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이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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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이안(Hội An)은 베트남 꽝남 성남중국해 연안에 있는 작은 도시이다. 인구는 약 80,000명이다. 한때 번성하였던 동서양의 문화가 어우러진 무역항이 있었고 1999년에 그 옛 마을이 세계유산으로 선정되어 있다. 많은 관광객이 찾는 관광지이다.

역사[편집]

일본 다리

호이안의 초기 역사는 참 족의 역사이다. 말레이계인 참 족은 기원전 200년경과 기원후 200년 경에 자바에서 이 곳으로 건너왔다. 이들은 참파 왕국을 이루었고 냐짱까지 이 왕국의 세력하에 있었다. 1세기 경에는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규모가 큰 항구가 여기에 있었고, 람압포(Lâm Ấp Phố)라고 알려져 있다. 투본(Thu Bon)강의 어귀에는 참파 사람들의 예전 항구가 있었다. 이 항구는 지리적 여건으로 인하여 16세기 말부터 17세기 초까지(넓게 보면 15세기부터 19세기 무렵까지) 베트남의 "바다의 실크로드"라고 불리던 중요한 국제 무역 항구였고, 여러 성(省) 출신의 화교와 일본인, 네덜란드인 등 서구 상인 그리고 인도인들이 드나들었고 마을을 형성하여 정착하였던 곳이다. 그래서 이 마을에는 서구적이면서도 동양적인 풍경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거기에 화교들이 호이안에 정착해 살기 시작하면서 '동화적'인 색다른 분위기가 형성됐다. [1] [2] 화교를 중심으로 한 무역이 번성하던 당시에 이 마을은 베트남어로 하이포(Hai Pho)라고 불렀고 이는 "바닷가 마을"이라는 뜻이었다. 원래 하이포는 "일본 다리"를 가로질러 마을이 나뉘었다. 하나는 일본인이 거주하던 곳이었다. 16~17세기, 무역이 번성했을 당시 호이안에는 일본인들이 특히 많이 드나들었고 그래서 일본인 마을까지 따로 생겨났다. 전성기에는 1000명이 넘는 일본인이 거주했을 정도로 마을 규모가 커졌다. 하지만 에도 시대 쇄국정책이 시행되면서 일본인 수가 점차 줄어들었고 일본인 마을 역시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3] 그 일본 다리(Chùa cầu)는 일본인에 의하여 지어졌는데 독특하게도 구조물이 다리를 덮고 있고, 다리의 한쪽으로는 사찰이 연결되는 구조물을 가진 다리이다.

어원[편집]

이 마을은 프랑스어와 스페인어로는 파이포(Faifo)라고 불린다. 포르투갈어와 네덜란드어도 이와 비슷하다. 이 이름의 기원에 관하여는 몇 가지 학설이 있다. 어떤 학자들은 바닷가 마을을 뜻하는 "hải-phố" (海浦)에서 왔다고 하고 다른 어떤 학자들은 Hội An-phố (會安浦), 즉 호이안의 마을을 줄여서 "Hoi-pho"가 되었고 이것이 변해서 Faifo가 되었다고 한다. [4]

관광[편집]

호이안의 옛 마을

경계가 점점 모호해지지만 호이안은 확실히 다낭과는 다른 분위기다. 씨클로와 오토바이, 논을 쓴 행상만 아니라면 호이안 구시가 중국의 어느 마을을 연상케 한다. [5] 호이안은 매력과 역사가 스며나오는 마을이다. 점차 무역의 중심이 호이 안에서 다낭으로 옮겨 가면서 호이 안은 졸지에 잊혀진 항구 마을이 되었고, 그 덕에 (그리고 상대적으로 외진 곳에 위치해 있어서) 20세기에 베트남에서 일어난 많은 전쟁의 파괴에서 빗겨나, 건축물들은 거의 훼손되지 않은 상태로 남을 수 있었다. [6] 고요한 강가의 마을로서, 지금은 전형적인 관광 마을이 되었다. 호텔, 식당, 바, 맞춤 옷가게, 기념품 가게 등이 구 시가지 중심에 자리잡고 있다. 비현실적인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호이안의 카리스마가 베어 있다. [7] 낮은 기와 지붕의 집과 옛 모습 그대로인 도로 등에서 동서양이 복합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일본인들이 세운 건축물도 곳곳에 남아 있다. 그 건물들은 이 지역과 외국의 영향이 독특하게 혼화된 모습을 보여준다. 호이안 구시가의 좁은 골목을 돌아다니다 보면 쉴 새 없이 카메라에 손이 간다. [5]오래된 집은 물론이고, 골목을 지나다니는 사람들과 수많은 그림 가게, 기념품 가게, 옷 가게들도 마을 안에 존재하는 단 하나의 이유로 카메라에 손이 간다. 이처럼 15세기부터 19세기까지의 동남아시아의 무역항으로서 잘 보전된 사례라는 점을 인정받아, 1999년 호이안의 옛 마을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선정되었다. 매표소에서 관람 티켓을 산 뒤 산책을 겸해 천천히 걸어다니며 구경하기 좋다.

