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판 반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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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판 반데라

스테판 안드리요비치 반데라(우크라이나어: Степан Андрійович Бандера, 폴란드어: Stepan Andrijowycz Bandera, 1909년 12월 1일 ~ 1959년 10월 15일)는 우크라이나급진주의 민족주의 운동가이다.

1909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우크라이나인 거주 지역인 갈리치아-로도메리아 왕국의 스타리우흐리니우에서 태어났고, 1919년 갈리치아-로도메리아가 독립하여 수립된 서우크라이나 인민 공화국이 폴란드에 재합병당한 것에 분노하여 젊은 시절부터 민족주의 활동에 참여했다고 한다. 1929년 르부프를 중심으로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 조직(OUN)을 주도했고, 1934년에는 폴란드 외무장관의 암살을 모의한 혐의로 종신형을 선고받아 수감되기에 이른다.

1939년 나치 독일과 소비에트 연방이 폴란드를 침공하자 독일 관리 지역으로 탈출하여 OUN을 무장조직으로 재정비했다. 이후 나치의 반폴란드, 반소련 정책에 동의하여 이들과 가까이 접촉했으나, 독소전쟁 발발 직후 우크라이나 정부를 일방적으로 선포하자 게슈타포에게 체포되어 수용소로 보내졌다. 이 동안에도 OUN은 소련의 니콜라이 바투틴을 암살하는 등 반공주의 무장 투쟁을 지속하였는데, 이 과정에 폴란드인이나 유대인에 대한 학살이 포함되었다. 1944년 연합군에 의해 석방되자 우크라이나 지하 임시정부를 주도하기도 했으며, 종전 이후에도 서독에 남아 OUN-B의 반공주의 활동을 주도하다가 1959년 뮌헨에서 소련 국가보안위원회(KGB) 요원이 살포한 사이안화물로 인하여 암살되었다.

현대 우크라이나에서 여전히 반데라에 대한 평가는 논란의 중심에 있으며, 주로 반러시아 성향의 우익 측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받고 반대 측에서는 파시즘 옹호자이자 학살을 주도한 전쟁범죄자로 비판받는다. 2010년에는 빅토르 유셴코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반데라에게 사후 우크라이나 영웅훈장을 수여하여 논란이 일자 빅토르 야누코비치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해당 결정을 무효 처리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