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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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
李御寧
2007년 당시의 이어령
2007년 당시의 이어령
출생 1934년 1월 15일(1934-01-15) (83세)
일제 강점기 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아산군 온양읍 좌부리
필명 (號)는 능소(凌宵)
직업 문학평론가
소설가
저술가
작가
수필가
시인
대학 교수
언론인
사회기관단체인
기업가
사회운동가
시사평론가
정치가
언어 한국어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소속 이화여자대학교 명예교수
한민족명예원로회의 공동의장
배재대학교 석좌교수
영인문학관 명예이사장
경기디지로그 창조학교 명예교장
단국대학교 전임강사
학력 단국대학교 대학원 문학박사
활동기간 1956년 ~ 현재
장르 평론, 소설, 수필, 시문학
부모 이병승(부), 원용숙(모)
친지 김경희(장자부)
이유미(차자부)
이수범(손자)
이다인(손녀)
이지인(손녀)
이덕녕(형)
이복녕(형)
이휘령(형)
이서령(형)
이인녕(아우)
이시령(아우)
이윤녕(아우)
배우자 강인숙
자녀 이민아(딸)
이승무(장남)
이강무(차남)
종교 개신교

이어령(李御寧, 1934년 1월 15일 ~ )은 대한민국대학 교수, 소설가이자 작가저술가, 사회기관단체인 겸 사회운동가, 정치가, 문학평론가, 시사평론가이다. 아호(雅號)는 능소(凌宵)이다.

1956년 서울대학교 국문학 학사와 1960년 서울대학교 국문학 석사, 1987년 단국대학교 국문학 박사 등을 취득하였다. 신문 논설위원과 대학 교수로 활동하였으며, 1990년 1월 3일부터 1991년 12월 19일까지 문화부 장관을 지내기도 했다.

본관은 우봉(牛峰)이고 충청남도 아산 출생이다. 그의 7촌 숙부는 교육자 겸 역사학자이며 저술가인 이병도(李丙燾)이다.

학력[편집]

경력[편집]

1973년 이전, 경향신문 특파원이던 이어령.
국제문화소통포럼 2013에서 기조강연하고 있는 이어령

경기고등학교에서 교직을 시작으로 단국대학교 전임강사와 1960년 이후 서울신문, 한국일보, 경향신문, 중앙일보 등의 주요신문 논설위원으로도 활약하였고, 1990년 초대 문화부 장관으로 임명되기도 하였다. 1967년부터 2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이화여자대학교 문리대에서 교수직을 역임하였고 현재는 이대 명예교수이다. 2009년에는 경기디지로그 창조학교를 설립하여 명예교장을 맡고 있다.

문단 활동[편집]

1956년 한국일보에 〈우상의 파괴〉를 발표하여 주목을 받았다.[1] 〈우상의 파괴〉에서 그는 김동리를 '미몽(迷夢)의 우상'이라고 하고 '모더니즘'의 기수를 자처하고 있는 조향을 '사기사의 우상', 이무영을 '우매(愚昧)의 우상', 최일수를 '영아(嬰兒)의 우상'이라고 깎아내렸을 뿐만 아니라 황순원, 조연현, 염상섭, 서정주 등을 '현대의 신라인들'로 묶어 신랄한 비평을 가했다.[2] 그는 우리 문학의 불모지적 상황에서 새로운 터전을 닦아야 할 것을 주장했으며, 이데올로기와 독재 체제의 금제에 맞서 문학이 저항적 기능을 수행해야 함을 역설하였다. '작품의 실존성'을 문제로 김동리와 논쟁을 벌이기도 했고, 조연현과 '전통논쟁'도 펼쳤다. 특히 1959년 3월 한 신문을 통해 전개된 소설가 김동리와 비평가 이어령 사이의 시비는 우리 문단사에서 은유와 비문(非文)에 관한 '험악한' 논쟁으로 기록된다. (남영신,<나의 한국어 바로 쓰기 노트>)

주요 작품[편집]

평론[편집]

  • 《이상론》
  • 《우상의 파괴》
  • 《비유법론고》
  • 《해학의 미적 범주》
  • 《사회참가의 문학》
  • 《현대소설 60년》

평론집[편집]

  • 《저항의 문학》
  • 《전후문학의 새물결》
  • 《한국작가전기연구》

소설[편집]

  • 《마호가니의 계절》
  • 《장군의 수염》
  • 《의상과 나신》

소설집[편집]

  • 《환각의 다리》
  • 《둥지 속의 날개》
  • 《무익조》

수필[편집]

  • 《흙속에 저 바람속에》
  • 《신한국인》
  • 《축소지향의 일본인》
  • 《디지로그》선언편
  • 《지성의 오솔길》
  • 《지성에서 영성으로》

해외 출판[편집]

<축소지향의 일본인>(「縮み」志向の日本人)을 비롯 이어령의 책은 일본에서 베스트셀러를 기록하였고, 지금까지도 번역 출판되고 있다. 특히 2005년 4월 출간된 <장켐 문명론>(신조사)은 <축소지향의 일본인> 이후 문명 융합에 대한 해박한 경륜을 담아 한 중 일 삼국의 미래를 조망했다는 점에서 크게 평가받았다.[3]

평가[편집]

이어령은 '이 시대 최고의 지성’, ‘5000년 역사상 가장 돋보이는 창조적 인물’로 칭송을 받고 있지만 선천적인 자유분방한 모습으로 일부에서는 강한 비판을 받기도 한다.[4]

작가 서해성은 한 대담에서 이어령을 '발견의 구라'라고 칭하며 "과학실험실에서 막 나온 것 같으나 그 발견의 힘을 현실로 바꾸거나 그것을 위하여 자기를 던진적이 없다"고 말하였다.[5]

고령의 나이에 비해 컴퓨터 및 소프트웨어 활용 능력이 뛰어나다. 서재에 각기 다른 목적을 가진 7대의 컴퓨터가 있으며, 자료 정리는 에버노트를 주로 쓴다.[6] 김정운과의 대화에서 자신의 에버노트에 저장된 노트의 수가 18,000개라고 밝혔다.[7]

가족 관계[편집]

출연작[편집]

상훈 경력[편집]

  • 1979년 :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 1989년 : 체육훈장 맹호장
  • 1992년 : 일본 디자인문화상
  • 1996년 : 일본 국제교류기금 대상
  • 2001년 : 서울시문화상
  • 2003년 : 대한민국 예술원상
  • 2007년 : 삼일문화상

관련 항목[편집]

각주[편집]

  1. 김윤식 외, 《상상력의 거미줄: 이어령 문학의 길찾기》(생각의나무,2001) 속 날개 표지
  2. 이병주,〈동서의 복안적 시점〉,김윤식 외,《상상력의 거미줄:이어령 문학의 길찾기》(생각의나무,2001)》151쪽.
  3.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연합초대석)”. 연합신문(네이버). 2008년 8월 28일. 2011년 5월 30일에 확인함. 
  4.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이 보는 한국인의 미래는?”. 아주경제. 2009년 7월 15일. 2011년 5월 30일에 확인함. 
  5. 한홍구-서해성의 직설,“나의 공무원·도둑놈들 답사기도 쓰고 싶다”, 한겨레신문
  6. 고양이 일곱 마리를 기르는 서재 구경. 중앙일보.
  7. 에디톨로지. 2015년. 김정운 저.

바깥 고리[편집]

참고 자료[편집]

전임
최병렬
(문화공보부 차관)
제19대 문화부 장관
1990년 1월 3일 ~ 1991년 12월 19일
후임
이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