호이안 역사문화박물관에서는 참파왕조(2∼17세기) 때부터 발전해온 호이안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다. 쩐가사당은 베트남,중국,일본 양식이 뒤섞인 사당으로, 응우옌 왕조의 관리였던 중국인 후손이 지었다. 이 집안 선조들의 유품도 전시돼 있다.[8] 오늘날 호이안은 작은 도시로 남아 있지만, 관광객이 꽤 많이 찾아 오고 배낭여행객들을 위한 시설도 잘 갖추어져 있다. 수많은 미술품과 공예품 가게들과 맞춤옷 가게에 많은 방문객들이 들른다. 맞춤옷 가게에서는 유럽에서의 가격보다 상당히 싼 가격으로 맞춤옷을 구할 수 있다. [9]

음식[편집]

까오라우(Cao lầu, 高樓)

호이안의 가장 대표적인 베트남 음식은 까오라우(Cao lầu, 高樓)이다. 이것은 가루반죽을 한 편편한 면인데 크루통(Crouton), 숙주나물과 돼지고기 조각이 얹어져서 나온다. 강가 앞에는 인터넷 카페, 바, 식당들이 문을 연다. 저녁에 방문할 만한 인기있는 곳으로는, 특히 유럽인들이 많이 가는 곳은 탐탐 식당과 바(Tam Tam's restaurant and bar), 레 로이(Le Loi)에 있는 비포어앤나우 바(Before and Now bar), 망고(Mango) 식당, 그리고 강 건너 편의 살사(Salsa)가 있다. 호이안은 오랜 전통을 가진 까오라우(Cao lầu)면이 명성이 높은데 오직 호이안에서만 맛볼 수 있다.

교통[편집]

호이안은 항공, 철도 교통은 없다. 가장 가까운 공항은 다낭 국제공항이다. 호이안은 버스나 오픈투어 버스로 가는 것이 최선이다. 다낭에서는 쎄옴이나 오토바이를 타고 가도 된다. [10]

주석[편집]

  1. [2005년 1월 10일] (2006년 8월 25일) 트래블게릴라: 《태국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100배 즐기기》, 개정2판, 서울: 랜덤하우스코리아(주), 469쪽 “지리적인 여건으로 인하여 15세기부터 19세기 무렵까지 해상 실크로드의 중요 거점으로 활약하며 동남아시아의 주요 중계무역 도시로 번성했던 곳이다. 한때는 서구 상인들이 드나들기도 하였고 중국 화교들과 일본인들도 마을을 형성하여 거주하였다.”
  2. 신중숙 기자 (2008년 1월 30일). 베트남 호이 안 ① Theme 01 옛 거리에서. 《트래비》. 한국여행신문사. 2008년 7월 23일에 확인. “16C 말부터 17C 초까지 이 작은 마을은 파이푸(Faifoo)라는 이름의, ‘바다의 실크로드’라고 불리던 활발한 국제 항구였다. 아시아와 유럽 상인들은 수많은 재화들을 이 항구에서 거래했고 그래서 이 마을에는 서구적이면서도 동양적인 풍경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거기에 화교들이 호이 안에 정착해 살기 시작하면서 ‘동화적’인 색다른 분위기가 형성됐다.”
  3. [테마여행] 호이안, 새로운 베트남을 만난다. 매일경제신문사 (2008년 7월 20일). 2008년 7월 23일에 확인. “무역이 번성했을 당시 호이안에는 일본인들이 특히 많이 드나들었고 그래서 일본인 마을까지 따로 생겨났다. 전성기에는 1000명이 넘는 일본인이 거주했을 정도로 마을 규모가 커졌다. 하지만 에도 시대 쇄국정책이 시행되면서 일본인 수가 점차 줄어들었고 일본인 마을 역시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4. Chen, Chingho. Historical Notes on Hội-An (Faifo). Carbondale, Illinois: Center for Vietnamese Studies, Southern Illinois University at Carbondale, 1974. p10.
  5. 베트남-해변에서 구시가까지 당신에게 들려주고픈 베트남 이야기. 트레비 (2010년 8월 1일).
  6. 신중숙 기자 (2008년 1월 30일). 베트남 호이 안 ① Theme 01 옛 거리에서. 《트래비》. 한국여행신문사. 2008년 7월 23일에 확인. “하지만 점차 무역의 중심이 호이 안에서 다낭으로 옮겨 가면서 호이 안은 졸지에 잊혀진 항구 마을이 됐다. 하지만 그 덕에(그리고 상대적으로 외진 곳에 위치해 있어서) 20C 베트남에서 일어난 많은 전쟁 통에도 호이 안의 건축물들은 거의 훼손되지 않은 상태로 남을 수 있었다.”
  7. [1991년 2월] (2007년 8월) Nick Ray 등: 《(Lonely Planet) Vietnam》, 9th (영어), Footscray: lonely planet, 239쪽
  8. 김재일 기자 (2008년 6월 9일). 오행산에 올라 `五行`을 헤아려봐!. 한국경제신문사. 2008년 7월 25일에 확인. “중국 색깔이 강한 도시로,낮은 기와지붕의 집과 옛 모습 그대로인 도로들에서 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일본인들이 세운 건축물도 곳곳에 남아 있다. 매표소에서 관람 티켓을 산 뒤 산책을 겸해 천천히 걸어다니며 구경하기 좋다. 호이안 역사문화박물관은 참파왕조(2∼17세기) 때부터 발전해온 호이안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다. 쩐가사당은 베트남,중국,일본 양식이 뒤섞인 사당.응우옌 왕조의 관리였던 중국인 후손이 지었다고 한다. 이 집안 선조들의 유품도 전시돼 있다.”
  9. Vietnam bu Nick Ray, Wendy Yanagihara [1] pp.242-3
  10. [2005년 1월 10일] (2006년 8월 25일) 트래블게릴라: 《태국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100배 즐기기》, 개정2판, 서울: 랜덤하우스코리아(주), 470쪽 “버스나 오픈 투어 버스로 가는 게 최선이다. 가까운 다낭에서는 쎄옴이나 오토바이를 타고 가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