일이 벌어지는 상황이 비일비재하였다.
이러한 다툼은 국가체제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고, 서서히 송나라의 국력은 기울어져갔다. 1085년 북송 신종이 붕어하고 철종이 즉위하였다.
|
송나라의 황제 |
|
|---|---|
| 북송 | |
| 남송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