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 (작가)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이동: 둘러보기, 검색
Picto infobox auteur.png
이상
李箱
Leesang.jpg
출생 1910년 9월 23일(1910-09-23)
일제 강점기 일제 강점기 경성부 사직동
사망 1937년 4월 17일 (26세)
일본 제국 일본 제국 도쿄 제국대학교 부속병원
필명 본명(本名)은 김해경(金海卿)
초기 필명은 김비구(金比久)
직업 소설가
시인
수필가
삽화가
건축가
국적 대한민국
학력 강원도 강릉 신명보통학교 졸업
경성 동광고등보통학교
경성 보성고등보통학교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학과
활동기간 1929년 ~ 1937년
장르 시문학, 소설, 삽화, 수필, 건축
부모 김연필(양부)
김연창(생부)
박세창(생모)
친지 구본웅(처이질뻘)
배우자 연심 금홍(초취)
변동림(재취)

이상(李箱, 1910년 9월 23일 ~ 1937년 4월 17일)은 일제 강점기시인, 작가, 소설가, 수필가, 건축가로 일제 강점기 한국의 대표적인 근대 작가이다. 원래의 성은 (金)씨로, 본명은 김해경(金海卿)이다. 본관은 강릉 김씨(江陵 金氏)이다.

생애[편집]

생애 초반[편집]

1910년 서울에서 이발업에 종사하던 부 김연창(金演昌)과 모 박세창(朴世昌)의 장남으로 출생하였으며 이름은 김해경이었다. 1912년 생부모를 떠나 아들이 없던 백부 김연필(金演弼)에게 입양되어 강원도 강릉에 살던 김연필의 집에서 장손으로 성장하였다. 어렸을 때 그는 서울에 생부모가 따로 있는데도 강원도 강릉에 살던 백부와 백모를 부모라고 불러야 되는 점에 깊이 회의를 품고 사춘기 때는 한때 방황하기도 했다.

이상의 생부는 가난하고 무식하고 손가락 세 개를 잃은 장애인이었다. 이상은 큰아버지에게 양자로 들어갔다. 어린 시절의 김해경은 자신을 친부로부터 떼어놓은 큰아버지도, 큰아버지에게 아들을 빼앗긴 친부도 사랑할 수 없었다. 자기분열적인 이상은 실제로 거울을 늘 들고 다니며 거울로 햇빛을 반사시키며 놀았다.[1] 그는 후일 자신의 시 오감도와 작품, 동료 문인들에게 자신의 유년시절을 언급하곤 했다.

그러나 집안은 부유했으며, 양아버지이기도 한 백부의 교육열에 힘입어 이상은 신명학교를 거쳐 경성보성고등보통학교로 진학했다. 그 뒤 보성고등보통학교,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과[2][3][4]를 거쳤고 1929년 졸업 후에는 수석졸업의 특례로 총독부 건축과 기사로 취직하였다.

작품 활동[편집]

1931년 <이상한 가역반응〉, 〈BOITEUX·BOITEUSE〉, 〈파편의 경치〉 등을 《조선과 건축》지에 발표했고 1932년 단편소설 《지도의 암실》을 '조선'에 발표하면서 비구(比久)라는 익명을 사용했으며, 시 〈건축무한육면각체〉를 발표하면서 ‘이상(李箱)’이라는 필명을 처음으로 사용했다.

1933년 3월 객혈로 총독부 건축기수직을 사임하고 백천온천으로 요양을 떠났다가 기생 금홍(본명 연심)을 만나게 되어, 후에 서울로 올라와 금홍과 함께 다방 '제비'를 운영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그는 폐병에서 오는 절망을 이기기 위해 본격적으로 문학을 시작했다.

1934년 구인회에서 본격적인 문학 활동을 시작하여 시 《오감도》를 '조선중앙일보'에 연재하지만 난해시라는 독자들의 항의로 30회로 예정되어 있었던 분량을 15회로 중단하였다. 1935년에는 다방과 카페 경영에 실패하고 연인 금홍과도 결별하였으며 1936년 구인회 동인지 〈시와 소설〉의 편집을 맡아 1집만 낸 뒤 그만두고 '중앙'에 《지주회시》, '조광'에 《날개》, 《동해》를 발표하였으며 《봉별기》가 '여성'에 발표되었다.[5]

필명 유래[편집]

이상의 필명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다. 조선총독부에서 건축기사로 근무시, 건축 현장의 일본인들이 그를 "이씨"란 의미로 "李さん(리상)"이라고 부르던 것에서 유래되었다는, 시인 김기림이 주장하는 설이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림에 재주가 뛰어난 이상이 디자인한 경성고등공업학교의 졸업 앨범에 이상이라는 자필 서명이 있어, 건축기사 근무 이전에 이미 이상이란 필명을 쓰고 있었음이 밝혀졌다. 이 필명은 화가 구본웅에게 선물로 받은 화구상자(畵具箱子)에서 연유했다는 증언이 있다. 이 때 받은 화구상자가 오얏나무로 만들어진 상자였기에 ‘이상(李箱)’이 ‘오얏나무 상자’라는 뜻으로 풀이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6]

교우 관계[편집]

소설가 김유정(金裕貞), 소설가 이석훈(李石薰), 시인 김기림(金起林), 소설가 박태원(朴泰遠), 아동문학가 현덕(玄德), 소설가 안회남(安懷南) 등과 오랜 친구 사이였다. 그들 가운데 1937년 3월 29일 김유정이 이상보다 한 달 먼저 병으로 사망하였다.

