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원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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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원량(尹元亮, 1495년 ~ 1569년)은 조선 중기의 척신이다. 본관은 파평(坡平), 파산부원군 윤지임(尹之任)의 아들이며 윤원형(尹元衡)·윤원로(尹元老)의 형이다. 중종의 제3계비 문정왕후의 친정 오빠이자, 인종의 후궁 숙빈 윤씨의 친정아버지이다. 경기도 출신.

생애[편집]

출생과 가계[편집]

윤원량은 1495년 경기도 파주군에서 파산부원군 윤지임과 전성부대부인 전의이씨(全城府夫人 全義李氏)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으며, 고려 태사 윤신달의 19대손이며 문하시중 윤관의 15대손이다. 위로 형 윤원개, 아래로는 동생 윤원필, 윤원로, 문정왕후, 윤원형이 있었다.

중종의 왕비인 문정왕후의 둘째 오빠로 대윤과 소윤의 친척이었는데, 소윤에 더 가까웠다. 윤임 일파를 대윤이라 하고 윤원형 일파를 소윤이라고 했다. 윤원형과 윤임은 친척이었는데, 윤원형의 5대조 윤번의 딸이 세조정희왕후로, 정희왕후의 남동생 윤사흔의 4대손이었다. 윤임윤번의 차남 윤사윤의 후손으로 윤원량과 윤원형, 윤원로의 아버지 윤지임과는 8촌간이었다. 윤원량은 윤번의 셋째 아들 윤사흔의 고손자였다.

활동[편집]

그는 정3품 돈녕부 도정을 지냈고[1] 그의 딸 숙빈 윤씨(淑嬪 尹氏)는 인종의 후궁이 되었다.[1] 여동생 문정왕후중종의 계비가 되었으므로 처남매부간이면서 겹사돈이기도 하다.

그동안 그는 문정왕후 윤씨의 남동생으로 알려져 왔으나 2002년 11월 파평윤씨 선산에서 그의 손녀 윤씨의 미이라 발견으로 문정왕후의 오빠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한다.[2][3][4]

권세에 별다른 욕심을 부리지 않아 동생인 윤원형, 윤원로와 충돌하지 않았으며, 1565년 문정왕후 사후 윤원형이 몰락한 뒤에도 해를 당하지 않았다. 선조의 즉위를 본 후 1569년(선조 2년)에 사망하였다.

가족[편집]

명종의 외삼촌이며 인종과는 10촌간이면서 조카사위가 되는 이중 인척관계였다. 세조비 정희왕후는 고조부 윤사흔의 누나였다. 또한 김안로와도 사돈관계였다.

함께 보기[편집]

각주[편집]

기타[편집]

  • 중종실록
  • 명종실록
  • 파평윤씨 세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