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성헌황후: 두 판 사이의 차이
편집 요약 없음 태그: m 모바일 앱 |
편집 요약 없음 태그: m 모바일 앱 |
||
16번째 줄: | 16번째 줄: | ||
|시호 = 효성자선강혜돈화성휘인목경천광성헌황후(孝聖慈宣康惠敦和誠徽仁穆敬天光聖憲皇后) |
|시호 = 효성자선강혜돈화성휘인목경천광성헌황후(孝聖慈宣康惠敦和誠徽仁穆敬天光聖憲皇后) |
||
|자녀 = 5남 [[건륭제|고종 건륭헌황제]](高宗 雍正憲皇帝) |
|자녀 = 5남 [[건륭제|고종 건륭헌황제]](高宗 雍正憲皇帝) |
||
|본명 = 견환(甄歡) |
|||
|왕가 = |
|왕가 = |
||
|왕조 = |
|왕조 = |
2016년 1월 7일 (목) 05:39 판
효성헌황후
| |
---|---|
효성헌황후 | |
황후 | |
재위 | 사후 추존 |
전임 | 효경헌황후 오라나랍씨(孝敬憲皇后) |
후임 | 효현순황후 부찰씨(孝賢純皇后) |
황태후 | |
재위 | 1735 - 1777 |
전임 | 효공인황후 오아씨(孝恭仁皇后) |
후임 | 효화예황후 뉴호록씨(孝和睿皇后) |
이름 | |
별호 | 숭경황태후(崇慶皇太后) |
시호 | 효성자선강혜돈화성휘인목경천광성헌황후(孝聖慈宣康惠敦和誠徽仁穆敬天光聖憲皇后) |
신상정보 | |
출생일 | 1693년 1월 1일 |
사망일 | 1777년 3월 2일 | (84세)
배우자 | 청나라 제5대 황제 옹정제 |
자녀 | 5남 고종 건륭헌황제(高宗 雍正憲皇帝) |
효성헌황후(孝聖憲皇后, 만주어: ᡥᡳᠶᠣᠣᡧᡠᠩᡤᠠ
ᡝᠨᡩᡠᡵᡳᠩᡤᡝ
ᡨᡝᠮᡤᡝᡨᡠᠯᡝᡥᡝ
ᡥᡡᠸᠠᠩᡥᡝᠣ 히유슝가 언두링거 텀거툴러허 후왕허오, 1692년(강희(康熙) 31년) ~ 1777년(건륭(乾隆) 42년))는 청나라 옹정제의 후궁이자 건륭제의 생모이다. 만주양황기 니오후루 할라 출신이다. 아들 건륭제가 황위에 오르자 황태후로 책봉되었고, 사후 황후로 추존되었다. 시호는 효성자선강혜돈화성휘인목경천광성헌황후(孝聖慈宣康惠敦和誠徽仁穆敬天光聖憲皇后)이다.
생애
종4품 계급의 무직경관 전의[1] 능주(典儀 凌柱)의 딸로, 옹정제가 옹친왕(雍親王)이던 시절에 그의 후궁인 측복진 이씨의 시녀로 일하다가 옹정제의 눈에 들어 친왕의 첩인 격격(格格)이 되었다. 1711년(강희 50년) 8월에 자신의 유일한 소생이자 옹정제의 넷째 아들 홍력(弘曆)을 출산하였으니, 이가 곧 훗날의 건륭제이다.
옹정제가 즉위하여 희비(熹妃)에 봉해졌으며, 1730년(옹정 8년)에 희귀비(熹貴妃)로 진봉되었다. 옹정제의 사후 아들 건륭제가 황위에 올라 황태후에 책봉되어 그 존호를 숭경황태후(崇慶皇太后)라 하였다. 또한 거처도 황태후의 처소인 자녕궁(慈寧宮)으로 옮겼다. 그녀의 친정아버지인 능주 역시 황제의 외조부로서 일등승은공(一等承恩公)으로 승격되었다. 건륭제는 어머니를 각별히 존경하여 남순에 항상 동행하였고, 어머니가 연로하여 여행을 할 수 없게 되자 남순을 중지하였다.
1777년(건륭 42년) 정월에 86세를 일기로 붕어하여 옹정제의 태릉(泰陵)에 안장되었다. 건륭제는 자신의 생모인 뉴호록씨를 간절히 기리는 마음으로 효성헌황후(孝聖憲皇后)로 추봉하였다.
자녀
- 애신각라 홍력(愛新覺羅 弘曆) - 옹정제의 제4황자, 훗날의 고종 순황제(高宗 純皇帝, 건륭제)
- 화석령서공주(和碩怜徐公主)
- 화석롱월공주(和碩瓏月公主)
- 어낭공주(於娘公主)
주석
- ↑ 왕이나 자신이 근무하고 있는 큰 집안의 법식 또는 의식절차를 도맡아 진행하는 판임 관직(判任館職)이다.
전임 효경헌황후 |
청나라의 황후 사후 시호 |
후임 효현순황후 |
전임 효공인황후 |
청나라의 황태후 1735년 ~ 1777년 |
후임 효화예황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