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성광헌황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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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성광헌황후
慈聖光獻皇后
송나라의 태황태후
재위 1067년 1월 27일 ~ 1079년 11월 16일
즉위식 치평(治平) 4년 1월 10일
(1067년 1월 27일)
후임 숭경태황태후 고씨(선인성렬황후)
송나라의 황태후
재위 1063년 5월 5일 ~ 1067년 1월 27일
즉위식 가우(嘉祐) 8년 4월 5일
(1063년 5월 5일)
전임 응원황태후 유씨(장헌명숙황후)
후임 보자황태후 고씨(선인성렬황후)
송나라의 황후
재위 1034년 11월 1일 ~ 1063년 5월 5일
즉위식 경우(景祐) 원년 9월 18일
(1034년 11월 1일)
전임 폐후 곽씨
후임 선인성렬황후 고씨
이름
별호 경수황태후(慶壽皇太后)
경수태황태후(慶壽太皇太后)
시호 자성광헌(慈聖光獻)
신상정보
출생일 대중상부(大中祥符) 9년(1016년)[1]
출생지 진정부(眞定府) 영수(靈壽)
사망일 원풍(元豊) 2년 10월 20일
(1079년 11월 16일)[2] (62 - 63세)
사망지 개봉부(開封府) 경수궁(慶壽宮)
부친 오안희왕(吳安僖王) 조기(曹玘)
모친 하국태부인(夏國太夫人) 풍씨(馮氏)
배우자 인종(仁宗) 조정(趙禎)
자녀 〈양자〉
영종(英宗) 조서(趙曙)
능묘 영소릉(永昭陵)

자성광헌황후 조씨(慈聖光獻皇后 曹氏, 1016년 ~ 1079년 11월 16일(음력 10월 20일))는 북송 인종의 황후로 송나라의 명장 건국공신 조빈(曹彬)의 손녀이다.

생애[편집]

1033년 인종의 얼굴에 손찌검을 했다는 이유로 황후 곽씨가 폐위되자 이듬해인 1034년 황후로 책봉되었다. 《송사》에는 조씨가 성격이 온화하고 소박하며, 지체높은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일을 좋아하여 농사를 짓고 누에를 쳤다고 기록되어 있다.

1048년 1월, 황궁의 위병이 정변을 일으키는 사건이 일어났다. 바깥이 떠들썩하고 지붕에서 기와 밟는 소리가 나는 것을 듣고 당황한 인종이 밖으로 나가려 하자, 조씨는 인종을 말리면서 처소의 문을 잠그고 도지사(都知事) 왕수충(王守忠)에게 사람을 보내 군사를 보내는 등 침착하게 대응했다. 또한 궁문이 두꺼워 역도들이 문을 부수는 대신 궁에 불을 지를 것을 염려하여 미리 사람을 시켜 물을 준비해두었고 이 때문에 황궁에 불이 났을 때에도 큰 피해를 입지 않을 수 있었다. 조씨는 내시들에게 자신의 머리카락을 뽑아 나누어주면서 내일 아침 이것을 지니고 있는 사람에겐 상을 주겠다고 하며 사기를 북돋았다. 이 사건에 후궁이 관련이 되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에는 후궁을 사형에 처하도록 하여 궁 안의 기강을 바로세웠다.

참고 문헌[편집]

  • 샹관핑, 《중국사 열전, 후비 - 황제를 지배한 여인들》, 달과소, 2008
  • 장젠중, 《중국을 말한다》, 남광철 역, 신원문화사, 2008

각주[편집]

  1. 《송사》(宋史) 권242〈열전〉(列傳) 제1 후비(后妃) 상 - 자성광헌조황후(慈聖光獻曹皇后)
  2. 《송사》(宋史) 권15 〈본기〉(本紀) 제15 신종(神宗) 2 - 원풍(元豊) 2년 10월 을묘(乙卯)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