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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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무(李德懋, 1741년 7월 23일(음력 6월 11일) ~ 1793년 3월 7일(음력 1월 25일))은 조선 후기의 북학파 실학자이다.

그는 소위 조선 시대 국민 간서치(朝鮮 時代 國民 看書癡)로도 유명하였고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조선 제2대 임금 정종의 막내아들인 무림군 이선생의 10대손이다. 자(字)는 무관(懋官)이며 호(號)는 형암(炯庵), 아정(雅亭), 청장관(靑莊館)이며 별호는 선귤자(蟬橘子)이다.

일생[편집]

경사(經史)를 비롯하여 기문이서(奇文異書)에 걸쳐 여러 방면에서 박식을 자랑하였으나 서얼인 관계로 관직에서 크게 등용되지 못했다. 일찍이 유득공·박제가·이서구와 함께 사가시집(四家詩集) 《건연집(巾衍集)》을 내어 문명을 떨쳤다.

1778년(정조 2년)에는 당시 서장관 심염조(沈念祖)를 수행하여 청나라에서 기균(紀均)·반정균(潘庭筠)·이조원(李調元)·이정원(李鼎元) 등의 석학과 교류하였다. 또한 청나라에서 여러 자료 및 고증학 관련 저서를 가져와 그의 학문을 발전시키게 된다. 귀국 후 북학을 제창하였다.

1779년 박제가·유득공·서이수(徐理修)와 함께 규장각 검서관이 되어, 그들과 함께 4검서관으로 이름을 떨쳤다. 또한 규장각의 도서 편찬에 적극 참여하여 《도서집성》, 《국조보감》, 《대전통편》, 《규장각지》, 《홍문관지》, 《규장전운》(奎章全韻) 등 많은 서적을 정리·교감하였다.

그의 저술은 아들 이광규에 의해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로 집성되었다.

주요 저서[편집]

  • 《관독일기》(觀讀日記)
  • 기년아람》(紀年兒覽) : 이만운과 공저
  • 《뇌뢰낙락서》(磊磊落落書)
  • 《사소절》(士小節)
  • 《앙엽기》(盎葉記)
  • 《열상방언》(洌上方言)
  • 《영처문고》
  • 《영처시고》
  • 《예기고》(禮記考)
  • 《이목구심서》
  • 《입연기(入燕記)》
  • 《천애지기서》(天涯知己書)
  • 《청비록》(淸脾錄)
  • 《편찬잡고》
  • 《한죽당섭필》
  • 《협주기》(峽舟記)
  • 《건연집》 : 유득공, 박제가, 이서구와 공저

가족 관계[편집]

  • 할아버지 : 이필익(李必益)
  • 아버지 : 이성호(李聖浩)
  • 아들 : 이광규(李光葵)
  • 손자 : 이규경(李圭景)

이덕무를 연기한 배우[편집]

드라마[편집]

영화[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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