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엘 바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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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엘 바츠
2008년, 리옹의 바츠
개인 정보
본명 Joël Bats
출생일 1957년 1월 4일(1957-01-04)(67세)[1]
출생지 프랑스 몽-드-마르상[1]
1.80m[1]
포지션 은퇴 (과거 골키퍼)
청소년 구단 기록
0 소쇼
구단 기록*
연도 구단 출전 (득점)
1974–1976
1976–1980
1980–1985
1985–1992
소쇼 B
소쇼
오세르
파리 생-제르맹
0
066 00(0)
184 00(0)
254 00(0)
국가대표팀 기록
1983–1989 프랑스 050 00(0)
지도자 기록
1992–1994
1994–1996
1996–1998
1998–1999
2000–2017
2018
2019
파리 생-제르맹 (골키퍼 코치)
파리 생-제르맹 (수석 코치)
파리 생-제르맹
샤토루
리옹 (골키퍼 코치)
앵팍 몽레알 (골키퍼 코치)
앵팍 몽레알 (수석 코치)
* 구단의 출전횟수와 득점기록은 정규 리그의 공식 리그 경기 기록만 집계함.

조엘 바츠(프랑스어: Joël Bats, 1957년 1월 4일, 아키텐 지방 몽-드-마르상 ~)는 프랑스의 전직 프로 축구 선수로, 현역 시절 골키퍼로 활약했다. 그는 현역 시절 전부를 모국 프랑스에서만 보냈는데, 553번의 공식 경기에 출전했고, 이 중 504번의 경기를 1976년부터 1992년까지 소쇼, 오세르, 그리고 파리 생-제르맹 소속으로 출전했다. 그는 프랑스 국가대표팀 경기에도 50번 출전했는데, 35번의 공식전에서, 15번은 친선전에서 출전했다.[2][3]

클럽 경력[편집]

소쇼[편집]

바츠는 소쇼유소년부에 입단해 축구를 시작했다. 그는 1974년 여름까지 소쇼의 U-19 선수단에 소속되었다. 그는 1974-75 시즌을 기점으로 소쇼의 1군에 합류했다. 바츠는 1974-75 시즌과 1975-76 시즌에 소속 구단의 2군에서만 활약했다. 1976년, 바츠는 구단의 1군으로 공식 승격되어 이후 알베르 뤼스와 4년 동안 출전 시간을 놓고 경쟁을 벌였고, 두 선수는 경기마다 돌아가며 출전했다. 바츠는 1979-80 시즌까지 소쇼에 남았다.[2][4]

오세르[편집]

1980년 여름, 바츠는 오세르로 이적했는데, 앞서 1979-80 시즌에 디비시옹 2 우승을 거두며 1980-81 시즌디비시옹 1 신고식을 앞두고 있었다. 그는 부동의 주전 선수로 5년 동안 오세르의 골문을 지켰다.

파리 생-제르맹[편집]

1985년 여름, 바츠는 파리 생-제르맹에 합류했다. 파리지앵은 1986년에 첫 디비시옹 1 우승을 이룩했다. 바츠는 파리 생제르맹의 주전 수문장으로 7년을 활약했다. 그는 286번의 공식 경기에 1991-92 시즌 은퇴하기 전까지 활약했다.

국가대표팀 경력[편집]

1983년 9월 7일, 바츠는 1-3으로 패한 덴마크와의 친선경기에 첫 프랑스 성인 국가대표팀 첫 경기를 치렀다.[3]

바츠는 안방에서 열린 유로 1984 본선에 프랑스 선수단에 이름을 올렸다. 그는 프랑스가 출전한 5번의 본선 경기에 모두 출전했다. 바츠는 준결승전에서 가장 빛났는데, 포르투갈과의 준결승전에서 수 차례 선방을 선보이며 연장전 끝에 3-2로 이기는 데 공을 세웠고, 프랑스는 뒤이어 스페인과의 결승전에서 2-0으로 이기고 프랑스 국가대표팀의 첫 주요 대회 우승으로 앙리 들로네를 들어올렸다.[5] 대회 종료 후, 바츠는 안정적이고 믿음직한 수문장으로 통했다. 그는 뒤이어 1989년에 국가대표팀에서 은퇴하기 전까지 프랑스의 부동의 골키퍼로 활약했다.[5]

바츠는 1986년 월드컵 예선 8경기에 모두 출전했고, 프랑스는 유럽 예선 조를 1위로 통과했다.[3] 1986년 월드컵에서도 바츠는 프랑스의 조별 리그 3경기, 16강전, 8강전, 그리고 준결승전에 매 분을 소화했다. 본선에서, 그는 브라질과의 8강전에서 지쿠가 정규 시간 후반전에 찬 페널티킥을 막아세웠고, 승부차기 주자로 나선 소크라치스를 막아냈다.[5] 그러나, 그는 본인 답지 않게 서독과의 준결승전에서 안드레아스 브레메의 프리킥을 손에서 떨어뜨려 실점했고, 결과는 프랑스의 0-2 패배였다.

