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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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익(朴容益, 일본식 이름: 美村文雄(베이무라 후미오), 1905년 1월 8일 ~ 1977년 5월 26일)은 일제강점기의 관료이며 제3,4대 국회의원을 지낸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제1공화국 말기에 집권당인 자유당의 원내총무를 맡았다. 4·19 혁명 성공 후 3·15 부정선거에 관여한 혐의로 입건되었으며, 이 사건을 조사하던 중에 5·16 군사 정변이 일어나 혁명재판소가 구성되었다. 박용익은 혁명재판을 받고 거액의 불법 선거 자금을 조달한 혐의로 사형을 구형받았다.[1]

민족문제연구소2008년 발표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관료 부문에 포함되었다.

약력[편집]

역대 선거 결과[편집]

실시년도 선거 대수 직책 선거구 정당 득표수 득표율 순위 당락 비고
1954년 총선 3대 국회의원 강원 강릉군 을 무소속 21,692표
62.06%
1위 초선
1958년 총선 4대 국회의원 강원 명주군 자유당 무투표
0%
재선
1967년 총선 7대 국회의원 강원 강릉시·명주군 자유당 15,301표
19.27%
3위 낙선

참고자료[편집]

각주[편집]

  1. “무더기 求刑이 내려지던 날 - 울고웃는 喜悲의 交錯” (PDF). 경향신문. 1961년 9월 12일. 2면면. 2016년 3월 6일에 원본 문서 (PDF)에서 보존된 문서. 2008년 3월 18일에 확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