랴오둥 반도
랴오둥 반도(중국어 간체: 辽东半岛, 정체: 遼東半島, 병음: Liáodōng, 문화어, 중국조선말: 료동반도)는 중화인민공화국 랴오닝 성(遼寧省) 남부의 반도이다. 황해(黃海)의 북쪽에 있으며, 서쪽으로 보하이 만(渤海灣)의 일부분인 랴오둥 만(遼東灣), 동쪽으로 서한만(西韓灣), 남쪽으로는 (바다를 건너) 산둥 반도(山東半島)가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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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편집]
고대 [편집]
랴오둥 반도에 최초로 등장한 국가는 고조선(古朝鮮)이다. 기원전 10세기 부터 랴오둥 지방에서 발전한 고조선은 기원전 300년 경에 연에 의해 랴오둥 지방을 상실하였고, 이후 랴오둥 지방에는 요동군이 설치되어 중국 세력이 장기간 지배하였다. 5세기 초엽 고구려 광개토왕이 요동 지역을 장악하여 668년에 멸망할 때까지 고구려의 영토가 되었다. 고구려가 멸망한 이후에 당나라가 장악하였는데 발해가 건국되어 당과 대립하게 되자 랴오둥 지방은 완충지대가 되어 당의 지배력이 약화되었다. 이를 틈타 9세기 초부터 소고구려(小高句麗)가 발흥하여 랴오둥 지방을 지배하였다. 이후 발해 선왕의 치세(818년~830년) 때 발해가 소고구려를 병합하였는데, 이때 랴오둥 지방의 일부가 발해의 영토가 된 것으로 보이나 랴오둥 반도까지 지배하지는 못한 것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1]
중국 [편집]
요나라 [편집]
금나라 [편집]
명나라 [편집]
청나라 [편집]
17세기부터 20세기 초반까지 랴오둥 반도는 청나라의 영토에 속해 있었다.
청일 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한 이후, 시모노세키 조약(下關條約)에 의거하여 일본이 이곳을 차지했으나 러시아, 독일 제국, 프랑스의 서방 3개국의 주도로 이루어진 삼국 간섭(1895년 4월 23일)으로 인하여, 결국 랴오둥은 청나라에 반환되었다.
중화민국 [편집]
청나라가 신해혁명으로 멸망하고 중화민국이 건설되면서 랴오둥 반도를 포함한 만주 대륙은 중화민국의 치하에 놓이게 된다.
만주국 [편집]
중일 전쟁이 시작되었을 때에는 이곳은 만주국의 일부로 편입되었다.
중화인민공화국 [편집]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뒤엔 다시 중화민국의 영토가 되었으며, 중화인민공화국이 건국된 뒤엔 이곳에 랴오닝 성이 설치되었다.
일본 [편집]
일본은 삼국 간섭이 발생하고 10년 뒤인 1905년에 러일전쟁에서 승리함으로써 러시아의 조차지였던 다롄(大連)과 뤼순(旅順)을 점령하게 된다. 이후, 1945년에 관동군이 항복할 때까지 일본의 영토로서 존속하게 된다.
랴오둥 반도의 도시 [편집]
랴오둥 반도엔 16개의 도시가 위치해 있다. 7개의 지급시(다롄, 잉커우, 단둥, 랴오양 등)와 9개의 현급시(다스자오, 하이청, 푸청 등)가 위치해 있다.
오해 [편집]
랴오둥(遼東, 요동)이라는 이름은 랴오허(遼河)의 동쪽 땅이라는 뜻이다. 랴오둥 반도는 랴오둥이라는 이름과는 달리 랴오허 강의 동쪽이라기보다 남쪽과 남남동쪽에 있으며, 랴오허 수계에 직접적으로 인접해 있지는 않다. 이는 랴오둥의 남쪽 또는 남서쪽에 있는 반도이며, 이름에서 나타나는 랴오허 강의 동쪽은 아니다.
이 지명의 1911년 전의 지명, 역사학계에서는 요동 반도로 발음 및 표기하고 있다.
읽을거리 [편집]
참고 [편집]
- ↑ [브리태니커 대백과 발해 항목 http://100.nate.com/dicsearch/pentry.html?s=&i=1013600]의 설명 및 [지도 http://100.nate.com/dicsearch/pimage.html?i=143446001&en=143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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