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킹 복사
물리학에서 호킹 복사(Hawking 輻射, 영어: Hawking radiation) 또는 베켄슈타인-호킹 복사(Bekenstein–Hawking radiation)는 양자역학적 효과로 인해 블랙홀의 사건 지평선 근방에서 방출되는 열복사다. 스티븐 호킹이 1974–1975년에 이론적으로 예측했으며,[1][2] 이 복사의 발견은 블랙홀·열역학·양자역학 사이의 심오한 연결을 드러내어 양자 중력 이론을 향한 핵심 단서로 간주된다.[3]
호킹 복사는 블랙홀의 질량 및 회전 에너지를 빼앗아 궁극적으로 블랙홀 증발을 일으킨다. 복사 온도는 블랙홀 질량에 반비례하므로, 질량이 작을수록 더 뜨겁고 더 빠르게 증발한다. 질량이 태양질량 수준인 블랙홀의 호킹 온도는 K 수준으로 극히 낮아 현재 기술로는 직접 관측이 불가능하지만,[4] 음향 유사계를 이용한 실험실 실험에서 이와 유사한 복사가 관측되었다.[5]
배경
[편집]일반 상대성이론에서 블랙홀은 충분한 질량이 좁은 공간에 압축될 때 형성되며, 일정 반경 이내에서는 탈출 속도가 빛의 속력을 초과한다. 이 경계를 사건 지평선이라 하며, 고전 물리학의 관점에서는 빛을 포함한 어떤 신호도 지평선 밖으로 나올 수 없다. 따라서 고전적 블랙홀은 주변 물질을 빨아들이기만 할 뿐 스스로는 아무것도 방출하지 않는다.
그러나 1972년 야코프 베켄슈타인은 블랙홀이 유한한 엔트로피를 지녀야 한다고 제안했다.[6] 블랙홀에 유한한 엔트로피가 없으면, 물질을 블랙홀 속으로 던져 넣음으로써 우주 전체의 엔트로피를 임의로 감소시킬 수 있어 열역학 제2법칙을 위반하기 때문이다. 베켄슈타인은 이 엔트로피가 사건 지평선 면적에 비례한다고 주장했다.[7] 엔트로피가 있는 물체는 반드시 유한한 온도를 가져야 하며, 유한한 온도의 물체는 흑체 복사를 방출한다. 이 논리는 블랙홀이 복사를 방출해야 한다는 결론을 향해 나아가지만, 고전적 이론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했다.
같은 시기, 소련의 물리학자 야코프 젤도비치와 알렉세이 스타로빈스키는 회전하는 블랙홀이 입자를 방출할 수 있음을 전자기적 유추로부터 제안했다. 호킹은 1973년 모스크바를 방문하여 젤도비치를 만난 후, 이 두 아이디어를 굽은 시공간의 양자장론과 결합하여 블랙홀의 열복사를 증명하게 된다.
발견
[편집]1974년 호킹은 블랙홀이 이론적으로 흑체처럼 입자를 방출함을 보이는 결과를 발표했다.[1] 이 논문에서 호킹은 블랙홀이 온도 에 해당하는 열복사를 방출한다고 예측했다. 1975년 Communications in Mathematical Physics에 발표된 더 상세한 논문에서는 이 결과의 완전한 수학적 유도를 제시했다.[2]
호킹의 결과는 베켄슈타인의 블랙홀 엔트로피 이론을 지지하는 강력한 근거가 되었다.[3] 블랙홀이 온도 로 복사하면, 열역학 제1법칙 와 에너지 보존으로부터 블랙홀의 엔트로피가 정확히 베켄슈타인이 제안한 면적의 함수임을 확인할 수 있다.
같은 해 윌리엄 언루는 가속 운동하는 관측자가 관성계에서 진공인 상태를 열적 분포로 경험한다는 언루 효과(Unruh effect)를 발표하고, 이것이 호킹 효과의 국소적 설명임을 보였다.[8] 같은 해 제임스 하틀과 호킹은 경로 적분 방법으로 블랙홀 복사를 독립적으로 유도했다.[9] 1977년 게리 기번스와 호킹은 이 결과를 드 시터 공간의 우주론적 지평선에도 확장하여, 지평선이 있는 모든 시공간에 유사한 복사가 존재함을 보였다.[10]
돈 페이지는 1976년 비회전·비대전 블랙홀이 방출하는 각 입자종의 방출률과 증발 수명을 수치적으로 정밀 계산하였다.[11]
호킹 온도와 엔트로피
[편집]표면 중력이 인 킬링 지평선을 가진 정적(stationary) 블랙홀은 온도
의 흑체 복사를 방출한다. 여기서 는 볼츠만 상수, 는 디랙 상수, 는 빛의 속력이다. 이 복사를 호킹 복사, 이 온도를 호킹 온도(Hawking temperature)라 한다.
