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자키 이치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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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키 이치사다(일본어: 宮崎 市定, 1901년 8월 20일 ~ 1995년 5월 24일)는 일본동양사학자이다. 나가노현 시모미노치 군 아키쓰촌(현 이야마 시) 출신이다. 주요 연구 분야는 중국사회, 경제, 제도사 등이며 특히 과거제도에 대한 논문이 유명하다. 동양사 통사론에도 정통하며 소위 교토학파의 중심 인물이다.

약력[편집]

아버지소학교 교사였다. 1919년에 신설된 마츠모토 고교를 거쳐 1922년 교토제국대학 문학부 사학과에 진학하였다. 졸업 논문은 《남송 말의 재상, 가사도》(南宋末の宰相賈似道)이다. 1936년에는 프랑스 파리로 유학하여 동양어학교에서 아라비아어를 습득하였다. 미국을 경유하여 귀국한 후 1944년부터 교토제국대학 문학부 교수로 재직하였다. 1965년 정년퇴직했고 독일 함부르크 대학교의 명예객원교수로 있기도 하였다.

수상내역[편집]

프랑스 학사원으로부터 줄리앙상을 수상하였고 1989년에는 일본 정부로부터 문화공로자로서 표창을 받았다.

태평양전쟁기 일본 역사 편찬 참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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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년 일본 문부성에서 대동아역사편찬이라는 프로젝트에 의해 편찬책임자로 선정되었다. 문부성의 의도는 미얀마에서 동쪽 영역의 소위 대동아공영권내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일본의 황국문화가 조선과 지나를 거쳐 아시아 각지에 확대되어간다는 자민족 우월주의적 황국식민사관에 근거한 것이었다. 이에 미야자키외 편찬 책임자들은 객관적인 역사서술로 보기에 무리가 있는 이 내용대신, 문명의 근원을 메소포타미아등 서아시아권에서 발흥한 것으로 하되, 그 문화가 동으로 전파되어 가장 고도로 발전한 문화가 일본이라는 식으로 할 것을 건의하여, 문부성은 이를 수락하였다. 미야자키는 이 저술중 고대에서 중국 당대까지의 저술을 맡았으나, 패전후 이 프로젝트는 소멸한다. 1947년에는 이 원고를 바탕으로, 《아시아사 개설》을 출판한다.

번역서[편집]

  • 《중국사》, 조병한 역, 역민사, 1989년 8월 1일
  • 《중국의 시험-과거》, 중국사연구회 역, 청년사, 1989년 9월 1일
  • 《中國中世史》, 임중혁 역, 신서원, 1996년 3월 1일
  • 《옹정제》, 차혜원 역, 이산, 2001년 1월 26일
  • 《중국의 시험 지옥 과거》, 중국사연구회 역, 청년사, 2001년 4월 24일
  • 《논어》, 박영철 역, 이산, 2001년 10월 27일
  • 《구품관인법의 연구》, 임대희 역, 소나무, 2002년 2월 26일
  • 《자유인 사마천과 사기의 세계》, 이경덕 역, 다른세상, 2004년 9월 24일
  • 《중국사의 대가 수호전을 역사로 읽다》, 차혜원 역, 푸른역사, 2006년 3월 20일
  • 《녹주공안》, 차혜원 역, 이산, 2010년 2월 4일
  • 《수양제》, 전혜선 역, 역사비평사, 2014년 12월 29일