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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월 3일 (금)

2019년 11월 29일 (금)

2019년 11월 24일 (일)

2019년 11월 18일 (월)

  • 06:262019년 11월 18일 (월) 06:26 차이 역사 −39 반남 박씨기록이 없는 설명은 넣어선 안된다. 왜냐면 성씨는 고려시대 중반부터 사용되기 시작하였고, 조선시대에 양반들에게만 널리 사용되었는데, 고려시대 이전에 만들어졌다고 주장할경우, 노비 성씨가 되기 때문이다. 특히 경상도 성씨는 대부분 노비 천민들 성씨가 대부분인데, 고려시대엔 경상도지역이 천민지역으로 묶여 멸시와 천대를 받은 영향으로 성씨가 없었고, 조선시대를 지나 일제시대에 접어들어 왜구들의 [ 민적법 ] 시행으로 비로소, 경상도 노비와 천민들도 원하는 성씨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즉 고려시대 중반 ~ 조선시대 사이에 만들어진 성씨만 진정한 오리지날 양반 성씨라 할 수 있겠다. 태그: 시각 편집

2019년 11월 15일 (금)

  • 15:262019년 11월 15일 (금) 15:26 차이 역사 −812 장수 황씨기록이 없는 역사는 기재하면 안된다. 왜냐면 스스로 노비 천민 성씨임을 인증하는 꼴이기 때문이다. 성씨는 고려시대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해, 조선시대에 이르러 양반들에게만 널리 쓰이기 시작하였다. 즉 고려시대 이전에 만들어졌다고 주장하는 성씨는 99% 노비 천민 성씨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특히 경상도 성씨는 대부분 노비천민 성씨다. 고려시대 천민주거지역으로 묶인 경상도지역에 대부분 노비천민 성씨의 본관을 두고 있으며, 경상도 노비들은 일제시대 일본왜구들의 [ 민적법 ] 시행으로 비로소 원하는 성씨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ㅣㄹ본왜구들은, 서쪽 마한백제 양반 성씨들의 카르텔[뭉침]을 깨기 위해, 즉 양반 성씨의 가치를 떨어뜨리기 위해, 경상도 노비들에게도 마구잡이로, 성씨를 남발하여 발급하였는데, 그것이 바로 [ 민적법 ] 이었다. 태그: 한글 자모가 포함된 편집 요약 시각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