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삼성 라이온즈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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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삼성 라이온즈 시즌삼성 라이온즈KBO 리그에 참가한 5번째 시즌으로, 김영덕 감독이 팀을 이끈 마지막 시즌이다. 장효조가 주장을 맡았으며, 팀은 전기리그 1위를 기록한 덕에 후기리그에서 4위에 그쳤음에도 불구하고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 다만 후기리그에서도 OB, 해태, MBC와의 치열한 선두 다툼 끝에 4위를 기록한 것이라 승률 차가 크지 않았고, 전기리그에서 승수를 쌓아둔 덕에 시즌 전체로 보면 승률 1위였다. 그러나 한국시리즈에 직행하기 위해서는 전기리그와 후기리그에서 모두 2위 안에 들어야 한다는 규칙이 생긴 탓에 전기리그와 후기리그에서 모두 2위를 기록한 해태 타이거즈가 통합 승률 2위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시리즈에 직행했고, 삼성은 플레이오프부터 치르게 되었다. 이후 삼성은 플레이오프에서 OB 베어스를 3승 2패로 꺾고 한국시리즈에 진출했으나, 해태 타이거즈에게 1승 4패로 패배하면서 통합 준우승을 기록했다. 한편, 외환사정 악화 탓인지[1] 마산에서 전지훈련을 했는데 1983년부터 홈런-타점 2관왕을 차지한 이만수가 전지훈련 도중 허리를 다쳐[2] 시범경기에 출전하지 못했으며 5월 7일 대구 해태전에서 4번 지명타자로 선발출전하여 처음 경기에 나섰지만 삼진 3개 등 4타수 무안타로 부진을 면치 못했고[3] 급기야 후기리그 초반 또다시 허리부상을 당해 한동안 결장했으며 결국 8월 2일 대구 해태전부터 재출장했고 1달 뒤인 9월 2일 빙그레전에서 1회말 선두타자 초구홈런을 쳐 최초 100호 홈런 선수가 됐으나 5회말 데드볼로 왼쪽 복숭아뼈를 맞아 교체되어 한동안 경기에 나서지 못하여[4] 규정타석도 채우지 못한 데다(59경기 239타석 212타수 68안타) 3년 연속으로 차지한 홈런,타점왕 타이틀도 내놓아야 했다. 게다가, 1984년(15선발승)부터 2년 연속 최다 선발승(21선발승) 타이틀을 차지한 김시진이 전년도 통합 우승을 차지하기 위해 무리하게 등판한 탓인지[5] 16선발승(2위)으로 추락했고 전년도 20선발승으로 선발승 2위에 랭크된 김일융이 당뇨병 의혹 때문에[6] 5월 24일 광주 해태전 이후 한동안 결장하는 등 13선발승으로 추락했으며 전년도 14선발승으로 선발승 3위를 기록한 황규봉이 팔꿈치 부상에 시달려[7] 3선발승으로 추락했다.

선수단[편집]

각주[편집]

  1. 김희준 (2021년 2월 9일). “[스잘알]프로야구 스프링캠프 유래와 KBO리그 변천사”. 뉴시스. 2021년 7월 22일에 확인함. 
  2. “主戰(주전)들 負傷(부상)많아 울상”. 경향신문. 1986년 3월 24일. 2021년 7월 22일에 확인함. 
  3. “프로야구 전기 宣(선)동렬 6연속 完投勝(완투승)”. 경향신문. 1986년 5월 7일. 2021년 7월 22일에 확인함. 
  4. “李萬洙(이만수) 5회 死球(사구)로 부상”. 동아일보. 1986년 9월 3일. 2021년 7월 22일에 확인함. 
  5. “金(김)시진 時限附(시한부) 은퇴”. 경향신문. 1986년 8월 18일. 2021년 7월 22일에 확인함. 
  6. “金(김)일융 68일만에 등판 先頭(선두)OB 잡았다”. 경향신문. 1986년 8월 1일. 2021년 7월 22일에 확인함. 
  7. “1승9무가 9승1패보다 승률 앞서는 불합리 시정「무승부=0.5勝(승)」내년 실시 검토”. 동아일보. 1986년 7월 15일. 2021년 7월 22일에 확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