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백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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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의견: 4년 전 (InternetArchiveBot님) - 주제: 외부 링크 수정됨 (2020년 4월)

인용[편집]

"백제 전성시대에는 강병이 100만이었다. 남으로 월을 치고 북으로는 유, 연, 제, 노를 경계로 하였다. 커다란 중원국가 건설을 추진하였다." 『삼국사기』 「최치원전」

사용자:WonYong님이 올린 이 삼국사기 인용은 인위적으로 내용을 조작하기 위해 오역한 것입니다.

高麗·百濟 全盛之時 强兵百萬 南侵吳·越 北撓幽燕·齊·魯 爲中國巨
고구려와 백제는 전성시에 강한 군사가 백만이어서 남으로는 오(吳), 월(越)의 나라를 침입하였고, 북으로는 유주(幽州)의 연(燕)과 제(齊), 노(魯)나라를 휘어 잡아 중국의 커다란 위협이 되었습니다. -- 삼국사기 권46 최치원전 (원문의 한 글자가 euc-kr서포트가 안되서 이미지로 처리되어 있습니다.)

실제 원문의 주어는 분명 '고려'와 '백제'가 전부 제기되어 있어 이 인용은 백제만에 대한 내용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다른 인용들도 내용상 validity에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있어 삭제했습니다. 또한 원문에서도 위 내용은 역사서로서의 삼국사기의 일부가 아니라 최치원 개인의 서한에서 인용한 것으로, 사료로서 가치가 떨어집니다. -- Caffelice 2006년 1월 12일 (목) 15:55 (KST)답변

최치원 서한의 내용이 사료로서 가치와 진실성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그 내용을 검증할 다른 기록이나 증거가 필요합니다. 그 이전에는 역사서(삼국사기)에 실렸다해서 사실(史實)은 아니고, 교차 검증이 있기 전까지는 검토할 대상일 뿐입니다. 원용님이 저 내용을 사실로 생각하는 것과 실제로 사실이냐 여부와는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대표적인 예가 남경학살과 위안부 문제를 놓고 일본인들이 역사를 왜곡하는 것이죠. 일본서기부터 역사 왜곡을 당연시 해온 일본이긴 합니다만.--WaffenSS 2006년 1월 12일 (목) 16:40 (KST)

쿠다라[편집]

[1]에서 옮겨옴. --Puzzlet Chung 2007년 1월 21일 (일) 02:30 (KST)답변

먼저, 백제의 고유명칭에 대해서

일 본어의 쿠다라가 우리말 큰나라에서 왔다고 하는데---, 이런 표현은 삼갔으면 좋을 것 같아, 참고로 아직 만주와 남시베리아에는 고구려 또는 고려라는 이름과 비슷한 코리라는 종족이 있으며, 백제의 다른 면칭인 부여(남부여)와 비슷한 부리앝이라는 사람들이 있고, 일본의 쿠다라라는 명칭과 관련하여 쿠다리라는 종족이 적은 수나마 아직 존재하고 있읍니다. 이런데도 우리말 큰나라와 관련이 있을까요?

-- 이 의견을 작성한 사용자는 Balgunnuri (토론)이나, 서명을 남기지 않아 다른 사용자가 추가하였습니다.

더구나 금강 유역에는 "구다라"라는 나루터가 있습니다. 이것도 일본어 어원으로 볼 수 있습니다. 예전에 신전도시이자 무역항이었던 "아이기프토스"(창조신 프타하의 성역)가 "이집트"로 바뀌었듯이 말입니다. 따라서 일본어 "쿠다라"의 어원은 아직까지도 밝혀지지 않았다고 보아야 옳다고 생각합니다. --Knight2000 2007년 4월 17일 (수) 23:34 (KST)답변

필요 없을 것 같은데요?(일부를)[편집]

덧붙여 간무 천황의 어머니인 다카노노 니이가사(高野新笠)는 무령왕을 조상으로 하는 도래인 야마토(和)씨의 출신이다. 라는 내용은 현재 천황이 인정 했다고 하는데 여기의 내용에는 필요 없는 내용 같습니다.--Nt (토론) 2007년 5월 26일 (일) 15:53 (KST)답변

백제와 일본과의 관계에서 유의미한 내용이죠. 충분히 넣을 가치가 있습니다.--Hun99 2007년 5월 26일 (일) 15:55 (KST)답변
제 생각에는 백제#백제의 쇠망 항목에 넣을 내용이 아니라 따로 항목을 만들어야 하는 내용으로 보입니다. --Knight2000 2007년 8월 3일 (금) 17:27 (KST)답변

요서정벌 관련 내용 삭제 사유[편집]

한편 삼국사기는 지리지의 백제편에 신당서구당서를 인용해 백제의 서쪽 경계가 월나라지역에 이름을 들어서 사실일 수도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출처 : 新唐書云 百濟西界越州, 南倭, 皆踰海, 北高麗37卷-志6-地理4-05

