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피야티
프리피야티(우크라이나어: При́п'ять [ˈprɪpjɐtʲ], 벨라루스어: Пры́п’яць [ˈprɨpjat͡sʲ], 러시아어: При́пять [ˈprʲipʲɪtʲ])는 우크라이나 북부에 있는 도시이다. 벨라루스와의 국경 근처에 있고 가까운 곳에 체르노빌이 있다. 이전에는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의 종업원이 사는 지역이었지만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에 의해서 주민이 피난하여 지금은 유령도시가 되었다.
기후[편집]
프리피야티의 기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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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 1월 | 2월 | 3월 | 4월 | 5월 | 6월 | 7월 | 8월 | 9월 | 10월 | 11월 | 12월 | 년 |
평균 최고 기온 °C (°F) | −3 (27) |
−1.4 (29.5) |
3.7 (38.7) |
13.2 (55.8) |
20.3 (68.5) |
23.5 (74.3) |
24.6 (76.3) |
23.9 (75.0) |
18.8 (65.8) |
11.8 (53.2) |
4.3 (39.7) |
−0.1 (31.8) |
11.6 (53.0) |
일 평균 기온 °C (°F) | −6.1 (21.0) |
−4.7 (23.5) |
0.1 (32.2) |
8.4 (47.1) |
14.8 (58.6) |
18.0 (64.4) |
19.1 (66.4) |
18.4 (65.1) |
13.7 (56.7) |
7.8 (46.0) |
1.8 (35.2) |
−2.6 (27.3) |
7.4 (45.3) |
평균 최저 기온 °C (°F) | −9.1 (15.6) |
−9 (16) |
−3.5 (25.7) |
3.7 (38.7) |
9.3 (48.7) |
12.6 (54.7) |
13.7 (56.7) |
12.9 (55.2) |
8.6 (47.5) |
3.8 (38.8) |
−0.7 (30.7) |
−5.1 (22.8) |
3.1 (37.6) |
출처: [1] |
역사[편집]
이주와 발전[편집]
소련 정부는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와 함께 지을 아톰그라드[2] 중 하나로 프리피야티를 계획했다. 이 도시는 9번째 아톰그라드로, 소련은 프리피야티가 몇 년 뒤에는 78,000명의 인구를 수용하는 도시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소련은 프리피야티만큼은 안전한 원자력 발전소로 만들고 싶었던 만큼 이 계획을 아주 중요하게 여겼고, 프리피야티와 초르노빌시의 슬로건을 "안전한 원자력"으로 정했다.
소련은 의도적으로 이 도시를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예프의 위성도시로 계획했으나 너무 가깝다는 의견에 키예프에서 100km 떨어진 곳을 선정해 도시를 건설하였다. 도시의 첫 번째 목표인 원자력 발전소 종사자들의 주거 시설과 중요한 철도 시설을 설치하고 프리피야티 강에 화물 허브를 건설했다. 그와 동시에 프리피야티 강 끝에 인공호수를 만들었으며 이 호수의 물은 체르노빌 발전소에서 냉각수로 사용하기로 했다. 거리의 이름들은 역시 레닌과 이와 비슷한 위치의 공산당 또는 건설자의 이름 등 여러 이름을 사용했다.
그리고 도시 중앙에는 큰 쇼핑 센터를 구축하고 폴라시아 호텔을 세웠다. 소련의 유명한 건축업자가 만든 이 호텔은 계획적으로 건설된 덕분에 교통체증을 유발하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소련은 이 프리피야트를 소련에서 최대한 좋은 도시로 만들기 위해 교육시설, 휴양지, 보건시설, 스포츠 시설[3] 등 여러 복지시설을 건설함은 물론, 근로자나 시민의 이동을 위해 야노프역 같은 곳을 만드는 등 매우 좋은 환경을 제공해 주었다.
프리피야트는 160개 아파트 블록에 약 14,000가구 49,800명이 거주하며, 산업으로 4억 7천7백만 루블을 벌어들이는 중소도시로 성장하였다. 이외에도 여러 통신시설, 문화시설도 많이 들어서 프리피야트는 소련이 만든 아톰그라드 중에서 가장 성공한 케이스가 될 수 있었다.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편집]
1986년 4월 26일 새벽 1시 24분, 아나톨리 댜틀로프의 실험이 실패하자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에서 대폭발이 일어났다. 이 폭발로 인하여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에 있던 방사능 물질들이 낙진화되어 전 유럽을 뒤덮었다. 특히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에서 상당히 멀리 떨어진 스웨덴까지 낙진이 날아갔으며 심지어는 이 낙진이 동아시아[4]에도 떨어졌다. 소련 정부는 이 사고를 은폐하려고 했지만 방사능량이 평소보다 증가한 것을 알아챈 스웨덴 정부가 소련 정부에 해명을 요구하여 바로 들통이 났다.
사고 후[편집]
사고 발생 36시간 후 대피 명령이 떨어진 뒤에 소련 정부는 반경 30km이내를 출입 금지 구역으로 지정했다. 이후 소련이 해체되고 오랜 시간이 지나 프리피야티는 풀이 우거지고 야생동물들이 모여 사는 곳이 되었다.
오늘날 이 땅은 사실상 소비에트 연방 시대 후기의 역사 자료관이나 마찬가지다. 폐쇄된 아파트 빌딩이나 병원 등이 모두 그대로 남아 있다.
프리피야티와 그 주변지역은 살기에 매우 위험하다. 과학자들은 가장 위험한 방사성 원소가 안전한 수준으로 충분히 줄어들려면 900년이 걸릴 것이라고 추정한다.
프리피야티 전 지역은 접근이 가능하고 도로도 안전하지만 가이거 계수기 없이 걸어 다니거나, 오랫동안 있게 되면 위험하다. 또한 프리피야티를 방문한 이후 가이거 계수기로 옷이나 신발에 방사능 오염이 심하다고 측정되면 그 자리에서 폐기처분해야 한다.
또한 프리피야티에는 500군데가 넘는 곳에 체르노빌 사고당시 도시 전체에 퍼진 낙진들을 모아서 묻었는데 낙진이 파묻힌 정확한 위치가 확인되지 않은 곳이 많아 상당히 위험하다.
대중 문화[편집]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 피해가 컸던 만큼 사고를 다루는 영화(체르노빌 다이어리, 체르노빌 드라마 등)에서 이 도시가 배경으로 등장한다.
각주[편집]
외부 링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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