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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1년]] 사신으로 [[청나라]]에 다녀온 후 [[신임사화]]가 일어나자 경상남도 [[동래]]로 유배되었다. [[1725년]] [[노론]]이 권력을 잡자 풀려나와 [[대사간]]을 거쳐 [[호조판서]]·[[우의정]]이 되었다. 이때 [[신임사화]]로 죽은 [[김창집]]과 [[이이명]]의 복관을 건의했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자 스스로 벼슬에서 물러났다. 그 후 [[1758년]] [[영의정]]이 되었으나 곧 그만두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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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월 5일 (금) 09:03 판
유척기(兪拓基, 1691 ~ 1767)는 조선의 문신이다. 자는 전보, 호는 지수재, 본관은 기계이다.
생애
1721년 사신으로 청나라에 다녀온 후 신임사화가 일어나자 경상남도 동래로 유배되었다. 1725년 노론이 권력을 잡자 풀려나와 대사간을 거쳐 호조판서·우의정이 되었다. 이때 신임사화로 죽은 김창집과 이이명의 복관을 건의했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자 스스로 벼슬에서 물러났다. 그 후 1758년 영의정이 되었으나 곧 그만두었다. 유언호의 5촌 종숙이다.
그는 당대의 명필이었으며 저서로 <지수재집>이 있다.
가계
- 증조부 : 유성증(兪省曾)
각주
- ↑ 유척기의 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