편의상 로 놓으면, 질량 , 전하 , 각운동량 을 가진 커-뉴먼 계량의 호킹 온도는
이다. 슈바르츠실트 계량의 경우 이므로
이다. 극대 블랙홀(extremal black hole, )의 경우 이므로 이 되어 복사를 방출하지 않는다.
엔트로피
[편집]블랙홀 온도로부터 블랙홀 열역학의 베켄슈타인-호킹 엔트로피를 유도할 수 있다. 열에너지 가 유입될 때 엔트로피 변화는 이고, 이를 적분하면
이다. 여기서 는 사건 지평선의 면적이다(플랑크 단위계). 이것이 베켄슈타인이 제안한 블랙홀 엔트로피 공식과 정확히 일치한다.
방출 과정
[편집]호킹 복사는 언루 효과와 등가 원리를 블랙홀의 사건 지평선에 적용함으로써 이해할 수 있다. 사건 지평선 근방에서, 낙하하지 않고 정지 상태를 유지하려는 관측자는 강한 가속도로 가속해야 한다. 언루 효과에 따르면, 가속하는 관측자는 국소 가속도 지평선에서 튀어나왔다 되돌아가는 입자들로 이루어진 열적 욕조를 경험한다.[8] 이 국소 열평형 조건에서 열적 입자들의 일부는 재흡수되지 않고 무한히 먼 곳까지 도달하는데, 이것이 호킹 복사이다.
슈바르츠실트 블랙홀의 지평선 바로 바깥, 위치 에서의 국소 계량은 린들러 좌표의 형태
로 주어진다. 이 계량은 고유 가속도 로 가속하는 계를 기술하며, 에서 발산한다. 등가 원리에 의해 이 관측자는 국소 온도
의 열욕을 경험한다. 중력 적색 편이를 고려하여 이 온도를 무한히 먼 곳으로 환산하면
유도
[편집]언루 효과를 통한 유도
[편집]호킹 효과는 언루 효과로부터 비교적 간단히 유도할 수 있다.[12] 편의상 가장 간단한 슈바르츠실트 계량의 블랙홀을 다루고, 로 놓자.
질량 의 슈바르츠실트 블랙홀의 슈바르츠실트 반지름은 이다. 적색 편이 인자는
이고, 위치 의 관측자가 정지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고유 가속도는
이다. 지평선 가까이()에서 블랙홀의 곡률을 무시하면, 언루 효과에 의해 이 관측자는 온도
의 열복사를 경험한다. 이 복사가 블랙홀을 탈출하면 적색 편이 인자 만큼 온도가 낮아지므로, 무한히 먼 관측자는
의 복사를 관측한다. 지평선()에서 방출되는 복사의 온도는
이 된다.
윅 회전을 통한 계산
[편집]호킹 온도는 윅 회전(Wick rotation)을 이용하여 더 간단하게 유도할 수 있다.[13]
- 시간 좌표를 허수 시간 로 치환한다(유클리드 부호수 계량).
- 일반적으로 블랙홀의 사건 지평선은 원뿔 형태의 특이점을 갖는데, 이를 없애려면 허수 시간 가 주기 를 가져야 한다.
- 이 경우 호킹 온도는 이다.
슈바르츠실트 블랙홀()의 경우, 사건 지평선 근방에서 변수를 , 으로 치환하면 계량이 의 2차원 극좌표 형태가 된다. 원뿔 특이점이 없으려면 가 를 주기로 해야 하므로, 에서 주기 를 얻고 따라서
이다.
그레이바디 인자
[편집]그레이바디 인자(greybody factors)는 블랙홀이 방출하는 복사 스펙트럼이 완전한 흑체 복사와 얼마나 다른지를 나타내는 주파수·각운동량 의존 함수다. 블랙홀의 사건 지평선 바로 위에서는 복사 스펙트럼이 완벽한 흑체 복사와 일치하지만, 이 복사가 블랙홀의 중력 퍼텐셜 장벽을 통과하여 무한히 먼 곳에 도달할 때 일부 주파수 성분이 산란·흡수되어 스펙트럼이 변형된다.
