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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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키지(築地 (つきじ))는 일본 도쿄 도 주오 구의 지명이다. 쓰키지 시장이 있다.

개요[편집]

메이지 시대부터 교바시 구청이나 현재 중앙 구청이 있었고, 오구, 교바시 지역의 행정적 중추를 담당해왔다. 따라서 경찰서, 우체국 등 행정 기관이 집중되어 있다. 도쿄 만의 하구에 접하고 있는 토지 형태로 해군과 중앙 도매 시장 등 해운 관련 시설이 존재했다. 지역 이름 교바시를 따서 교바시 쓰키지라고도 한다.

역사[편집]

쓰키지는 원래 ‘매립지’라는 의미로 도쿄 쓰키지도 매립지이다. 에도 시대, 1657년(메이레키 3년)의 메이레키 대화재 때 소실되었던 아사쿠사 의에도 아사쿠사 고보 (현재의 쓰키지혼간지)의 이전을 위해 쓰쿠다지마(佃島)의 거주자에 의해 이 땅이 조성되었다. 그 후, 정토진종의 사원과 묘지가 속속 건립되었고, 주변은 테라마치처럼 되었다. 다른 지역은 무가 저택이 많이 늘어서 있었다.

외국인 거류 구역[편집]

1869년에는 쓰키지뎃포주(현재 미나토에서 아카시쵸)에 외국인 거류지도 마련됐다. 이 때문에 재일 미국인 자녀를 위한 학교인 아메리칸 스쿨 인 재팬이 1902년 개교 시에 설치되어 있었다. 또한 나카쓰 번 번사 후쿠자와 유키치난학 학원을 연 곳이기도 하다.

해군 관계 시설[편집]

에도 시대 말기, 에도 막부는 군사력 증강을 목적으로 쓰키지에 강무소를 설치한 후 해군 부문의 군함조련소를 설치하였고, 카쓰 가이슈 등이 교수로 부임했다. 메이지 유신 이후, 영주 저택, 강무소 흔적은 메이지 정부에 접수되어 태평양 전쟁 이후 일본 해군이 해산될 때까지 주로 해군 용지로 사용되었다. 과거에 쓰키지에 있던 제국 해군 관계 시설은 다음과 같다.

해군 본성[편집]

1872년, 오와리 번에 설립되었다. 현재 해군 발상지(해군경 기를 게양한 요쿠온엔(浴恩園)내의 가산 :기산이라고 했다)로 스이징 신사가 모셔져 있다.

해군 사관학교[편집]

1869년, 해군조련소히로시마 번에서 창립되어, 이듬해 해군병학교 기숙사로 1876년해군사관학교로 개칭되었다. 1887년히로시마 에타지마로 이전되었다.

해군 군의관 학교[편집]

1873년, 해군병원 부속 학사로서 창립되었다. 1880년에 폐교가 되지만, 1882년에 해군 의무국 학사로 시바에 재건되어 1889년에 해군 군의관학교로 개칭되었다. 또한 1908년에 쓰키지로 이전되어 1929년에 쓰키지 5번가에 신축 이전하였다. 현재 부지는 국립 암연구센터 중앙병원이다.

군함조련소[편집]

1857년, 에도 막부가 강무소 내에 군함 교육소로 개설했다. 1859년, 카쓰 가이슈가 포술 교수가 되었고 개명했다. 네덜란드에서 기증한 간코마루(이전 명칭 : 좀빙 호)에서 승무원 훈련이 이루어졌다.

해군 경리 학교[편집]

1888년, 그때까지 지산에서 텐진타니(天神谷)에 있던 해군 회계청사를 이전, 1907년에 개명했다. 1932년에 가치도키바시(勝鬨橋) 니스즈메(西詰)에 신축 이전하였고, 태평양 전쟁이 끝난 후 1945년에 폐교되었다.

주석[편집]

바깥 링크[편집]

좌표: 북위 35° 40′ 05″ 동경 139° 46′ 26″ / 북위 35.66819° 동경 139.77390° / 35.66819; 139.773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