랴오둥 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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랴오둥 반도의 위치

랴오둥 반도(중국어 간체: 辽东半岛, 정체: 遼東半島, 병음: Liáodōng, 문화어, 중국조선말: 료동반도)는 중화인민공화국 랴오닝 성(遼寧省) 남부의 반도이다. 황해(黃海)의 북쪽에 있으며, 서쪽으로 보하이 만(渤海灣)의 일부분인 랴오둥 만(遼東灣), 동쪽으로 서한만(西韓灣), 남쪽으로는 (바다를 건너) 산둥 반도(山東半島)가 자리하고 있다.

역사[편집]

랴오둥 반도에 최초로 등장한 나라는 고조선(古朝鮮)이다. 기원전 300년경에 의 장수 진개(秦開)가 동호를 1000리 밖으로 격퇴하였고, 이후 랴오둥 지방에는 연의 요동군이 설치되었다. 4세기에는 선비족전연, 후연 등의 국가가 이 지역을 장악하였다. 5세기에는 고구려광개토왕이 랴오둥을 고구려의 영토로 편입하였다. 7세기경 중국의 수나라당나라는 고구려와의 패권 경쟁을 벌였는데, 랴오둥은 그 중심으로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였다. 668년 고구려가 멸망하자 이 지역은 당나라의 관할로 들어갔으나, 당의 세력이 약화된 8세기 중반부터는 랴오둥 지방은 발해와 당의 완충지대로 남았다.

903년 거란족요나라는 랴오둥 지방을 차지하고, 926년에는 발해를 멸망시켰다. 12세기 초 북만주 하얼빈(哈爾濱) 근처에 있던 여진족 완안부의 아구다는 제위(帝位)에 올라, 국호를 (金)이라 하였다. 금은 요로부터 랴오둥을 우선적으로 탈취하여 세력 기반을 키웠고, 몽골 제국이 그들을 궤멸시킨 1234년까지 만주와 북중국을 지배하였다. 랴오둥은 이후 , 북원, 에 속하였다. 17세기초부터 20세기 초반까지 랴오둥 반도는 청나라의 영토에 속해 있었으며, 청은 이 지역에 유조변책을 지어 랴오둥과 만주를 분리하였다.

1895년 시모노세키 조약(下關條約)에 의거하여 일본이 이곳을 차지했으나 러시아, 독일 제국, 프랑스의 서방 3개국의 주도로 이루어진 삼국 간섭(1895년 4월 23일)으로 인하여, 결국 랴오둥은 청나라에 다시 반환되기도 하였다. 청나라가 신해혁명으로 멸망하고 중화민국이 건설되면서 랴오둥 반도를 포함한 만주 대륙은 중화민국의 치하에 놓이게 된다. 그러나 1914년 일본은 다시 이 지역을 강점하였고, 1932년 건국한 일본의 괴뢰국 만주국은 랴오둥에 중심을 잡았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뒤엔 다시 중화민국의 영토가 되었으며,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국공내전을 마친 뒤에 이 곳에 랴오닝 성을 설치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랴오둥 반도의 도시[편집]

랴오둥 반도엔 16개의 도시가 위치해 있다. 7개의 지급시(다롄, 잉커우, 단둥, 랴오양 등)와 9개의 현급시(다스자오, 하이청, 푸청 등)가 위치해 있다.

함께 보기[편집]

참고[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