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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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자
張玲子
출생 1944년 10월 25일(1944-10-25) (74세)
일제 강점기 전라남도 목포시

장영자(張玲子[1], 1944년 10월 25일 ~ )는 대한민국 前 기업가였으며 경제사범이었다. 계성여자고등학교숙명여자대학교를 졸업하였다. 종교는 불교이다. 그녀는 80년대 초 자신의 3번째 남편 이철희와 함께 거액의 어음 사기 사건에 연루되며 이후 "큰손"이라고 불렸다.

생애[편집]

생애 초반[편집]

전라남도 목포시내의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난 장영자는 아홉 살 때인 1953년 서울에 올라와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전문대학에 다니다 숙명여자대학교 [2]를 다녔다.

그의 고모부 차보륜은 큰 인쇄소를 경영했다. 장영자는 이철희의 부인이며, 김주승의 전 장모이기도 하다. 그의 언니 장성희는 전두환의 장인이자 이순자의 친정 아버지 이규동의 동생 이규광과 결혼하였다.[3]

숙명여자대학교 재학시절 장영자는 '메이퀸'으로 뽑히기도 했다. 대학재학 시절 첫 결혼하였으나 실패하여 두 차례 이혼하였다. 그 중 남편 김수철(대아금속 사장)에게서 아들 김모씨와 딸을 두었다.

1979년 당시 유정회 소속 국회의원이었고 중앙정보부 차장까지 지낸 이철희를 만났으며, 1982년 2월 서울 장충동 사파리 클럽에서 정관계 인사들을 대거 초청하여 결혼식을 올려, 초호화판 결혼식으로 입방아에 오르기도 했다.[2]

사기 사건 파문[편집]

1982년에 장영자는 그 해 남편 이철희를 내세워 고위층과 긴밀한 관계를 과시하면서 기업자금지원의 대가로 지원금의 몇 배에 달하는 어음을 받아 사채시장에 유통하는 수법으로2천억 원대의 사기 행각을 벌여 큰 파문을 일으켰다. 어음 사기 혐의로 1982년 5월 4일 검찰에 구속되었고 당시 장씨 부부는 물론 은행장 2명과 내로라하는 기업인 등 모두 32명이 구속됐고 장씨의 형부이자 당시 전두환 대통령의 처삼촌인 이규광 씨도 사건에 휘말려 구속됐다. 1983년 희대의 어음사기 사건으로 징역 15년을 선고받은 뒤 형기를 5년남겨 둔 1992년 3월 가석방되었다.

1차 구속 당시 함께 구속됐던 남편 이철희는 1991년 6월 먼저 가석방되자 곧바로장씨가 수감 중이던 청주교도소 근처에 방을 얻어 이듬해 3월 장영자가 가석방될 때까지 옥바라지하는 부부애를 과시, 화제가 됐다.[2] 그러나 출소 1년10개월 만인 1994년 1월 다시 140억 원의 차용사기 사건으로 다시 구속돼 징역 4년형을 선고받고 구속, 수감됐다.[2]

장씨는 1998년 8.15특사로 출소했으나 2년 후 2000년 구권(舊券) 화폐 사기사건 때문에 2001년 복역하기도 하였다. 구속 직전까지 자신은 피해자이고 권력투쟁의 희생자라고 주장했다고 알려져 있다. 다시 구속되면서 1992년의 가석방이 취소되는 바람에 남은 형을 복역하고 재판받았으며, 2004년 장영자에게는 징역 2년이, 남편 이철희에게는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이 선고되었다. 그러나 장영자가 김모씨로부터 가로챘다는 4억 600만원에 대해서는 증거부족으로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2] 2006년에는 항소심에서 징역 10년을 선고받고 2015년 1월 22일 만기 출소하였다. 남편 이철희는 1심대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이 선고되었다. 2018년에는 네번째로 수감되었다.(1983,1994,2001,2018)

기타[편집]

딸 김신아는 배우 김주승과 결혼했으나 이혼했다.[4] 아들 김모씨 는 2000년 구권 화폐 사기극에 연루되어 구속되었고[5], 출소 후 뺑소니 사고를 일으켰다가 도피했으나 2009년 사망했다.[4]

가족 및 인척 관계[편집]

가족 및 친인척 관계가 여러모로 복잡하면서도 화려하다.

