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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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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톨리아의 고대 지방
리디아 (Λυδία)
사르디스의 김나시온
위치 서부 아나톨리아
발생 시기: 기원전 12~6세기경
언어 리디아어
가장 큰 도시 사르디스
로마 속주 아시아 속주
아나톨리아에서 리디아의 위치

리디아 (리디아어 : 𐤮𐤱𐤠𐤭𐤣 , 그리스어: Λυδία)는 서부 아나톨리아(소아시아)의 한 역사적 지역으로 튀르키예의 현대 이즈미르 주, 마니사 주에 해당한다.

그 전통적인 수도는 사르디스였지만 리디아 왕국은 한때 서 아나톨리아 전체를 확보하기도 하였다. 리디아는 후에 로마 속주의 이름이었고 리디아에서는 주화가 기원전 660년경에 발명되었다.

역사적인 리디아의 경계는 수세기 동안 변하였다. 그것은 미시아, 카리아, 프리기아와 해안의 이오니아와 경계하였다.

그 후 알리아테스크로이소스 왕의 군사력으로 리디아는 제국으로 팽창하였는데 그 수도는 사르디스가 되었다. 사르디스는 리키아를 제외한 소아시아의 할리스 강 서쪽 모두를 통제하였다.

리디아는 원래의 크기로 결코 돌아가지 않았다. 페르시아 제국의 정복 후 매산더는 그 남쪽 경계로 여겨졌으며, 로마 치하에서는 리디아는 프리기아와 에게해 연안의 미시아와 카리아 사이의 나라를 구성하였다.

리디아어인도유럽어족으로 루위아어히타이트어와 관련되어 있다.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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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아 왕국의 최대 영역

기원전 12세기, 리디아는 히타이트 제국의 붕괴 후 신히타이트 왕국으로 부상하였다.

히타이트 시대에는 영역의 이름은 아르자와로 루위아어를 쓰던 지역이었다.

그리스 문헌에 따르면, 리디아 제국의 원래 이름은 마이오니아였다.

헤로도투스에 의하면 메이오네스는 그들의 왕 리두스의 이름을 따라 리디아로 개명되었다. 그는 아티스의 아들로 헤라클레스 왕조가 일어나기 이전의 신화의 분수령이다.

리디아의 어원은 그리스어 '리도이'(Λυδοί), 히브리어 루딤과 같으며 셈의 루드 아들이라는 뜻이다.

성경시대에 리디아 전사들은 유명한 궁사들이었다. 약간의 마에오네스는 아직 역사적인 시대에 헤르무스 강을 따라 존재한다. 그곳에 마에오니아라 불리는 도시가 존재하였다.

그리스 신화에서의 리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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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아 신화는 실제로 알려져 있지 않다. 그리고 그들의 문학과 제의식 등은 사라졌다. 임의의 비문 또는 고고학적 기록의 발굴이 없어 리디아 신화는 그리스 신화의 범주에 속한다.

그리스 인들에 대해 탄탈루스는 신화적인 리디아의 원래의 군주였고 니오베는 그의 자랑스러운 딸이었으며 그녀의 남편 제토스는 리디아와 테베를 연결하였다. 그리고 펠롭스를 통하여 탄탈루스의 라인은 미케네의 제2 왕조의 창건 신화의 일부였다.

그리스 신화에서 리디아는 쌍도끼 라브리스의 첫 고향이었다.

강 야르다노스의 딸 옴팔레는 리디아의 군주로 그녀를 위해 헤라클레스가 잠시 봉사할 것을 요구 받았다.

그의 리디아에서의 이점은 그리스 영웅의 모험이었다. 그곳에 머물며 헤라클레스는 이토네스를 노예로 만들었고 실레우스를 죽였는데 그는 지나는 사람들을 그의 포도밭에서 괭이질을 시켰다.

그리고 상가리오스 강의 서펜트를 처형하였다.

메르므나다이 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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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경호원 귀게스가 국왕 칸다울레스를 살해하고 리디아의 왕좌를 차지해 메르므나다이 왕조를 연다.

첫 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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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로도토스에 따르면 리디아인은 금화와 은화를 사용하고 상설 소매점을 세운 첫 민족이었다.

이들 첫 주조된 주화는 기원전 650-600년 경에 주조되었다고 한다. 첫 주화는 일렉트럼(호박금, 금과 은의 천연 합금)으로 만들어졌다. 무게는 1/3 슬레이터로 4.76 그램이었다. 겉면에 사자 머리가 찍혀 있었는데 이는 왕의 상징이었다. 14.1 그램의 일렉트럼이 1슬레이터(표준)이다. 1슬레이터가 병사의 한달 봉급 정도였다.

페르시아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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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546년 아케메네스 왕 키루스 2세는 사르디스를 점령하였고, 리디아는 그의 총독령이 되었다.

마케도니아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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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아는 마케도니아의 페르시아 정복 후 총독령으로 남았다.

알렉산더의 제국이 무너지자 리디아는 주요한 아시아 후계 왕조 중의 하나인 셀레우코스 제국이 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소아시아에서 영토를 유지할 수 없게 되자 리디아는 페르가뭄의 아탈리드 왕조로 떨어졌다.

그 마지막 왕은 로마정복 전쟁에 의한 약탈을 피하여 로마제국으로 들어 갔다.

로마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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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가 기원전 133년 그 수도 사르디스에 진입하였을 때 리디아는 로마의 아시아 속주가 되었다. 리디아는 매우 부유하였고 프로콘술 급의 고위 총독이 다스렸다.

이슬람 지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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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아는 최종적으로 새로운 튀르키예 베일릭에 함락되었다. 1390년 오스만 제국에 의한 것이었다. 리디아의 영역은 오스만 제국의 빌라예의 일부가 되었으며, 현대 튀르키예 공화국의 서쪽 경계이다.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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