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송 이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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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 이종(宋 理宗, 1205년 ~ 1264년)은 남송의 5대 황제(재위 : 1224년 ~ 1264년). 휘는 조윤(趙昀). 시호는 건도비덕대공복흥열문인무성명안효황제(建道備德大功復興烈文仁武聖明安孝皇帝)이다.

[편집] 생애

영종은 9명의 아들 중 趙竑을 후계자로 하였다. 그러나 그는 사미원(史弥遠)을 배재하여 1224년 영종이 위급해지자 조윤(趙昀)이 태자로 황제에 즉위하였다.

그 시기 북쪽의 몽골고원에서는 몽골 제국이 급속도로 세력을 확대하였다. 사미원이 사망한 1233년 몽골 제국금나라의 수도 카이펑을 함락하자, 남쪽으로 도망친 금나라 최후의 황제 애종(哀宗)을 송나라군과 협력하여 사로잡아 1234년 금나라는 멸망했다.

그후 몽골은 일시 북쪽으로 물러나고, 그 뒤를 송나라군이 북상하여 낙양과 카이펑(개봉)을 손에 넣었다. 그러나 이것은 몽골과의 조약위반이 되었기에 격노한 몽골군과 전투 상태에 들어가게 되었다.

1259년(개경 원년)에 몽골이 남송에 침공해 왔다. 허나 명장으로 널리 알려진 맹홍의 앞에서 고전을 면치 못해, 전투는 일진일퇴를 거듭했다.

이윽고 1260년 몽케 칸의 친정군이 들이닥쳤다. 그러나 몽케는 이 원정 도중에 병사한다. 이때 쿠빌라이가 공격한 무창에 원군으로 온 가사도는 이들을 퇴각시켰다. 가사도는 쿠빌라이의 군대를 악주(무창)에서 격파한 공적으로 재상에 등용된다.

이 때 가사도가 대승한 말을 할 수 있던 것은, 몽골의 황제 몽케가 사망했기 때문에, 퇴각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또는 가사도와 쿠빌라이와의 사이에 밀약이 있었다는 설도 있다.

가사도가 재상으로 취임한 다음, 1264년(경정 5년)에는 이종이 붕어하고 황제 도종이 즉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