장영자는 대학시절 두 차례 결혼했다가 이혼한 후, 나중에 국정원의 전신인 중앙정보부 차장 출신인 이철희와 재혼했다. 이 사람은 대북 작전 쪽에서 활동한 전문가이며, 김대중 납치 사건을 비롯한 대규모 공안사건에도 개입한 인물이다. 장영자가 유명하게 된 1982년의 사기사건도 이 남편과 함께 저질러서, 부부가 나란히 교도소에 들어갔다.

자녀는 1남1녀가 있는데, 모두 이철희와 결혼하기 전의 결혼에서 얻은 자식들이다. 이 남매는 부모가 이혼한 후 아버지 밑에서 컸고, 아버지가 크게 사업을 하는 사람이라 유학생이 드물었던 80년대에 유학을 다녀오는 등 경제적으로 유복하게 자랐다. 하지만 남매 모두 어머니 장영자와 얽히며 구설수에 오르고 평탄하지 못한 삶을 살았다. 남매 중 첫째인 딸은 배우 김주승과 결혼해서 외동딸을 낳고 잘 살았는데, 장영자가 출소하고 다시 사기 사건을 일으켰을 때 김주승이 연루되었다. 그 여파로 김주승의 연예계 제작사가 부도나고 김주승은 한동안 미국으로 도피했다. 이 일과 그 밖에 여러 사정으로 부부는 결국 이혼했고, 2007년에 김주승은 지병으로 사망했다. 남매 중 둘째인 아들은 어머니 장영자가 2000년에 구권 사기로 구속될 때 함께 잡혀갔다가 풀려났는데, 그 후에 뺑소니 사고를 치고 외국으로 도망쳤다. 몇 년 후 희귀병에 걸려 시한부 인생이 된 상태로 귀국했다가, 외국으로 도피하기 전에 사귀다가 헤어졌던 여배우 차주옥이 자신과의 사이에서 생긴 아이를 낳아 기르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장영자의 아들은 차주옥과 혼인신고를 해서 법률상 부부가 되고 얼마 안 되어 사망했다. 그런데 장영자의 아들이 생전에 아버지의 유산을 두고 누나에게 소송을 건 상태였는데, 소송 중에 사망하면서 유족인 차주옥이 그 소송을 계속하게 되었다. 즉, 장영자의 딸과 며느리 사이에서 재산분쟁이 벌어진 것이다. 장영자 가족 잔혹사 3탄 이번엔 재산분쟁

한편, 장영자의 친언니는 전두환의 처삼촌(즉, 이순자의 삼촌) 이규광과 결혼했다. 장영자가 1982년에 단군 이래 최고 수준이라는 대규모 사기사건을 일으킬 수 있었던 배경 중에는, 당시의 영부인인 이순자가 자기 친언니의 시조카라는 점을 어필했던 것도 있다. 장영자가 전두환 처가 쪽으로 인척관계이며 평소에 청와대 이름을 팔고 다녔다는 점 때문에, 사기사건이 터진 후 전두환과 이순자 일가가 이 사건의 배후세력이라는 소문이 시중에 떠돌기도 했다.

그리고 장영자의 고종사촌 언니는 공교롭게도 전두환 정권에 맞서던 김대중과 결혼했다. 다만, 장영자의 고종사촌 언니는 김대중의 부인으로 널리 알려진 이희호가 아니라, 김대중의 첫 부인이며 김대중의 첫째 아들 김홍일 및 둘째 아들 김홍업을 낳고 일찍 사망한 차용애이다.

김대중과 장영자는 혼인으로 연결된 인척관계인데, 인척관계는 혼인관계의 소멸(이혼, 혼인의 취소, 배우자의 사망 후 생존배우자의 재혼)으로 소멸한다. 차용애의 사망후 김대중이 이희호와 재혼했기때문에 기존의 처가와의 인척관계는 소멸된다. 장영자가 이철희와 결혼한 것이 1982년으로 이때부터 전두환과 이순자와는 인척관계가 되지만, 김대중과 이희호가 결혼한 것은 1962년이므로 이미 20년전부터 김대중과 장영자는 법적으로 완전 남남이었다. 따라서 김대중은 이규광이나 전두환과 법적으로 인척 관계가 없다.

평가[편집]

숙명여자대학교 재학시절 `메이퀸'으로 뽑힐 정도로 미모가 뛰어나고, 친화력 있는 화술을 가졌다.[2]

학력[편집]

장영자를 연기한 배우[편집]

같이 보기[편집]

참고 자료[편집]

각주[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