출국과 죽음[편집]

말년의 이상은 술과 여자를 즐겼다고 한다. 동료 문인이자 친구인 박태원은 이상에 대해서 "그는 그렇게 계집을 사랑하고 술을 사랑하고 벗을 사랑하고 또 문학을 사랑하였으면서도 그것의 절반도 제 몸을 사랑하지는 않었다.[7]"면서 "이상의 이번 죽음은 이름을 병사에 빌었을 뿐이지 그 본질에 있어서는 역시 일종의 자살이 아니었든가 - 그러한 의혹이 농후하여진다.[7]"고 하기도 했다.

1936년 6월 변동림과 결혼하여 일본 도쿄로 옮겨가 1937년 사상불온 혐의로 도쿄 니시칸다경찰서에 유치되었다가 병보석으로 출감하였지만 지병인 폐병이 악화되어 도쿄 제국대학 부속병원에서 28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하였다. [8] 유해는 화장하여 경성으로 돌아왔으며, 같은 해에 숨진 친구 김유정과 합동영결식을 하여 미아리 공동묘지에 안치되었으나 후에 유실되었다.

사후[편집]

그를 기려 출판사 문학사상사에서 이상문학상을 1977년 제정해 매년 시상하고 있다. 2008년에는 현대불교신문사와 계간 ‘시와 세계’가 이상시문학상을 제정해[9] 역시 매년 수상자를 내고 있다. 2010년에는 탄생 100주년을 맞아 생전에 발표한 작품과 사후 발굴된 작품을 포함해 그의 문학적 세계를 재발견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6]

평가[편집]

이상은 작품 내에서 문법을 무시하거나 수학 기호를 포함하는 등 기존의 문학적 체계를 무시한 새롭고 실험적인 시도를 하였다. 이는 한국어 문학에서 이전에 시도된 적이 거의 없던 것이며, 이로 인해 그의 작품들은 발표 직후부터 현대까지 문학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고 평가된다. 또한 그의 작품은 줄거리의 전개방식이 명확한 경우가 많지 않고 소설의 전개는 극단적으로 주인공의 내면에만 치중되어 있는 자폐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10] 주인공 역시 사회로부터 소외되어 자신의 흥미나 형이상학적 의미에만 집착하는 성향을 드러내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작가 이상 스스로에 대한 묘사라고도 분석된다.

문법파괴와 의식의 흐름 기법을 사용한 특유의 서술방식은 주인공의 비문법적인, 즉 무의식적인 내면을 잘 드러내며,[10] 기존 문학에 대한 반감 또는 무시를 의미하는 동시에, 서술의 대상을 없애고 언어 자체에만 비중을 둔다.

일부 주장에 따르면, 이상은 언어유희를 이용하여 조선총독부에서 직접 발간하는 종합전문 월간지에 큰 글씨로 12, 12라는 제목의 소설을 연재하는 방식으로 일제에 대한 저항을 표현했다. 조선총독부의 일본인 관리들은 12, 12를 단순히 숫자로만 이해했고 한글 발음으로 했을 때 욕설이 된다는 점을 눈치채지 못했다는 점을 이용하여 이상이 그들을 골탕먹였다는 것이다.[11] 그러나, 이는 이상이 일제에 대한 큰 반감이나 독립운동에 대한 관심을 나타낸 적은 없었다는 점에서 부정되기도 한다. 한편, 시 오감도의 "13人의 兒孩가…"나 이상이 ‘제비’ 다방 다음으로 개업하려고 간판을 붙였다가 그 의미가 탄로나 허가 취소된 '69 다방', 남녀의 성교를 상징하는 33과 23(二十三, 다리 둘과 다리 셋의 합침) 및 且8(한글로 차팔 또는 조팔이라 읽음. 발기한 남성 성기 또는 18과 대칭을 나타냄) 등의 표현 역시 성적인 의미로 해석되기도 한다.

작품 목록[편집]

소설[편집]

  • 날개
  • 《종생기》
  • 《단발(斷髮)》
  • 《실화(失花)》
  • 《환시기(幻視記)》
  • 《동해(童骸)》
  • 《봉별기(逢別記)》
  • 《지주회시(蜘蛛會豖)》
  • 《지도의 암실》
  • 《황소와 도깨비》
  • 《지팽이 역사》
  • 《사신1-9》
  • 《12월 12일》

수필[편집]

  • 《권태》
  • 《산촌여정》
  • 《첫번째 방랑》

[편집]

