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테르 크리스티안 키르케고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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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테르 크리스티안 키르케고르

페테르 크리스티안 키르케고르(덴마크어: Peter Christian Kierkegaard 1805년 7월 6일1888년 2월 24일)는 덴마크개신교 신학자, 정치가이며, 1857년부터 1875년까지 아알보르크에서 루터교 주교로 목회하였다. 쇠렌 키르케고르의 맏형이다. 국가교회(official church)의 신학자로서, 여러 번 자신의 동생이 쓴 글을 비판했고, 특히 1849년1855년에 열린 로스킬드 교회 총회에서 한 비판이 유명하다.

엘리스 마리 보이센(Elise Marie Boisen)과 1836년에 결혼하였으나, 이듬해에 아이를 낳다가 세상을 떠났다. 1841년에 결혼 한 소피 헨리에테 글랜(Sophie Henriette Glahn) 사이에서 파스칼 파울 에제드 키르케고르(Pascal Poul Egede Kierkegaard)를 낳았다.

1867년 9월 4일부터 1868년 3월 6일까지 프리지 내각에서 덴마크의 교육문화부 장관(덴마크어: kultusminister)을 지냈다.[1]

각주[편집]

  1. Engelstoft, Povl (1951). 〈Under grundloven af 1866〉. Bomholt, J.; Fabricius, K.; Hjelholt, H.; Mackeprang, M.; Møller, A. (eds.). 《Den danske rigsdag 1849-1949 bind II - Rigsdagens historie 1866-1949》 (덴마크어). J. H. Schultz Forlag. 45–46쪽.  이러한 자리가 있었다는 것은 당시 덴마크의 교육과 문화를 교회 지도자가 책임지고 감독하였음을 의미한다. 현재 덴마크에서 이 자리는 교육부 장관과 문화부 장관으로 나뉘었으며, 성직자가 맡아야만 하는 자리는 아니다. 영어 위키 Kultus Minister of Denmark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