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비세스 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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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비세스 2세 (페르시아어: کمبوجیه, ? - 기원전 522년 죽음)는 기원전 6세기에 활동한 페르시아 제국의 황제로 키루스 2세의 아들이다.(→아케메네스 왕조)

그의 기록은 거의 남아있지 않아 생년을 알 수 없으며, 아버지 키루스 2세와 아케메네스 가문의 딸, 카산다네 사이에서 맏아들로 태어났다. 키루스의 생존시에 바빌로니아에 대한 업무를 관장한 것으로 여겨지며 기원전 538년 바빌론에서 마르둑 신에 대한 제의를 맡은 기록이 있다.

기원전 530년 8월 선왕 키루스 대왕이 동쪽의 정벌에서 죽자 제국의 뒤를 이어 황제가 되었다. 캄비세스는 즉위직후부터 이집트를 공격하기로 마음먹고 그리스인 용병인 파네스를 통해 이집트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아라비아의 원주민과 연계하고 사막에 식수통으로 쓸 토기를 대량으로 매점하는 등 전쟁을 준비하여 기원전 525년 이집트를 공격한다. 헤로도토스가 기록한 설화에 따르면 캄비세스는 이집트 공격하기 전 이집트 파라오였던 파라오 아모세 2세에게 그의 딸을 요구했는데 아모세 2세는 이를 원하지 않았고 대신 자신이 제거했던 파라오 아프리에스의 딸 니테티스를 자신의 딸로 속여 캄비세스에게로 보낸다. 그러나 니테티스는 자기 아버지를 죽게한 일로 아모세에게 원한이 강해 아모세가 캄비세스를 속였다고 폭로했고 분노한 캄시세스가 이 일로 이집트를 공격했다는 주장이 있다.[1]

캄비세스는 아라비아의 부족들의 지원하에 시나이 사막을 건너서 이집트를 침공한다. 반대로 이집트도 이에 대응해 파라오 프사메티쿠스 3세가 나일강 하구의 펠루시온에서 주둔하며 캄비세스의 군대를 기다린다 그렇게 펠루시온에서 양측의 군대가 전투를 벌였는데 이집트의 용병들이 프사메티쿠스를 배신하여 그 아들들을 죽이고 캄비세스 군대에 붙었고 이것으로 캄비세스는 승리한다. [2]

캄비세스는 펠루시온의 승전 이후 기세를 몰아 이집트의 수도 멤피스에 항복사절을 보냈지만 멤피스는 사절단을 살해해 항복을 거부하고 캄비세스는 군대를 몰아 멤피스를 점령한다. 이에 이집트 주변국인 리뷔에와 퀴레네, 바르케에게도 무혈항복을 받는다. 맴페스를 점령한 캄비세스는 우선 죽은 아모세의 미라를 태워버린 뒤 이집트 정벌이후 캄비세스는 누비아의 왕국들과 카르타고의 정벌을 계획하지만 누비아 모래사막에서 막대한 손실을 입고 철수하였다.[3] 이집트의 비문 기록에는 캄비세스가 이집트 황제의 칭호(파라오)와 복장을 받아들였다고 적혀있다. (출처필요)

이집트 원정 직후 동생인 바르디야(헤로도토스에 따르면 스메르디스)와 누나이자 아내가(근친혼관계) 죽는 일이 있었는데 세간에는 이것이 캄비세스가 살해했다는 소문이 퍼졌다. 그외에도 귀족들을 잔혹하게 숙청하고 종교나 문화를 모욕하여 여러 사람들의 반발을 샀다. 이에 과거 리디아의 왕이었던 크로이소스가 캄비세스에게 충언을 했다가 분노한 캄비세스에게 죽을뻔한 사건도 있었다.(작성중)

나중에 다리우스 1세가 자신의 즉위의 정당성을 옹호하기 위해 남긴 비문을 보면, 사기꾼인 마기의 가우마타가 바르디야로 분장해 기원전 522년 3월 반란을 일으켜 황제를 참칭했다고 한다.

캄비세스는 시리아에서 이 반란소식을 듣고 페르시아로 귀국하던 도중 시리아에서 같은해 여름 사고로 죽었다고 전해지며 그 후 혼란을 수습하고 다리우스 1세가 왕위에 올랐다.

전임
키루스 2세
제2대 페르시아 제국 샤한샤
기원전 530년 - 기원전 522년
후임
다리우스 1세
  1. 헤로도토스. 《역사》3권 1장 
  2. 헤로도토스. 《역사》3권 10~11장 
  3. 헤로도토스. 《역사》3권 11장~25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