  • <거울>
  • 〈異常ナ可逆反応 (이상한 가역반응)>(《朝鮮と建築 (조선과 건축)》1931년 7월호)
  • 〈破片ノ景色:△ハ俺ノAMOUREUSEデアル (파편의 경치: △은 나의 AMOUEUSE이다)>(《朝鮮と建築 (조선과 건축)》1931년 7월호)
  • 〈▽ノ遊戯ー:△ハ俺ノAMOUREUSEデアル (▽의 유희: △은 나의 AMOUREUSE이다)〉(《朝鮮と建築 (조선과 건축)》1931년 7월호)
  • 〈ひげー:(鬚·鬚·ソノ外ひげデアリ得ルモノラ·皆ノコト)(수염-: (鬚·鬚·그 밖에 수염일 수 있는 것들·모두를 이름))〉(《朝鮮と建築 (조선과 건축)》1931년 7월호)
  • 〈BOITEUX·BOITEUSE〉(《朝鮮と建築 (조선과 건축)》1931년 7월호)
  • 〈空腹ー (공복-)〉(《朝鮮と建築 (조선과 건축)》1931년 7월호)
  • 건축무한육면각체
  • 꽃나무〉(《가톨닉靑年》 1933년 7월호)
  • 〈이런 詩〉(《가톨닉靑年》 1933년 7월호)
  • 〈一九三三, 六, 一〉(《가톨닉靑年》 1933년 7월호)
  • 〈거울〉(《가톨닉靑年》 1933년 10월호)
  • 〈普通紀念〉(《月刊每申》 1934년 7월호)
  • 오감도(烏瞰圖)》
    • 〈詩第一號〉(《朝鮮中央日報》1934년 7월 24일)
    • 〈詩第二號〉(《朝鮮中央日報》1934년 7월 25일)
    • 〈詩第三號〉(《朝鮮中央日報》1934년 7월 25일)
    • 〈詩第四號〉(《朝鮮中央日報》1934년 7월 28일)
    • 〈詩第五號〉(《朝鮮中央日報》1934년 7월 28일)
    • 〈詩第六號〉(《朝鮮中央日報》1934년 7월 31일)
    • 〈詩第七號〉(《朝鮮中央日報》1934년 8월 2일)
    • 〈詩第八號 解剖〉(《朝鮮中央日報》1934년 8월 3일)
    • 〈詩第九號 銃口〉(《朝鮮中央日報》1934년 8월 3일)
    • 〈詩第十號 나비〉(《朝鮮中央日報》1934년 8월 3일)
    • 〈詩第十一號〉(《朝鮮中央日報》1934년 8월 4일)
    • 〈詩第十二號〉(《朝鮮中央日報》1934년 8월 4일)
    • 〈詩第十三號〉(《朝鮮中央日報》1934년 8월 7일)
    • 〈詩第十四號〉(《朝鮮中央日報》1934년 8월 7일)
    • 〈詩第十五號〉(《朝鮮中央日報》1934년 8월 8일)
  • 〈실화〉

이상을 다룬 작품[편집]

같이 보기[편집]

참고 문헌[편집]

  • 이상, 《이상소설전작집1》, 문학사상자료연구실편, 이어령, 1977.
  • 이상, 《정본 이상문학전집 1_시》, 김주현 주해, 소명출판, 2005.

각주[편집]

  1. 평론가 이상진, 한국 근대작가 12인... 출간 조선일보 2004.02.25
  2. 경성고공 생도 학적부에 따르면 이상은 1926년 경성고공 입시에서 총점 502점을 맞아 입학생 63명 가운데 23등으로 입학했다. 그러나 입학 후 이상은 1학년부터 3학년까지 매년 건축과 수석을 놓친 적이 없고, 29년 졸업 때는 평균 81점으로 평점 ‘갑(甲)’을 얻어 수석으로 졸업했다. 지금까지 이상이 경성고공을 우등 졸업한 사실은 알려져 있었지만 수석 졸업이 공식 자료로 확인된 건 처음이다. 이상과 함께 경성고공 건축과에 입학한 학생은 모두 13명, 그중 한국인은 두 명뿐이었다. 그러나 나머지 한 사람도 중도 탈락해 이상은 건축과 졸업생 가운데 유일한 한국인이었다.
  3. 이상, 경성고공 건축과 수석졸업했다 경향신문(2010.03.24.) 기사 참조
  4. 경성고등공업학교 학적부 공개 서울신문(2010.03.25.)기사 내용 참조
  5. 김승희, 박선희 (2010년 4월 1일). “21세기, 다시 읽는 이상<1>혼종, 경계를 넘나들다”. 동아일보. 2010년 4월 1일에 확인함. 
  6. 권영민 (2010년 4월 27일). “천재 ‘이상’을 둘러싼 오해와 진실”. 주간동아. 2010년 4월 27일에 확인함. 
  7. 박태원 수필집 '구보가 아즉 박태원일 때' 조선일보 2005.01.03
  8. 박병선 (2010년 4월 17일). “<역사 속의 인물> '날개'의 천재 작가 이상”. 매일신문. 2010년 4월 17일에 확인함. 
  9. 용호선 (2010년 8월 28일). “제1회 이상 시문학상에 이승훈(춘천) 시인”. 강원일보. 2012년 1월 29일에 확인함. 
  10. 이상 소설 전집, 이상, 권영민 책임 편집
  11. 구본웅 이상 나혜석의 우정과 예술 신동아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