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른하르트 (이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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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밀라노에 있는 베른하르트의 기념 프레스코화

베른하르트 1세(Bernhard I, 797년 ~ 818년 4월 17일)는 카롤링거 왕조 출신 롬바르디아의 왕으로 샤를마뉴의 손자이자 이탈리아의 왕 피피노와 쿠니군데의 아들이다. 814년 할아버지 샤를마뉴의 사후 이탈리아왕을 상속받았다. 그는 생전 자신을 Rex Langobardorum이라 하였다. 그러나 자신이 황제가 되지 못한 것에 반발하여 숙부 루트비히 1세에게 반기를 들었으나 실패했다. 루트비히 1세는 화해하는 척하며 그를 초대한 뒤, 눈을 뽑아 장님으로 만들었다.

그의 서자 피핀은 베르망두아 백작이 되었고 이후 베르망두아 백작가를 창설했다. 베르망두아 백작가는 카롤링거 왕조가 단절[1]되고 서프랑크 계열의 오토가 사망한 뒤에도 13세기까지 명맥을 이어갔다.

생애[편집]

베른하르트는 샤를마뉴 대제의 둘째 아들이자 롬바르디아의 왕인 피피노 카를로만과 그의 아내 쿠니군데의 아들이었다. 쿠니군데는 샤를마뉴의 삼촌이자 샤를마뉴 집권 초기에 국방대신을 지낸 베른하르트의 손녀였다. 일설에 베른하르트는 피피노 카를로만의 적자가 아니라 사생아라는 설도 있다. 아버지 피피노 카를로만이 일찍 죽자 조부 샤를마뉴의 손에 양육되고 814년 샤를마뉴 사후 롬바르디아 분국을 상속받았다. 동시에 샤를마뉴810년 프랑크 제국아헨 제국 의회에서 손자 베른하르트의 롬바르디아 지역 상속권을 통과시켰다.

그는 프랑크 왕실에 의해 일정 지위를 인정받았다. 숙부 경건왕 루트비히는 815년 일부 롬바르디아의 귀족이 교황을 암살하려 했다는 첩보를 받았을 때 그를 파견하기도 하였다. 한편 루트비히는 제국 분할령에 따라 그에게 이탈리아 지역을 양도하려 했다. 그러나 루트비히의 황후 에르망가르트는 자신의 장남인 로타르 1세에게 이탈리아를 주지 않은 것에 불만을 품기도 했다. 결국 로타르 1세가 이탈리아의 분국왕이 되고, 나머지 다른 형제들과 베른하르트는 그냥 분국 하나를 받는 분봉왕의 지위를 얻게 되었다. 그러자 베른하르트는 분개했고, 일부 성직자들은 그가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루트비히 1세에게 밀고하였다.

아팅기 수도원에서 공개 참회식을 하는 루트비히 경건왕, 앉은 이는 교황 파스칼 1세

817년의 제국 칙령에서 자신이 황제후계자가 되지 못한 것에 반발한 그는 숙부 루트비히 1세에게 반기를 들었으나 실패했다. 베른하르트의 군사는 알프스 산맥 넘어서까지 점령했지만, 살롱-쉬-사온느에서 루트비히 1세군에 대패하고, 베른하르트 자신은 포로로 사로잡혔다. 루트비히 1세는 화해하는 척하며 그를 초대하였다가 눈을 뽑아 장님으로 만들었다. 베른하르트는 이듬해 4월 17일 부상의 후유증으로 사망하였다.

시신은 밀라노 주 밀라노 시성 암브로지오 바실리카(Basilica of Sant'Ambrogio)에 안치되었다.

기타[편집]

822년 경건왕 루트비히는 유월절아르덴의 부지에(Vouziers)와 아팅기(Attigny)의 수도원에서 교황 파스칼 1세 앟에서 베른하르트가 죽은 것과 충실한 조언자인 베네딕트의 병사 등 대해 자신의 부덕함을 탓하는 공개 참회와 속죄 의식을 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경건왕 이는 루트비히 자신의 정치적 권위를 깎는 요인이 되었다.

참조 항목[편집]

주석[편집]

  1. 동프랑크에서는 911년, 서프랑크에서는 986년
전 임
샤를마뉴
롬바르디아의 왕
814년 - 817년
후 임
루트비히 1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