바츠는 유로 1988 예선전 8경기에 모두 출전했고, 1990년 월드컵 예선전에서도 8경기를 모두 출전했다. 프랑스는 앞의 두 대회에서 모두 본선 진출에 실패했다. 바츠는 프랑스 국가대표팀 역사상 첫 50경기 출전을 기록한 골키퍼로 2-0으로 이긴 1989년 11월 18일자 2-0으로 이긴 키프로스와의 1990년 월드컵 예선전 안방 경기에서 기록했다. 그는 프랑스 국가대표팀에서의 마지막 국가대표팀 경기에 90분을 모두 소화했다.[3][5]

감독 경력[편집]

파리 생-제르맹[편집]

바츠는 파리 생-제르맹의 기술진을 역임하며 아르투르 조르즈를 보좌할 골키퍼로 1992년부터 1994년까지 보좌했고, 이후 1994년부터 1996년까지 루이스 페르난데스의 수석 코치였다. 바츠는 1996년 6월에 히카르두 고메스와 공동 감독으로 부임했다. 파리 생제르맹은 1997-98 시즌 쿠프 드 프랑스와 쿠프 드 라 리그를 우승했지만, 리그에서는 실망스러운 성적을 거두어 바츠와 고메스 모두 1998년 6월에 알랭 지레스에게 바통을 넘겨야 했다.

샤토루[편집]

바츠는 잠깐 디비시옹 2샤토루의 감독을 1998년 7월부터 1999년 9월까지 역임했지만, 큰 성과를 내지 못했다. 그 15개월 동안, 샤토루는 공식 경기 승률이 32%에 불과했다.[2]

리옹[편집]

2000년 여름, 바츠는 리옹의 골키퍼 코치로 취임해 이 직위를 2017년 12월까지 맡았다. 그는 리옹에서 17년을 머무르면서 그레고리 쿠페, 위고 요리, 그리고 로페스|앙토니 로페 3명의 골키퍼를 지도했고, 이들은 모두 성인 국가대표팀의 수문장으로 활약했다. 바츠는 본래 2019년까지 리옹과 계약했지만, 구단은 조기에 떠날 수 있도록 구단의 허락을 받아 메이저 리그 사커앵팍 몽레알을 지휘하는 레미 가르드 전 리옹 감독과 재회했다.[6][7]

사생활[편집]

바츠는 1982년 여름에 고환암 판정을 받았지만, 수술을 받고 빠르게 회복했다. 투병 중, 그는 시를 몇 편 썼고, 2권의 시집을 출판했다.[4][5]

1986년, 바츠는 자신이 쓴 시를 작곡하여 당신 밤의 파수꾼(Gardien de tes Nuits) 음반을 발매했다. 그 해 말, 그는 아동곡(시를 기반으로 작곡) 달팽이(L'Escargot), 신파극 발라드 고독함(Soli Solitude)과 내가 날더라도(Même si je m’envole) 단곡 3편을 발매했다.[5][8]

수상[편집]

파리 생-제르맹
프랑스

각주[편집]

  1. “Joël Bats”. 《L'Équipe》 (프랑스어) (Paris). 2021년 3월 30일에 확인함. 
  2. “조엘 바츠 - FootballDatabase.eu”. www.footballdatabase.eu. 
  3. “Profile of Joël Bats by the French Football Federation”. 프랑스 축구 연맹 공식 웹사이트. 
  4. “Mexico 86 : Joël Bats”. www.oldschoolpanini.com. 
  5. “EURO cult heroes: 1984 – Joël Bats”. www.uefa.com. 
  6. “Long-serving Bats to leave Lyon”. www.ligue1.com. 2017년 11월 14일. 2017년 11월 19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23년 6월 10일에 확인함. 
  7. “Joël Bats prolonge son aventure à L'OL”. www.sofoot.com. 2016년 8월 23일. 
  8. “Joël Bats: A football and musical profile of the Auxerre, PSG and France goalkeeper”. www.footballandmusic.co.uk. 2014년 9월 22일.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