위 내용이 추가되었으나, 저 문장은 이미 자체적으로도 사실이 아님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서쪽 경계가 越州라고 되어 있습니다만, 바로 다음에는 남쪽은 倭라고 서술하고 있지요. 또한 그 다음에는 "모두 바다 너머이다."라고 서술되어 있습니다. 왜가 백제와 바다를 격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며, 저 문장은 기본적으로 바다를 건너서 어떤 지역과 마주하고 있다는 내용이지 그 지역이 영토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월주나 혹은 왜까지 영토라고 해석한다면 바로 그 다음줄의 북쪽의 고구려 역시 백제의 영토라고 해석해야 올바릅니다. 그러나 고구려는 백제의 영토가 아님이 분명하므로 월주나 왜 역시 영토가 아니라는 것이 명백합니다. 그러므로 삭제하였습니다. 이상의 내용은 일반적으로 해당 구절을 해석하는 방법에 따른 것으로 기본적인 출처는 네이트 한국학에 공개된 삼국사기 번역본을 출처로 하였습니다. --Xakyntos (토론) 2009년 11월 19일 (목) 15:53 (KST)답변

중립성 문제로 삭제합니다.[편집]

백과사전적 서술도 아니고 내용도 중립성에 문제가 있어 삭제하였습니다. 이곳에 보존합니다.--Xakyntos (토론) 2010년 3월 13일 (토) 20:26 (KST)답변

[참고]백제가 당연히 우리민족이고 우리역사이지만 현재, 중국은 우리의 역사마저 삼키려하고 있다. 동북공정은 고구려뿐만아니라 백제마저도 중국의 역사라고 주장하고 있다.[2]

中国の教科書では、高等教育出版社の『世界古代史』は、古朝鮮・高句麗・扶余は韓国の歴史ではないと、韓国史の始まりは統一新羅からとの主旨で記述しており、中国の100余りの大学で使用されている福建人民出版社の『中国古代史』では、扶余・高句麗・沃沮・穢貊は中国・漢代の東北地区の少数民族だと記述している

[내용요약]중국 고등교육출판 교과서 고조선,고구려,부여 한국의 역사가 아니다. 통일신라부터 한국의 역사다. 100여개가넘는 대학에서 채택, 고구려,부여,옥저, 예맥은 동북지구의 소수민족으로 기술. 

또한 가야-신라(변한-진한) 사람들만을 “한국인”으로 정의를 하고, 고구려-백제인은 (부여) 퉁구스인으로 정의한다. 고구려를 한국 역사에서 제거하고 한국인을 한반도 남부의 삼한 사람들로 한정시키려는 것은 일본 또한 동일하다.

현재 일본 위키에 게재된 내용입니다。참고 바랍니다。또한 중립성에 문제에 대한 문구를 수정하였습니다。 수정후에도 중립성에 문제가 있다면 삭제 무방합니다。-- 이 의견을 작성한 사용자는 123.230.178.91 (토론)이나, 서명을 남기지 않아 다른 사용자가 추가하였습니다.
다른분이 내용도 남기않고 삭제했네요。최소한의 예의라도 지켜줬으면 좋겠건만-- 이 의견을 작성한 사용자는 123.230.178.91 (토론)이나, 서명을 남기지 않아 다른 사용자가 추가하였습니다.

해당 내용은 중립성도 문제이지만, 백과사전적 서술이 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더 문제입니다. 카테고리도 맞지 않고, 내용도 백과사전의 문체가 아닙니다. 게다가 사실 독자연구에 해당할 수도 있습니다. 백제 문서에 중국의 한국사 흡수 기도에 대한 내용이 들어가는 것은 애시당초 주제 자체가 틀린 것이기도 합니다. 해당 내용을 서술하고 싶으시다면, 백제와 직간접적으로 연관이 없는 부분은 모두 제외하고, 문장과 내용을 좀 더 가다듬어서 별도의 카테고리를 신설하여 서술하여 주시기 바랍니다.--Xakyntos (토론) 2010년 3월 13일 (토) 21:45 (KST)답변

화천서 200년대 대규모 백제마을 유적 발굴[편집]

화천서 200년대 대규모 백제마을 유적 발굴, 강원도 화천 일대까지 진출한 증거입니다. Komitsuki (토론) 2010년 9월 16일 (목) 16:37 (KST)답변

일본 = 백제 ???[편집]

“일본은 원래 백제땅 일컫는 말이었다”, 일본의 도노 하루유키 나라대 교수의 주장입니다. Komitsuki (토론) 2012년 8월 19일 (일) 20:32 (KST)답변

백제의 유적[편집]

백제는 삼국에서 찬란한 문화를 꽃 피웠다. 백제의 말년인 무왕시기에 만들어진 유적이 바로 익산 미륵사지와 왕궁리 유적이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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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찬란한 백제문화의 정수, 미륵사지와 왕궁리 유적”. 《새전북뉴스》. 2016년 12월 1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