에너지 와 각운동량 양자수 을 가진 입자의 방출률은[14]
이다. 여기서 분모의 부호는 보손(+1)과 페르미온(−1)을 구분하며, 이 그레이바디 인자이다. 대전 블랙홀의 경우에는 방출 입자의 전하에도 의존한다. 그레이바디 인자는 블랙홀 스펙트럼의 관측 가능한 특성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로서, 원시 블랙홀의 전자기 복사 탐색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블랙홀 증발
[편집]
호킹 복사가 방출될 때마다 블랙홀은 그에 해당하는 에너지()만큼 질량을 잃는다. 질량이 줄수록 호킹 온도는 올라가 복사가 더 강해지는 양의 되먹임이 발생하여, 블랙홀은 유한한 수명을 가진다. 차원 분석에 의하면 블랙홀의 수명은 초기 질량의 세제곱에 비례하며, 정확한 식은[11][15]
이다. 여기서 와 는 각각 플랑크 질량과 플랑크 시간이다. 태양 질량( kg)의 블랙홀은 약 년 후에 증발하는데, 이는 현재 우주 나이(년)보다 약 배 길다.
순수한 광자 방출을 가정할 때 블랙홀의 복사 광도는
이다. 질량이 줄수록 광도가 급격히 증가하며, 블랙홀은 증발 말기에 플랑크 질량 수준에 이르러 감마선 폭발에 가까운 고에너지 복사를 방출하며 소멸할 것으로 예측된다.
블랙홀 증발은 다음과 같은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
- 블랙홀 열역학과의 일관성: 블랙홀이 열적 물체로서 우주와 에너지를 교환함을 보여 준다.
- 블랙홀 정보 역설: 호킹 복사가 완전히 열적이라면, 블랙홀에 떨어진 정보가 소멸하여 양자역학의 유니터리성을 위반한다. 이것이 블랙홀 정보 역설이며, 정보가 복사를 통해 보존된다는 페이지 곡선의 주장과 대립한다.
- 말기 단계: 질량이 플랑크 질량에 근접하면 양자 중력 효과가 중요해지며, 정확한 말기 거동은 아직 이론적으로 불분명하다.
원시 블랙홀의 증발
[편집]원시 블랙홀은 초기 우주의 밀도 요동으로 형성되었을 수 있다. 호킹은 현재까지 살아남으려면 초기 질량이 약 kg 이상이어야 한다고 추정했다.[2] 페이지는 1976년 더 정밀한 수치 계산으로 이 임계 질량을 약 4×1011 kg으로 정밀화했으며,[11] 당시의 중성미자 정보가 부정확했음이 나중에 밝혀졌다. 2008년 표준 모형의 3세대 중성미자를 모두 포함한 재계산에서는 (5.00±0.04)×1011 kg으로 산정되었다.[16]
우주론의 관점에서, 태양 질량 블랙홀은 약 년 후에 증발하는 반면, 의 초대질량 블랙홀은 약 년 후에야 소멸한다.[17]
문제점과 확장
[편집]트랜스-플랑크 문제
[편집]호킹의 원래 계산은 양자 입자의 파장이 사건 지평선 근방에서 플랑크 길이보다 짧아지는 영역을 포함한다. 이는 지평선에 가까울수록 시간이 외부 관측자 기준으로 멈추는 특이한 거동에서 비롯된다. 멀리서 유한한 주파수로 도달하는 호킹 복사를 지평선까지 역추적하면, 지평선에서의 주파수가 무한대로 발산한다. 이 때문에 복사의 파장이 플랑크 길이보다 짧아지는 트랜스-플랑크 영역이 개입하며, 이 영역의 물리 법칙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4][18][19]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한 접근은, 호킹 복사가 플랑크 길이보다 긴 파장의 모드만으로 재구성될 수 있음을 보이는 것이다. 실제로 언루 효과에서도 같은 종류의 트랜스-플랑크 문제가 나타나지만, 언루 온도 자체는 민코프스키 장론으로 계산할 수 있어 논란이 없다.[20] 현재 트랜스-플랑크 문제는 대부분의 연구자들에게 호킹 복사를 부정하는 근거가 아니라, 계산상의 수학적 특이성으로 받아들여진다.
큰 여분 차원
[편집]이전 절의 공식들은 중력 법칙이 플랑크 길이 수준까지 유효하다는 가정 하에 성립한다. 큰 여분 차원(large extra dimensions) 모형에서는 중력의 유효 플랑크 에너지 척도가 수 TeV 수준까지 낮아질 수 있다. 이 경우 여분 차원의 크기보다 작은 반지름을 가진 미시 블랙홀의 수명은[21]
이다. 여기서 는 유효 플랑크 에너지, 은 여분 차원의 수다. 이 모형이 맞다면 LHC에서 미시 블랙홀이 생성되어 호킹 복사를 방출할 수 있다.
