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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화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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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화
柳花
동명왕릉에 그려진 유화부인 벽화.
동명왕릉에 그려진 유화부인 벽화.
고구려의 추존 왕비(妣)
부여의 추존 태후
재위 ? ~기원전 24년 음력 8월
대관식 유화
전임 하백(河伯)
후임 예씨 부인禮氏夫人)
이름
유화(柳花)
이칭 하백녀(河伯女)
별호 신모(神母)
동신성모(東神聖母)
묘호 미상
시호 미상
신상정보
출생일 미상
출생지 미상
사망일 기원전 24년 음력 8월
사망지 동부여
왕조 고구려
가문 미상
부친 하백
모친 미상
배우자 불리지 고모수(弗離支 高慕漱)
자녀 동명성왕
기타 친인척 위화(葦花)
훤화(萱花)

유화(柳花, ? ~ 기원전 24년 음력 8월)는 고구려 동명성왕의 어머니이다. 여동생들과 함께 압록강가에서 놀다가 북부여해모수의 꾐에 빠져서 그를 가까이 하자, 아버지 하백에 의해 태백산 우발수로 쫓겨나서 동부여(東夫餘)의 금와왕(金蛙王)을 따라 궁으로 들어갔다. 그 후 해모수와의 관계를 알게 된 금와가 방에 가뒀는데, 이때 을 하나 낳았다. 왕이 그 알을 개와 돼지에게 주어도 먹지 않고 길에 버려도 소와 말이 피하고 들에 버려도 새와 짐승이 덮어주었다. 다시 유화(柳花)에게 돌려주어 따뜻한 곳에 두니 한 아이가 껍질을 깨고 나왔는데 이 아이가 고구려의 시조 주몽(朱蒙) 동명성왕(東明聖王)이라고 한다.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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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에 의하면 수신(水神)인 하백(河伯)의 장녀인 유화는 동생 하위화(河葦花) 하훤화(河萱花)와 함께 압록강가에서 놀다가 천제(天帝)의 아들 해모수왕(解慕漱王)를 만나 크기가 닷되들이만한 알을 낳게 되었는데 그 속에서 주몽(朱蒙)이 나왔다고 한다. 또 이규보(李奎報)의 서사시 동명왕편(東明王篇)에서는 주몽(朱蒙)이 부여(扶餘)에서 남쪽으로 이주할 때에 신모(神母,柳花夫人)가 오곡(五穀)의 종자를 가지고 가라고 싸주었으나 이별하는 슬픔에 보리종자(麥子)를 빠뜨렸는데 신모(神母,柳花夫人)가 사자(使者)인 비둘기를 시켜 주몽(朱蒙)에게 보냈다는 기록이 있다. 이 사실은 하유화(河柳花)즉 주몽(朱蒙)의 신모(神母,柳花夫人)가 맥류경작(麥類耕作)과 관련된 농업신의 성격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유화(河柳花)은 기원전 24년 (동명성왕(東明聖王) 14년) 8월 동부여(東夫餘)에서 죽었는데 그 왕 금와왕(金蛙王)는 태후(太后)의 예(禮)로써 장례를 지내고 신묘(神廟)를 세워주었다. 한편 뒤에 고구려(高句麗)에서는 주몽(朱蒙)과 더불어 그 어머니인 하백녀가 국가적인 치제(致祭)의 대상으로 섬겨졌다.

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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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 문화속에 나타나는 하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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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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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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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국사기(三國史記)
  • 삼국유사(三國遺事)
  • 동명왕편(東明王篇)
  • 삼국지(三國志)
  • 주서(周書)
  • 주몽연구(朱蒙硏究 이옥 한국사연구 韓國史硏究 7 1972)
  • 동명왕편(東明王篇)에 보이는 신모(神母)의 성격(性格 김철준 유홍열박사화갑기념논총(柳洪烈博士華甲紀念論叢 1971 한국고대사회연구 韓國古代社會硏究)

古代祭政と穀靈信仰 三品彰英 史林 21 1 2 3 1936 1937)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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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온조왕의 어머니가 기원전 6년에 61세로 죽었다는 《삼국사기백제본기의 기록에 따라 추정.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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