루프 양자중력
[편집]루프 양자중력의 틀 안에서 블랙홀 사건 지평선의 양자 기하학이 자세히 연구되었다.[22][23] 루프 양자중력에서는 베켄슈타인-호킹 엔트로피 공식이 자동으로 재현되지 않고, 이미르치 파라미터(Immirzi parameter)라는 자유 변수를 조정해야 공식이 맞는다. 이 프레임워크에서는 호킹 스펙트럼으로부터의 이산적인 이탈이 예측되며, 이는 원시 블랙홀에서 방출되는 X선 관측으로 원칙적으로 검증될 수 있다.
터널링 그림
[편집]파리크(Parikh)와 윌첵은 호킹 복사를 터널링 과정으로 기술하는 대안적 유도법을 개발했다.[24] 이 접근에서는 사건 지평선을 통한 입자의 터널링 확률을 볼츠만 분포와 비교함으로써 동일한 호킹 온도를 얻는다. 터널링 그림은 국소적 형식으로 표현되기 때문에, 완만하게 변화하는 동적 지평선을 포함한 다양한 종류의 지평선에 적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실험적 관측
[편집]현재까지 실제 블랙홀에서 방출되는 호킹 복사는 검출되지 않았다. 태양 질량 블랙홀의 호킹 온도는 약 K로 우주 마이크로파 배경 복사 온도 2.7 K보다 훨씬 낮아, 실질적으로 복사를 흡수하기만 한다.
천문학적 탐색
[편집]2008년 NASA는 증발하는 원시 블랙홀에서 나오는 감마선 섬광을 탐색하기 위해 페르미 감마선 우주 망원경을 발사했다. 2024년 현재까지 원시 블랙홀의 증발에 의한 감마선 신호는 검출되지 않았다.[25]
입자 충돌기
[편집]큰 여분 차원 이론이 옳다면, 대형 강입자 충돌기(LHC)에서 미시 블랙홀이 생성되고 그 증발을 관측할 수 있다. 지금까지 CERN에서 미시 블랙홀의 증거는 확인되지 않았다.[21]
실험실 유사계
[편집]중력 블랙홀에서 호킹 복사를 직접 관측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유체 역학적 혹은 광학적 유사 블랙홀(analogue black hole)을 이용한 실험실 관측이 시도되었다. 음속 블랙홀에서 음파 요동은 중력 블랙홀에서 빛과 유사한 역할을 하며, 음속을 초음속으로 가속하는 흐름의 경계가 사건 지평선에 해당한다.
2016년 슈타인하우어(Steinhauer)는 보즈-아인슈타인 응축(BEC) 실험에서 양자 호킹 복사와 그 얽힘을 관측했다고 보고했다.[5] 2019년 무뇨스 데 노바(Muñoz de Nova) 등은 같은 방법으로 열적 호킹 복사의 온도를 직접 측정했다.[26] 2021년 콜로보프(Kolobov) 등은 정상 상태의 자발적 호킹 복사와 유사 블랙홀의 시간 발전을 관측하여, 복사가 시간이 지나도 안정적으로 방출됨을 확인했다.[27]
같이 보기
[편집]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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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olobov, Victor I.; Golubkov, Katrine; Muñoz de Nova, Juan Ramón; Steinhauer, Jeff (2021). “Observation of stationary spontaneous Hawking radiation and the time evolution of an analogue black hole”. 《Nature Physics》 17 (3): 362–367. arXiv:1910.09363. Bibcode:2021NatPh..17..362K. doi:10.1038/s41567-020-01076-0.
더 읽을거리
[편집]- Hawking, S. W. (1974). “Black hole explosions?”. 《Nature》 248 (5443): 30–31. Bibcode:1974Natur.248...30H. doi:10.1038/248030a0. — 호킹의 첫 번째 관련 논문
- Unruh, W. G. (1976). “Notes on black-hole evaporation”. 《Physical Review D》 14 (4): 870–892. Bibcode:1976PhRvD..14..870U. doi:10.1103/PhysRevD.14.870.
- Page, Don N. (2005). “Hawking radiation and black hole thermodynamics”. 《New Journal of Physics》 7: 203. arXiv:hep-th/0409024. doi:10.1088/1367-2630/7/1/203. — 종합 리뷰
- Almheiri, Ahmed; Hartman, Thomas; Maldacena, Juan; Shaghoulian, Edgar; Tajdini, Amirhossein (2021). “The entropy of Hawking radiation”. 《Reviews of Modern Physics》 93: 035002. arXiv:2006.06872. Bibcode:2021RvMP...93c5002A. doi:10.1103/RevModPhys.93.035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